엄마라고 다 아는 건 아니야.

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by 이연숙


친정엄마라고 하면 모름지기

시집간 딸이 물어보는 건 뭐든 대답할 줄 알아야 한다.

는 것이 기준이라면 나는 빵점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 오랜 세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패와 성공에 의한 것이라

요리면 요리 친인척 간의 적정한 예의와 해야 할 도리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 까지

엄마는 모르는 게 없어야 할 것 같다.


다른 건 모르겠고

오랜 시간 경험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것 중에 음식이 있었나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편도

음식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거나 즐거웠던 적도 없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대신 식구들 저녁식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습관이라는 편이 맞겠다.

기억이란 게 왜곡되게 마련이라

혹여 엄마는, 겨우 한 두 번 한 걸 가지고 저런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 기억 속 초등학생 때의 풍경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있는 시장에 들러

콩나물 두부 어묵 등 저녁 찬거리를 사 오는 장면으로 가득 차있다.

교문을 나서면서 숙제가 뭐였는지 대신

‘오늘은 뭘 해먹나.’를 고민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 시절에는 다 그랬고 아버지 대신 엄마가 일을 해야 하니

그런 건 생색낼 무엇도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그랬다.

해야 하니 하는 것이었을 뿐인데도

그것도 오래 해서인가, 내가 하는 음식 맛이 좋았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심지어 길에서 만났을 때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한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친구는


“너네 집에도 갔었잖아, 그 때 네가 만들어준 잡채 진짜 맛있었는데.”


라며 입맛까지 다신다.

그 친구 뿐 아니다.

거의 30년 만에 만난 직장 선배도 내가 만들어서 싸 가지고 온 김밥 맛을 기억하고 있었고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난 고등학교 짝꿍도

요리를 잘 하는 내가 늘 부러웠다고 고백까지 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았냐 싶은 생각에 그 시절의 내가 새삼 궁금해졌다.




작년 여름, K2생일 전날에 사위가 전화를 했다.


“어머니, 미역국 어떻게 끓여요?”


지난번에는 네이버 레시피를 보고 끓여줬더니 느끼하다며 엄마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했단다.


“어, 그게, 그러니까...”


막상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끓여만 봤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일이 없었다.


“그냥 고기에 물을 붓고 푹 끓여, 그리고 불린 미역을 넣고 멸치액젓으로 간하면 돼.”

“액젓은 얼마나 넣어요? 파 마늘은 안 넣어도 돼요?”


막막했다.

그냥 느낌가는대로 넣어만 봤지 그게 용량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 적 없다.

어디 액젓의 양 뿐이겠나, 물과 미역의 비율, 고기의 양 그리고 끓이는 시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설명 할 수 있는 게 없다.


“으응, 나는 냄비에 한 바퀴 반 돌리는데 그 집 냄비는 모르겠네? 적당히 넣고 싱거운 거 같으면 국간장을 조금 넣고 나는 미역국에 파 마늘은 안 넣는데 넣고 싶으면 넣고....”


어찌된 것이 말을 길게 할수록 점점 산으로 가는 느낌이다.

전화를 끊고 사위가 딸의 입맛에 맞는 미역국을 끓여줬는지는

아직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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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K2가 전화를 했다.


“엄마 옥수수 어떻게 쪄?”


미역국이, 할 줄은 알지만 설명이 어려운 종목이었다면

옥수수는 자주 해보지 않았고 설명은 더 어려운 분야였다.


“옥수수는 찌지 않고 삶는 거 아닌가? 물에 소금하고 신화당 조금 넣고.”

“마트에서 아예 대 놓고 사카린이라고 써 있는 거 샀어. 근데 찌는 게 아니고 삶는 거야?”

“응 할머니가 알려주셔서 물을 잠기도록 붓고 삶았는데 한 시간은 끓여야 되더라고.

그러지 말고 그냥 네이버 찾아봐.”


몇 번인가 집에서 시도해 봤는데 절반은 실패였던 터라

이후로는 그냥 길에서 파는 옥수수 사 먹자고 결심한 터였다.


“찾아 봤는데 다 각각 말이 달라. 근데 초당 옥수수도 삶아야 되는 거야?”

“초당옥수수였어? 초당옥수수는 안 쪄봤지. 난 강원도 찰옥수수만 !@#$%^&*&^”


말을 할수록 어째 점점 옹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K2가 초당옥수수를 성공적으로 쪄서 먹었는지는 아직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그런 줄을 아이가 모르지는 않았을 터다.

엄마보다 신박하고 정확한 정보를 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냥,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었겠지.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거겠지.

라며 빵점 엄마의 군색한 변명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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