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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May 27. 2022

한나 아렌트 #8 - <한나 아렌트의 말> 필사

『한나 아렌트의 말』 필사

1장 -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나중에 빌리 브란트 정부 고위 관료과 되는 귄터 가우스와 한나 아렌트와의 인터뷰)


가우스 : 이해가 됩니다. 자, 이제 주제를 여성해방 문제로 돌려보죠. 이 주제가 당신에게 문젯거리였던 적이 있나요?

아렌트 : 물론이죠. 그런 문젯거리는 늘 존재해요. 사실 나는 상당히 고루한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들이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어요.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모습은 그냥 보기가 좋지 않아요. 여성스러운 존재로 남아 있고 싶은 여자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마땅해요.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는 나도 몰라요. 나 자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아니, 거의 의식적으로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네요―늘 이런 사고방식에 부합하게 살아왔어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그 자체로는 내 인생에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어요. 단순하게 말해, 나는 늘 내 마음에 드는 일들을 해왔어요. (『한나 아렌트의 말』, 23p)


가우스 : 당신의 저작은 정치적 행위와 행동이 발생하는 조건들에 대한 지식을 굉장히 깊이 있게 다룹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죠. 당신은 이런 저작들을 통해 폭넓은 영향력을 끼치기를 원하나요? 아니면 요즘 시대에 그런 영향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믿나요? 그것도 아니면 그런 건 그냥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하나요?

아렌트 : 글쎄요, 그건 간단한 질문이 아니에요. 정말로 허심탄회하게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나는 연구를 할 때는 내 연구가 사람들에게 끼칠지도 모르는 영향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요.

가우스 : 연구를 끝냈을 때는요?

아렌트 : 그러면 연구를 끝낸 거죠. 나한테 중요한 것은 내가 다루는 주제를 이해하는 거예요. 내게 저술은 이런 이해를 추구하는 문제이자, 이해하는 과정의 일부예요……. 책을 집필하다 보면 저절로 표현되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내 기억력이 내 생각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좋다면 나는 글 쓰는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나 자신이 무척 게으른 인간이라는 걸 잘 아니까요. 나한테 중요한 것은 사유 과정 자체예요. 나는 무엇인가 철저히 사유하는 데 성공할 때 개인적으로 상당한 만족감을 느껴요. 내 사유 과정을 글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도 만족감을 느끼고요.

내 저작이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어봤죠? 비아냥조로 말하자면, 그건 마초적인 질문이에요. 남자들은 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 해요. 나는 남자들의 그런 성향을 이를테면 허울만 그럴싸하지 실속은 없는 문제로 봐요. 나 자신을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하느냐고요? 아뇨. 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내가 이해한 것과 같은 의미로―세상을 이해한다면 나는 그 사실에서 편안함과 만족감을 얻을 거예요. (같은 책, 24-25p)


가우스 : 당신이 방금 한 얘기에 대해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나치가 정권을 잡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고 확신했다면 그걸 막기 위해 무슨 일이건―예를 들어 다른 정당에 입당하는 것 같은―활발히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나요? 아니면 그런 활동이 그럴 만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건가요?

아렌트 : 개인적으로 밖에 나가서 할 만큼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 생각을 했다면―지금 와서 그때를 돌아보며 말하기가 무척이나 힘드네요―무슨 일이건 했을 거예요. 나는 그런 활동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책, 27p)


가우스 : 당신은 마르부르크와 하이델베르크, 프라이부르크에서 하이데거 교수와 불트만 교수, 야스퍼스 교수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철학이 전공이고 신학과 그리스어가 부전공이었죠. 이런 과목들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나요?

아렌트 : 나도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종종 생각해보고는 해요. 내가 장차 철학을 공부할 거라는 사실을 늘 알고 있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열네 살 때 이후로 쭉 그랬어요.

가우스 : 왜죠?

아렌트 : 칸트를 읽었거든요. 왜 칸트를 읽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는데, 내 입장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왠지 이런 것 같아요. 내게 그건 철학을 공부하거나 물에 몸을 던지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였다고요. 그렇다고 내가 목숨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앞서 말했듯 나한테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 욕구가 무척 어린 나이에도 있었어요. 우리 집 서재에는 온갖 책이 다 있었죠. 읽고 싶은 책을 책장에서 꺼내기만 하면 됐어요. (같은 책, 37-38p)


가우스 : 미스 아렌트, 당신의 지적인 재능은 대단히 일찍 시험을 받았습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인 관계에서 그런 재능이 여학생인 당신과 젊은 철학도인 당신 사이를 때때로, 아마도 고통스럽게, 갈라놓았나요?

아렌트 :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그런 사실을 인식했을 경우에만 그랬겠지요. 그런데 나는 남들도 모두 나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우스 :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게 언제인가요?

아렌트 : 상당히 늦게요. 얼마나 늦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창피해요. 나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순진했어요. 부분적으로는 가정교육 탓이었어요. 집에서 성적 문제가 논의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 문제를 언급하는 건 열등한 일로 간주됐어요. 야심을 품는 것도 하나같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됐고요. 어쨌든 내 입장에서 상황은 그리 명확하지 않았어요. 나는 때때로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낯섦을 느끼고는 했어요.

가우스 : 그 느낌이 당신에게서 비롯한 거라고 믿었나요?

아렌트 : 맞아요. 순전히 나한테서 비롯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그건 재능하고는 아무 관련도 없었어요. 그걸 재능하고 관련지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가우스 : 그 결과 당신은 젊었을 때 때때로 남들을 무시했나요?

