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페이스> 영화 같은 삶 영화 같은 드라마
오뉴블과 러시안 돌을 거쳤다면 이 드라마는 당연히 눌러봤을 것이다. 주연인 나타샤 리온도 제작에 참여한 이 드라마는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찰리 케일(나타샤 리온)이 휘말리는, 혹은 몰고 다니는 사건을 다룬다. 찰리는 똑똑한 데다 직감과 사교력을 갖췄고, 어쩌면 그 비범함이 그를 현재의 삶으로 몰고 왔을지 모른다. 친구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파헤치다 카지노계 거물의 아들의 죽음과도 엮이게 된 찰리는 그때부터 핸드폰을 부수고 집과도 같은 차 한 대만 몰고 종적을 감춘다.
그때부터 찰리는 정해진 거주지나 직업 없이 낯선 곳에 몸을 숨기거나 그곳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물론 핸드폰과 ATM은 일절 금지다. 그 거물의 측근인 클리프가 늘 쫓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천만하고 안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이지만, 찰리는 그 와중에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잠시나마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그런 노매드의 생은 종종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삶도 영화 같지만 포커페이스가 영화 같은 드라마인 이유는 바로 삶의 일회성에 있다. 보통 드라마는 개별 에피소드의 첫 장면을 봐도 우리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하나의 큰 이야기 속 이어지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전 편이 끝나면서 다음 편의 전개를 암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찰리가 새 에피소드를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옮겨온 뒤다. 첫 장면은 늘 우리가 모르는 풍경이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 사건이 종결된다. 그래서 매번 다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찰리는 한때 포커 판에 몸 담았었고 지금은 모든 것을 아무 안전망 없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고된 생활을 이어간다. 때문에 가끔 그의 농담은 사카즘적이고 어둡기도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이 보여주듯 찰리는 마음이 끌릴 만한 인물이다. 누구에게든 쉽게 다가가고 어디서든 원래 있던 것처럼 녹아든다. 경계심이 없고 남들과 잘 친해져 입 다물고 있는 살인 용의자에게 자신의 추리를 줄줄이 늘어놓기도 한다. 일 년을 꼬박 숨어 다니면서 찰리는 텍사스의 바비큐 식당, 극단, 메탈 콘서트부터 요양원과 영화 소품 제작자의 집까지 쏘다닌다.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이유로 멋지게 풀어내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그 사건의 한가운데 휘말리기도 한다.
도피생활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싶을 때쯤 찰리는 눈 속에 고립된 산장에서 관찰자가 아닌 피해 당사자가 된다. 요령 좋게 수 차례 위기를 넘겨왔지만 도망칠 수 없는 시간은 다가오는 법이다. 이번에도 천만다행으로 살아나나 한 순간, 찰리는 이미 클리프의 손안에 있다. 뜻밖에도 찰리를 쫓던 이는 그에게 회복할 시간을 준다. 또 다른 일에 찰리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번 일만 끝나면 정말로 자유라고 말한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생활은 그만 청산하게 해 주겠다고. 하지만 그런 기회는 남이 줘서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번에도 안정적인 삶은 잡힐 듯하다 손끝에서 빠져나가고, 찰리는 또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다음 장면에서 이번에는 뜻밖에도 찰리의 언니가 나타난다. 넓은 세상에 혈혈단신인 것 같던 찰리에게도 혈육과 어린 조카가 있었다. 둘은 수년 만에 만난 듯하지만 언니 엠은 찰리를 반기지 않고 찰리도 이 뜻하지 않은 만남을 불편해한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 않을 것처럼 헤어질 때, 엠은 우리가 잘 지낼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넌 그 인생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고 살 일은 없다고 못 박는다. 찰리는 자신의 재주를 올바르지 않은 일에 썼다. 어쩌면 쉽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딸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책임을 마주하고 규칙을 지키며 꾸려온 엠의 삶에 그런 찰리가 발 들일 순 없었다.
그렇게 엠의 집을 떠나온 찰리는 어떻게든 이번에도 위기를 모면한다. 비상한 머리와 운, 그리고 그의 성격과 재주로 끌어들인 인맥 덕이었다. 그렇다고 찰리가 위협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거머쥐었을까? 그럴 리 없다. 새로운 적이 전쟁을 들먹이며 찰리를 쫓기 시작한다. 이전 적과 똑 닮은 말들로써 말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인 갈고리처럼 찰리는 끊임없이 그런 일에 꿰여 돌아온다. 수화기 너머 “지금 네 인생, 그걸 계속하고 싶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묻자 찰리는 이게 내가 잘하는 일이고, 얼마나 버틸지는 이제부터 같이 알아보자며 웃곤 전화를 끊는다. 그리곤 다시금 끝도 없는 고속도로가 찰리의 앞에 펼쳐진다.
찰리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떳떳한 일만 하고 살진 않았어도 자기 힘으로 많은 이들을 도왔고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안다. 그렇게 드라마는 끝나지만 인생은 계속될 것을 암시한다. 결말을 꽝꽝 못 박아두지 않고도 시원스럽고 후련한 마무리를 한 것이다. 최근 본 대부분의 시리즈가 다음 시즌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예고편 같은 엔딩을 보여주는 데 지쳐 있었는데, 포커페이스는 시즌2의 가능성을 완전히 틀어막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했다. 대놓고 기대감을 