아렌트 : 그랬죠. 그런 일들이 생겼어요. 대단히 이른 나이에요. 사람들을 무시하는 그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자주 고통스러웠어요. 그래서는 못쓴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같은 책, 39-40p)


아렌트 : (전략) 상대적으로 자발적이던 글라이히샬퉁(Gleichschaltung. '정치적 획일화coordination'를 뜻하는 이 말은 나치 시대 초기에 자기 직위를 안전하게 지키거나 일자리를 얻으려고 변화한 정치 풍조에 투항한 광범위한 현상을 가리킨다. 더불어 이 용어는 전통적인 단체들―청년회와 온갖 종류의 클럽과 협회―을 나치의 고유 단체들로 전향시키는 나치의 정책을 가리키기도 한다―원주)의 물결 속에, 유대인들 주위에는 진공상태가 형성되는 것만 같았어요. 나는 지적인 환경에서 살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잘 알았어요. 게다가 글라이히샬퉁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법규였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니었죠. 나는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어요. 나는―물론 약간 과장된―그런 생각에 지배당한 독일을 떠났어요. '절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어떤 종류가 됐건 지적인 활동에는 두 번 다시 관여하지 않으리라.' 그런 무리하고는 조금도 연을 맺고 싶지 않았어요. 유대인들의 행동과 독일의 유대계 지식인들의 상황이 달랐더라면 그들의 행동이 달라졌을 거라고도 믿지 않았죠. 나는 그렇게 믿지 않았어요. 그러는 게 학자라는 내 직업과, 지식인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지금 과거 시제로 얘기하고 있어요. 오늘날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더 많아요…….

가우스 :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지 여부를 물으려던 참입니다.

아렌트 : 그때와 동일한 정도로는 이제 아니겠죠. 하지만 만사에 대한 신념을 날조하는 것이 지식인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속한다고는 여전히 생각해요. 처자식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전향한 사람들을 비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최악이라면 나치즘을 진정으로 신봉한 사람들이죠! 단기간에, 많은 이들이 대단히 짧은 사이에 그렇게 됐어요. 그 사람들은 히틀러에 대한 신념들을 날조해냈는데 그건 부분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상황이에요! 정말로 환상적이고 흥미롭고 복잡한 현상이에요! 정상적인 수준을 훨씬 웃도는 상황이죠! 나는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늘날 나는 그들이 자신들이 고안해낸 신념의 덫에 빠졌었다고 말하고는 해요. 당시 상황은 그랬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나도 상황을 그리 명확하게 보지 못했어요.

가우스 : 당신이 지식인 사회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 특히 중요한 이유가 그거였나요?

아렌트 : 맞아요. 긍정적인 측면은 다음과 같아요. 당시 나는 내가 되풀이해서 표현했던 이런 문장을 깨달았어요.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유다인으로서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 독일인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인권의 지지자로서가 아니라, 그 외의 그 무엇으로서가 아니라." 그런데 내가 유대인으로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 더, 이제는 조직과 함께 일하겠다는 의향이 명확해졌어요. 난생 처음으로요. 시오니스트들과 함께 일하겠다는 의향을 가진 거죠. 그들은 준비가 돼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어요. 나치에 동화한 사람들에게 합류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어요. 게다가 나는 그들하고는 정말로 아무 관계도 없었어요. 심지어 나는 그 시점이 되기 직전까지도 유대인 문제를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웠어요. 라헬 파른하겐에 관한 책은 내가 독일을 떠날 때 완성된 상태였어요. 그 책에서 유대인 문제는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요. 나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 책을 썼어요. 나는 유대인으로서 내 개인적인 문제들을 논하고 있던 게 아니에요. 하지만 유대교에 속한 것은 내 나름의 문제였고, 내 자신의 문제는 정치적 문제였어요. 순수하게 정치적인 문제요! 현실적인 연구에, 전적으로 유대인과 관련된 연구에 종사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품은 채로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어요. (같은 책, 42-47p)


아렌트 : 영어로 써요. 그런데 영어에 대한 거리감이 결코 없어지지를 않네요. 모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그 문제를 정말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독일어의 경우 나는 상당히 많은 독일 시를 암송할 수 있어요. 시들은 내 마음속 뒷자리에 늘 자리 잡고 있어요. 나는 그런 식의 암기를 다시는 할 수 없어요. 나는 영어로 하면 스스로 용납되지 않을 일들을 독일어로 해요. 다시 말해, 내가 대담해진 까닭에 때때로 영어로도 그런 일들을 하지만, 대체로 나는 영어하고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왔어요. 독일어는 나한테 남아 있는 본질적인 요소고, 내가 항상 의식적으로 지켜온 언어예요.

가우스 : 지독히 고생스럽던 시절에도 그랬나요?

아렌트 : 항상 그랬죠.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내가 할 일이 뭘까? 미치광이가 돼버린 것은 독일이지 독일어가 아니었어죠. 둘째, 모어를 대신할 언어는 없어요. (후략) (같은 책, 49p)


아렌트 : (전략) 우리는 그 사건(강제수용소의 전말이 드러난 사건) 전에는 "그래, 사람에게는 누구나 적이 있게 마련이지"하고 말했어요. 그건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람이 적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요? 그런데 이건 달랐어요. 정말이지 거대한 심연이 열린 것만 같았어요. 우리는 어느 시점이 되면 정치적으로 만사에 대한 보상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다른 만사에 대한 보상책도 그럭저럭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는 아니었어요. 이건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에요. 단순히 희생자의 규모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런 짓을 자행한 방법, 시신 훼손 등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와 관련해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에요. 거기서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걸 용납할 수 없었어요. 당시 일어난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라면, 그 시절이 때때로 꽤나 힘들었다고 말해야겠네요. 우리는 대단히 가난했고, 추적의 대상이었고, 도망 다녀야 했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헤쳐 나가야 했어요. 그 시절은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는 젊었어요. 심지어 나는 그런 상황에서 약간은 재미를 느끼기도 했어요―그 점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이 사건은 달랐어요. 이 사건은 차원이 완전히 달랐어요. 개인적으로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모두 감내할 수 있었어요. (같은 책, 50-51p)


아렌트 : (전략) 나는 정말로 아이히만이 어릿광대였다고 생각해요. 얘기 하나 할게요. 그의 경찰 조서를 읽어봤어요. 360페이지나 되는 조서를 읽고는 다시 한 번 매우 꼼꼼히 읽어봤어요. 그러면서 얼마나 낄낄거렸는지 몰라요. 나는 큰 소리로 폭소를 터뜨렸어요!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어요. 나는 그에 대해서는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요. 나는 숨이 끊어지기 3분 전에도 여전히 낄낄거릴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 어조가 그런 식이라고 말해요. 그 어조가 대부분 비아냥거리는 투라는 건 전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이때 내 어조는 정말로 개인적인 특징이에요. 유대인을 비난했다면서 사람들이 나를 책망한다면 그건 악의에 찬 거짓말이자 프로파간다지 다른 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어조에 대한 비난은 나를 사적으로 반대하는 거예요.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가우스 : 그런 비난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는 돼 있나요?

아렌트 : 그럼요. 기꺼이 받아들일 거예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한테 "당신들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 사실 나도 마음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고 있다" 하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건 말도 안 되죠.

가우스 : 이와 관련해서 당신이 개인적으로 한 발언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당신은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평생 그 어떤 사람들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인이건 프랑스인이건 미국인이건 아니면 노동계급이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말입니다. 나는 내 친구들만 사랑했고, 내가 잘 알고 또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을 향한 사랑입니다. 게다가 이 '유대인들의 사랑'은, 나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나한테는 상당히 의심쩍은 것으로 보이고는 합니다."(아렌트가 숄렘에게 보낸 1963년 7월 24일자 편지―원주) 뭘 좀 물어도 될까요? 정치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어떤 집단에 헌신할 필요가, 애정이라 불릴 수준까지 확장될 수도 있는 헌신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당신 태도가 정치적으로 무익할 수도 있다는 게 두렵지 않나요?

아렌트 : 두렵지 않아요. 난느 정치적으로 무익한 것은 그런 태도가 아니라 다른 태도라고 말할 거예요. 우선,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에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여러 종류의 집단에 속하게 돼요. 늘 그렇죠. 그런데 당신이 말한 방식으로 집단에 속하는 것은, 내가 말한 소속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집단에 가입하거나 그런 집단을 결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에요. 이런 종류의 조직은 세계와 관계를 맺게 돼 있어요. 조직화된 사람들은 대개가 이해관계라고 부르는 것을 공통으로 가져요.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물론 최우선으로는 진짜 사랑에 존재하고, 어떤 의미의 우정에도 존재해요. 그런 관계에서 사람은 그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하고는 무관하게 직접적으로 호명돼요. 따라서 매우 다양한 개인으로 구성된 조직에 개인들이 속하면 여전히 개인적으로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이를 혼동한다면, 협상 테이블에 사랑을 가져온다면, 직설적으로 말해 나는 그런 행동은 치명적인 짓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책, 55-59p)


아렌트 : 개인적 경험 없이 가능한 사유 과정이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요. 모든 사유는 뒤늦은 사유afterthought예요. 즉, 어떤 문제나 사건을 사후에 숙고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현대 세계에 살고, 내 경험은 분명히 현대 세계 내부에서 현대 세계를 겪어서 얻은 거예요. 결국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요. 그리고 단순노동과 소비의 문제는 정말로 중요해요. 그 영역에서도 일종의 무세계성이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이유에서요. 더 이상은 어느 누구도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아요.

가우스 : '세계'는 항상 정치가 비롯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해됩니다.

아렌트 : 나는 지금은 세계를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해요. 모든 게 공적 사건이 되는 공간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남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 공간으로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 세계에는 예술이 등장해요. 온갖 종류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케네디가 시인들 그리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하면서 공공영역을 꽤나 과감하게 확장하려고 애썼다는 걸 명심하세요. 따라서 그 모든 게 이 공간에 속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은 노동하고 소비하는 동안에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해요.

가우스 : 생물학적으로 의지하게 되죠.

아렌트 : 생물학적으로 의지하고, 자신에게 의지하죠. 그리고 그 영역에서 우리는 고독과 관련을 맺게 돼요. 노동하는 과정 중에 독특한 고독이 생겨나요. 지금 당장은 그에 관해 상세이 설명하지 못하겠네요. 그러다가는 논의가 지나치게 멀리 나가게 될 테니까요. 아무튼 이 고독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상태가 된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진정으로 상호 관련된 여러 활동을 소비 행위가 대신하는 그런 상황이죠. (같은 책, 66-67p)


가우스 : 마지막 질문을 허락해주십시오. 당신은 야스퍼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성은 혼자 힘으로는 절대 획득되지 않으며, 누군가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바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에 바친 사람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 실린 「카를 야스퍼스 찬사」―원주) 야스퍼슬르 인용한 이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이 한나 아렌트에게는 무슨 의미인가요?

아렌트 : 내게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은 명확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일개인으로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거죠. 사람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ㅇ르 알아요.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예요. 그게 하나의 모험이죠. 다른 모험으로는, 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게 있어요. 우리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에 우리 자신이라는 가닥을 엮어 넣어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우린 결코 몰라요. 우리 모두는 이런 말을 하라고 배웠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이건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 들어맞는 말이에요. 무척이나 간단하고 명확한 말이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요. 모험이 뜻하는 바가 그거예요. 요즘에 나는 이 모험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하곤 해요. 모든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것에 대한 신뢰―만들어내기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신뢰―말이에요. 그게 없다면 그런 모험은 행해질 수 없을 거예요. (같은 책, 70-71p)



2장 - (독일의 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인 요아힘 페스트와 한나 아렌트와의 인터뷰. 요아힘 페스트의 부모는 강성 반나치주의자였다)


아렌트 : 그게 정말로 새로운 유형의 범죄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단서를 달고 싶어요. 우리는 어떤 범죄자를 떠올릴 때 범행 동기가 있는 사람을 상상해요. 그런데 아이히만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무 범행 동기가 없었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행 동기라고 이해할 만한 게 없었다는 거죠. 그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를 원했어요. 그는 '우리'라고 말하고 싶어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와 '우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기'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극악한 범죄가 자행되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사실 히틀러 지지자들은 결국 이런 종류의 상황에 전형적인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타인의 지지가 없다면 무력해질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나는 아이히만에게 집중하고 싶어요. 그를 잘 아니까요. 내가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남들에게 동조하는 것―많은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데 끼고 싶어 하는 것―이 권력을 낳는다는 거예요. 혼자 있을 때는 당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늘 무력해요. 함께 행동하는 데서 유발되는 이런 권력의 느낌은 그 자체로는 절대로 그릇된 게 아니에요. 그건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에요. 그렇다고 선한 감정도 아니에요. 그냥 중립적인 감정이에요. 그건 단순히 하나의 현상이라고 기술할 필요가 있는 보편적인 인간적 현상이에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극도의 쾌감이 느껴지죠. 여기서 이런저런 근거를 한없이 인용하지는 않겠어요. 미국독립혁명 사례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기능하기functioning는 정말로 변태적인 행위 양식이고, 이런 기능하기에는 항상 쾌감이 따른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그렇지만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과 함께 행동하기, 즉 함께 상황을 논의하기, 어떤 의사 결정에 도달하기, 책임을 받아들이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사유하기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기능하기에서는 제거돼요. 당신이 거기서 얻는 것은 그저 관성대로 굴러가는 것freewheeling일 뿐이죠. 이런 단순한 기능에서 얻는 쾌감이, 이런 쾌감이 아이히만에게서 꽤나 눈에 잘 띄었어요. 그가 권력에서 특별한 쾌감을 얻었느냐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전형적인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공무원은 공무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일 때 정말이지 대단히 위험한 신사예요.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봐요. 내 눈에는 이게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여요. (같은 책, 76-77p)


아렌트 : (전략) 나는 내가 누군가를 꾸짖으면 그들이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그래서 전혀 흔하지 않은 말을 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너무 평범해(banal. '진부하다'라는 뜻도 있다)" 하고 말해요. 아니면 "별로 안 좋아" 하고 말하거나요. 그게 내가 말하려던 뜻이에요.

평범성banality은 정말로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었어요. 그 현상은 우리가 듣고 또 들었던, 솔직하게 말해서 믿기 힘든 클리셰와 표현 방식들에서 저절로 모습을 드러냈어요. 평범성으로 뜻하려던 바를 설명해줄 이야기를 해드리죠. 예루살렘에서 나는 에른스트 윙거Ernst Junger가 언젠가 들려주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전쟁 중에 에른스트 윙거는 포메라니아(독일과 폴란드 북부에 위치한 지역) 아니면 메클렌부르크(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 해에 면한 지역)에서―아니, 포메라니아였다고 생각해요―소작농 몇 명을 우연히 만났어요.(이 이야기는 『방사Strahlungen』에 나와요. 『방사』는 에른스트 윙거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쓴 일기를 모은 책으로 1949년에 처음 출판됐다―원주) 그런데 그 소작농 중 한 명은 러시아인 전쟁 포로들을 포로수용소로부터 넘겨받아 자기 집에 거둔 사람이었어요. 당연히 그 포로들은 쫄쫄 굶고 있었죠. 러시아인 전쟁포로들이 이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당신도 알 거예요. 소작농들은 윙거에게 말했어요. "글쎄, 그놈들은 인간 이하입디다. 소하고 다를 바가 없단 말이오! 그건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놈들은 돼지 먹이를 먹어치우니까요." 윙거는 이 이야기에 이런 코멘트를 했어요. "독일인들은 때때로 악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뭔가 '악마적'인 것을 뜻한 게 아니었어요. 봐요, 이 이야기에는 뭔가 터무니없이 멍청한 게 있어요. 멍청한 이야기라는 말이에요. 그 소작농은 굶주린 사람은 누구나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걸 알지 못해요. 그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텐데요. 이 멍청함에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게 있어요.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페스트 : 당신은 아이히만, 그리고 회스(1900-1947. 1940년 5월 중순부터 1943년 11월까지 재임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원주)도 특별히 독일적인 인물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조금 전에 칸트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히만 자신도 재판 중에 가끔 칸트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일평생 칸트의 도덕 계율을 따랐으며 칸트의 의무 개념을 그의 지도 원리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렌트 : 맞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꽤나 무례한 언급 아닌가요? 헤어 아이히만이 하기에는요. 결국 칸트의 총체적인 윤리학은 모든 사람은 행위를 할 때마다 자기 행위의 규범이 보편 법칙general law이 될 수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으로 종합돼요. 달리 말해…… 칸트의 윤리학은, 말하자면 순종하고는 완전 반대예요! 인간 각자는 입법자예요. 칸트철학에서는 어느 누구도 순종할 권리를 갖지 않아요. 아이히만이 칸트에게서 취한 유일한 것은 경향성inclination이라는 치명적인 개념이에요. 그런데 이런 개념이, 불행히도 독일에 널리 퍼져 있어요. 독일에서 의무라는 이 별난 개념은…… 얘길 좀 드릴게요. 히틀러나 아우슈비츠 재판에 회부된 보게르(Wilhelm Boger, 1906-1977. 경찰국장이자 강제수용소 감독관이었던 아우슈비츠의 정치부장으로 복무하는 동안 보여준 잔혹성으로 악명이 높았다. 1965년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에 회부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원주) 같은 사디스트들을 봐요. 히틀러는 아마 살인 본능을 가진 살인자였을 거예요. 내 생각에 이 사람들은 전형적인 독일인이 아니에요.

내가 복이에 독일인은 유달리 잔혹한 민족은 아니에요. 사실 나는 그런 민족적인 특징은 믿지 않아요……. 그럼에도 내가 방금 전에 한 이야기는, 윙거의 이야기는, 분명히 독일적이에요. 내가 말하는 바는 칸트가 말했듯이, 칸트가 한 말을 지금 인용해도 된다면요, "다른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이에요. 그래요, 그런 무능력……. 이런 종류의 멍청함. 이건 벽돌담을 상대로 말을 거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 봐야 아무 반응도 없을 거예요. 이 사람들은 당신에게 절대로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요. 그게 독일적인 거예요. 독일 특유의 것으로 나한테 깊은 인상을 준 또 하나는, 순종을 이상화하는 이 정신 나간 사고방식이에요. 우리는 어린 아이일 때, 그런 게 필요할 때 이런 의미의 순종을 해요. 그 나이에 순종은 굉장히 중요하나 문제예요. 하지만 열네 살, 늦어도 열다섯 살이 되면 그렇게 고분고분 순종하는 태도는 버려야죠.

페스트 : '맹세' '명령' '순종'을 언급하는 뒤편에는 단순한 변명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이히만은 이 단어들을 끝없이 언급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양육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물었죠. "내가 불복종을 해서 얻을 이득이 뭡니까? 그런 짓이 어떤 점에서 나한테 쓸모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더 이상 그에게 명령이 하달되지 않던 1945년 5월, 세상이 끝장나고 있다는 느낌에 갑자기 압도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렌트 : 지도자leader 없는 삶!(아렌트가 '지도자'를 가리키는 데 쓴 용어는 "총통Fuhrer"이다―원주)

페스트 : 순종이라는 문제는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예술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나 중심 사상)처럼 기능합니다. 재판 기록에서 그걸 읽을 수 있는데, 그 문제는 영원토록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완벽히 허깨비 같은 존재의 라이트보티프와 정말로 비슷합니다.

아렌트 : 맞아요. 우리는 이 허깨비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요. (후략) (같은 책, 82-87p)


아렌트 : 잘 알려졌듯 아이히만은 "뉘우침과 한탄은 꼬맹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어요. 뉘우침과 한탄을 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반면에 우리는, 어느 누구도 뉘우치고 한탄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그래요, 사실 우리는 그 짓을 이런저런 이유에서 했고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승패 여부는 그런 일을 한 원인 자체에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봐야 해요.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 그런 사례는 젖은 행주처럼 무너져버렸어요.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한 짓을 옹호하지 않았죠. 그리고 이 점은 당신이 방금 간단히 언급한 현상―순종―에 꽤나 중요한 듯이 보여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달리 말하면 그들은 그냥 남들에게 동조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들은 만사에 동조할 준비가 돼 있었어요. 누군가 그들에게 "우리와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당신은 고작 우리 중 한 사람일 뿐이야" 하고 말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죠. "절대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당신은 우리 중 한 사람일 뿐이야" 하고 말해도 그들로선 역시 좋은 일이고요. 그게 내가 그 상황을 보는 방식이에요.

페스트 :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미국인들에게 감금당하자 누군가 다른 사람의 리더십에 복종할 수 있게 돼서 기뻤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법정이나 심문, 예비심문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할 준비가 돼 있던 그의 기이한 태도는, 아마도 그가 어떤 종류의 권위건 현존하는 권위라면 거기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과 동일하게 해석됩니다. 권위라면 그게 어떤 종류건 실현 가능한 한계까지 순종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거죠.

아렌트 : 믿기 힘든 일이에요. 그는 예루살렘에서 놀라울 만큼 행복감을 느꼈어요. 거기에는 조금도 의문의 여지가 없어요. 재판장은 란다우(Moshe Landau, 1912-2011. 아이히만을 주재한 판사로 그 자신이 나치 독일을 탈출한 망명자였다―원주)였고, 레스 경감(Captain Avner W. Less, 1916-1987. 1961년에 공판 전 심문으로 아이히만을 275시간 동안 심문한 이스라엘의 젊은 경찰관―원주)까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등장했죠. 헤어 물리쉬가 올바르게 말했듯, 아이히만은 레스 경감을 고해신부처럼 활용했어요. 그는 "경감님, 모든 것을 기꺼이 말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죠. 물론 그는 돋보이는 인물이 되고 싶어도 했어요. (후략) (같은 책, 90-93p)


아렌트 : (전략) 그들은 굳이 동조할 것 없이 스스로 결심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만…… 당신들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목숨을 거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나는 어느 누구하고도 뜻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내가 억지로 동의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겁니다." 이럴 수도 있었다고요. '우리'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는 것―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중략)

우리가 볼 수 있듯, 동조했던 사람들은 늘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했어요. 그들은 늘 말했죠. "우리는 상황이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계속 그 상태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후략) (같은 책, 93-94p)


아렌트 : (전략)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내놓은 또 다른 명제가 있어요. 내가 보기에 다음 명제가 우리에게 그 이유를 제공하죠. "자기 자신과 불일치disunity하는 것보다는 세계 전체와 불일치하는 편이 낫다. 나는 통일체unity니까." 내가 나 자신과 통일돼 있지 않다면 감당할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요. 이를테면 그건 도덕 영역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인데, 칸트의 정언명령에서 보아도 여전히 타당한 얘기예요. 이 생각의 전제라면 실제 현실에서 내가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나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나는 이러저러한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에요. 그런 짓을 저지른 누군가와 같이 살길 원치 않으니까요. 내가 이러저러한 짓을 저질렀다면 나한테 남은 유일한 길은 자살이 될 거예요. 아니면 시간이 흘러 기독교적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내 행동 양식들을 바꾸고 회개를 해야겠죠.

자존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건 기본적으로 사유를 하는 거예요. 전문적인 사유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유를 말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런 생각의 뒤편에 있는 추정은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세계와 굉장히 심하게 분열해서 나 자신과―어쩌면 친구와, 그리고 다른 자아와―대화하는 데 의지하는 것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근사하게 말한 "자기 안의 타인autos allos"처럼 말이에요. 내가 보기에 이것은 무력한 상황이 실제로 어떠할지 모여줘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냥 뚜벅뚜벅 갈 길을 간 사람들은 자신이 무력하지만 이 명제를 고수한다는 것을, 무력한 누군가도 여전히 사유는 할 수 있다는 명제를 고수한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들이죠.

페스트 : 아이히만과 대량 학살에서 관료제가 수행한 역할 문제로 돌아가죠. 관료주의적인 조직에 투입된다는 것은 개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어떤 사람이 권위 있는 조직의 일부일 때 부당함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많이 증발할까요? 개인에게 주어진 책임은 그저 부분적인 책임일 뿐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의 도덕적 통찰을 얻지 못하게 할까요? 아이히만은 "나는 내 책상에 앉아 나한테 주어진 일을 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나치의 전직 단치히(Danzig. 폴란드의 항구도시) 지방장관은 그의 공적인 영혼은 항상 그가 한 일과 일치했지만 사적인 영혼은 항상 그걸 반대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렌트 : 맞아요. 이게 이른바 살인자들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내면적 이민(internal emigration. 나치즘에 반대했으면서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에도 독일에 남기를 선택한 독일 작가들을 일컫는 논쟁적인 용어)이에요―이것은 내면적 이민이나 내면적 저항inner resistance이라는 개념 전체가 소멸했다는 뜻이죠. 내 말은, 그런 건 없다는 거예요. 세상에는 외면적 저항만 있을 뿐이에요. 인간의 내면에는 기껏해야 심리 유보(Reservatio mentalis. 노골적인 거짓말은 아니지만 역시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의 한 형태)만 있어요. 맞죠? 그것들은 허깨비들이 하는 거짓말이에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단히 역겨운 거짓말이요. 관료제는 대량 학살을 행정적으로 자행했고, 그런 상황은 여느 관료제가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익명성의 느낌을 창출해냈어요. 개별적인 인간은 사라졌어요. 관련된 개인이 판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다시금 인간이 돼요. 이게 실제로 사법 시스템의 대단히 인상적인 측면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진짜 변신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 사람이 "하지만 저는 그저 관료일 뿐이었습니다" 하고 말하면 판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잘 들어요.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그게 아니오. 당신이 여기에 서 있는 것은 당신이 인간이고 당신이 어떤 짓들을 저질렀기 때문이오." 이런 변신은 뭔가 대단히 인상적이죠.

관료제가 본질적으로 익명성을 갖는다는 사실 말고도, 무자비한 행위는 무엇이건 책임이 증발되는 것을 허용해요. "멈춰서 생각해보라Stop and think"는 영어 관용구가 있어요. 어느 누구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생각에 잠길 수 없어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무자비한 짓을 강요하거나 또는 그들 스스로 그런 짓에 빠져들도록 방치할 경우 늘 똑같은 이야기로 귀결돼요. 그렇잖아요? 당신은 책임에 대한 인식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번번이 알게 될 거예요. 그런 인식은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숙고하는 순간에만 발전할 수 있어요. (같은 책, 96-101p)


페스트 : 예루살렘 법정은 이 질문에 대한 결정적인 답도 내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목숨이 위태로웠던 피해자들과 관련한 대중 범죄mass crime에 머물지 않고 가해자들하고도 관련이 있는 범죄라고 밝혔을 때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다음 문장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과……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는 책임 범위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의 정도는 자신의 두 손으로 치명적인 살해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증가한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바이킹 펭귄, 1963) 247쪽을 보라―원주) (같은 책, 102p)



3장 - (독일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아델베르트 라이프와 한나 아렌트가 나눈 대담이다)


아렌트 : (전략) 역사를 보면 선한 상황은 지속 기간이 대단히 짧은 게 보통이지만 이후로 장시간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요. 그리스의 진정한 고전적 시기가 얼마나 짧았는지 생각해봐요. 그런데 그 시기는 사실상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어요. (같은 책, 115p)


아렌트 : (전략) 혁명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탄압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스스로 혁명의 길을 이끈 적은 결코 없었고, 탄압도 멸시도 받지 않았지만 남들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한 사람들이 혁명을 이끌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동기를 인정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에요. 이런 수치심은 대단히 유서가 깊은데, 여기서 그 역사를 세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혁명의 역사에도 대단히 흥미로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혁명에는 항상 도덕적인 요인이 등장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게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거지요.

"굽실거리지 않는" 문제의 경우, 그건 당연히 일본이나 독일처럼 권력에 아부하는 정도가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높은 나라들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요. 반면 내 기억에 권력에 굽실거린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던 미국에서 그건 정말로 무의미한 문제예요. 나는 이런 국제적인 운동은 나라별로 자연스럽게 다채로운 색을 띤다고 이미 언급한 바 있어요. 그리고 이런 국가별 착색은, 착색 자체의 성격상, 때때로 대단히 강렬한 특색이라는 것도 언급했고요. 그런 착색 때문에, 특히 외부인 입장에서는,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오인하기가 쉬워요. (같은 책, 116-117p)


아렌트 : (전략) 학생들이 대학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면 결국 자신들의 활동 근거지도 파괴해버리고 말 거예요. 그리고 그건 그런 운동의 영향을 받은 모든 나라에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맞는 말이겠지요. 그들은 또 다른 근거지를 찾아내지는 못할 거예요. 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곳이 대학 말고는 한 군데도 없을 테니까요. 대학의 파괴는 그에 뒤이운 운동 전체의 종말을 의미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게 교육 시스템이나 연구 시스템의 종말은 아닐 거예요. 두 시스템은 무척 다른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어요. 전문적인 훈련과 연구를 위한 다른 형태의 조직과 기관을 상상하는 것은 완벽하게 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기관에 대학생은 더 이상 없을 거예요. 우리, 학생의 자유라는 게 사실상 무엇인지 생각해봐요. 대학은 젊은 사람들이 다년간 모든 사회집단과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가능하게 해줘요. 학생들이 대학을 파괴한다면 그런 상황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죠. 결과적으로 사회에 맞선 저항도 존재하지 않을 거고요. 그들은 일부 국가에서, 그리고 여러 시기에 걸쳐 자신들이 걸터앉은 나뭇가지를 톱으로 잘라내는 작업을 거의 마쳤어요. 그런 작업이 결국에는 난동을 벌이는 것으로 이어져요. 이런 식으로 학생 저항운동은 그들의 활동을 요구하는 세력을 얻는 데 사실상 실패할뿐더러 완전히 박살 날 수도 있었죠. (같은 책, 123p)


아렌트 : (전략) 나는 우리가 역사로부터 대단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는 확신하지 않아요. 역사는 늘 새로운 내용으로 꾸준히 우리와 대면하니까요. 하지만 마땅히 학습할 수 있어야 할 사소한 것은 몇 가지 있어요. 나는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그런 식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사람을, 그런 현실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수고를 감당하려는 사람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의혹들을 가득 품게 됐어요. (같은 책, 126p)


아렌트 : (전략)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믿음을 찾아 나서는 대신 현실을 목도하고는 그것을 고려하며 상황을 바꾸려 시도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에요. 반볼셰비키주의자들이 미국은 악마라는 주장을 유지하느냐 여부는, 그들의 사고 습관이 이전처럼 계속되는 한 다를 게 전혀 없는 주장들이죠. 그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똑같아요.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죠.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어떤 사람이 그 시대가 띠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두루 모른다면, 여러 나라 사이의 기초적인 상황과 다양한 발전 단계와 전통, 생산 유형과 단계, 기술, 사고방식 등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간단히 말해 그 사람은 이 분야에서 활동할 방법과 형세를 살필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눈앞에 단 한 가지만, 온통 검은색만 보이게 만들려고 세상을 산산조각내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같은 책, 143-144p)


아렌트 : (전략) 미국 학생들은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할 때 조국과 그들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에 반대해요. 독일 학생들은 같은 일을 해도 이란의 샤에게 반대하는 것과 비슷하고요. 그 시위에는 참가자들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눈곱만치도 존재하지 않아요. 국제 정세에 대해 책임감도 없고 위험 요소도 없는 열정적이기만 한 관심이 현실적 국익을 은폐하는 망토 구실을 하는 경우가 잦았죠. 정치에서 이상주의는 불쾌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동원하는 핑곗거리에 불과한 경우가 빈번해요. 이상주의는 현실을 완전히 회피하려고 내세우는 형식일 수도 있어요. (후략) (같은 책, 152p)



4장 - (프랑스국영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 프로그램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로제 에레라와 한나 아렌트가 나눈 대담을 복원한 것이다)


에레라 : 내가 보기에 우리 세기는 역사적 결정론에 바탕을 둔 고집스러운 사고방식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렌트 : 맞아요. 나는 역사적 필연에 대한 이런 믿음에는 대단히 훌륭한 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전체적인 사안과 관련한 골칫거리는, 이건 정말로 미해결된 안건인데, 다음과 같아요. 우리는 미래를 몰라요. 세상 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감안하면서 행위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요. 미래는 현재 만들어지는 중이니까요. 행위는 '우리'가 하는 것이지 '나'만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유일한 사람인 곳이 있다면, 나 혼자만 있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언할 수 있겠지만요. 이런 점이 실제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적으로 불확정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요. 우발성은 정말로 모든 역사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에요. 미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변수들에, 달리 말해 단순한 hasard(우연)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한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에, 아프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한편 당신이 역사를 회고적인 시선으로 돌아본다면, 당신은―이 모든 일이 우연한 것이었다고 해도―사람들에게 앞뒤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모든 역사철학 입장에서는 바로 그것이 진정한 문제예요. 과거를 돌아보면 역사가 항상 다른 식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는 식으로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요? 모든 변수가 자취를 감췄고 현실이 우리에게 그토록 압도적인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한히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것들에 신경을 쓸 수 없는 거죠.

에레라 : 그런데 역사가 이렇게 역사적 결정론을 반박하고 있는데도 우리 동시대 사람들이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지나치게 고수한다면 그건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하기 때문일까요?

아렌트 : Ja.(맞아요.) 확실해요. 딱 맞는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렇다는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에요. 그들이 입을 연다면 우리는 그 즉시 논쟁을 시작할 수 있어요. 그들이 그 문제를 말하려고만 든다면요. 사람들은 두려워해요.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게 개인의 주요한 동기 중 하나예요. 사람들은 자유를 두려워해요. (같은 책, 173-174p)


아렌트 : (전략) "moi je me sers ou je peux(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마음대로 할 거예요)". 나는 내가 취할 수 있고 나한테 적합한 것은 무엇이든 취해요. 우리 시대의 커다란 이점 중 하나는 르네 샤르(Rene Char, 1907-1988, 20세기 중반의 프랑스 시인)가 말하기도 했죠. "Notre heritage n'est garanti par aucun testament.(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을 보장하는 유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레라 : ……어떤 유언장도 앞서 존재하지 않았다…….

아렌트 : ……n'est précédé par d'aucun testament. 이건 어느 곳에서건 우리가 과거 경험과 사유를 나름껏 취하는 데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뜻이에요.

에레라 :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자유는 몇몇 기성 이론, 기성 이데올로기를 찾아내 적용하길 좋아하는 많은 동시대 사람에게 경고 신호가 되지 않을까요?

아렌트 : Certainement. Aucun doute. Aucun doute.(분명히 그렇죠.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정말 그래요.)

에레라 : 이런 자유가 소수 사람들, 그러니까 새로운 사고방식을 고안해낼 만큼 충분히 강인한 사람들의 자유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을까요?

아렌트 : Non. Non.(아뇨, 아니에요.) 그건 오로지 모든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고 나처럼 심사숙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그래서 원할 때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에만 의지해요. 그의 내면에서 이런 소망을 이끌어내는 법은 나도 몰라요. 내 생각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réfléchir(심사숙고)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실제로 모든 사유는 엄격한 법칙, 일반적인 확신 등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기반을 약화시켜요. 사유하다가 일어나는 모든 일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비판적으로 검토할 대상이 돼요. 즉, 사유 자체가 그토록 위험한 일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위험천만한 사유란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어떻게 확신하느냐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나는 사유하지 않는 것이, ne pas réfléchir c'est plus dangereux encore(사유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할래요. (같은 책, 178-180p)


아렌트 : 내 생각에 당신은 이 논지와 관련해서 약간 틀렸어요. 종교를 말할 때 당신은 당연히 교리와 믿음의 종교인 기독교를 떠올려요. 그런데 기독교의 그런 성격이 유대교에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은 아니에요. 유대교는 민족과 종교가 일치하는 민족종교예요. 유대인들이, 예를 들어, 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유대인 입장에서는 세례가 있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걸 당신도 알 거예요. 즉, 유대인은 유대인의 법을 따르는 유대인으로 존재하길 절대로 멈추지 않아요. 누군가가 유대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는 한―la recherche de la paternité est interdite(그는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걸 금지당했다)―그는 유대인이에요. 종교가 무엇이냐 하는 개념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에요. 기독교라는 특별하고 구체적인 의미에서 볼 때 유대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생활 방식에 더 가까워요. 내가 유대식 가르침을 받고 종교적 가르침을 받은 게 기억나요. 열네 살쯤이었는데, 나는 물론 선생님한테 반항하고 싶었고 선생님한테 뭔가 끔찍한 짓을 하고 싶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저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 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이러더군요. "누가 너더러 믿으라던?" (같은 책, 187-188p)


아렌트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 의도 중 하나는 악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깨뜨리고, 사람들이 리처드 3세 같은 엄청난 악인들에게 품고 있는 존경심을 사람들에게서 걷어내는 것이었어요. 브레히트에게서 잉런 문장을 찾아냈어요. "거물 정치범들은 사람들 앞에, 특히 폭소 앞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들은 거물 정ㅣ범들이 아니라 거대한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로,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히틀러가 벌인 일들이 실패했다는 게 그가 멍청이였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 히틀러가 멍청이라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가진―히틀러의 정권 장악 이전에 히틀러를 반대했던 모든 사람이 가진―편견이에요. 따라서 대단히 많은 책이 히틀러를 옹호하면서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죠. "히틀러가 실패했다는 게 그가 멍청이였다는 것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그가 벌인 일의 규모가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즉, 멍청이도 위대한 인물도 아니라는 얘기죠. 이 모든 범주의 위대함에는 마땅히 적용할 대상이 없어요. 브레히트는 말하죠. "조무래기 사기꾼이 위대한 사기꾼이 되는 걸 지배계급이 허용한다면, 그는 우리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특권적 위치에 설 자격이 없다. 즉, 그가 위대한 사기꾼이 됐다는 사실과 그가 한 일이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 그의 위상에 덧붙지는 않는다." 그(브레히트)는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갑작스러운 말을 했어요. "비극은 인류가 겪는 고통을 희극이 그러는 것보다 덜 진지한 방식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물론 충격적인 발언이에요. 동시에 나는 전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필요한 것은―당신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진실성을 유지하고 싶다면―그러한 상황들을 살피던 오랜 방식들을 기억해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무슨 일을 하건, 설령 그가 1000만 명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어릿광대다. (같은 책, 192-193p)


아렌트 : (전략) 예컨대 아이히만은 그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그 어떤 일에도 괴로워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그도 한 가지 사소한 사건에는 괴로워했어요. 빈에서 유대인 공동체 회장을 심문하다가 그 사람 뺨을 때린 일이죠. 사람 얼굴을 때리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일들이 많은 이에게 일어났다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요. 하지만 그는 뺨을 때린 자신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고, 그걸 대단히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그는 모양새가 빠졌던 거예요. (같은 책, 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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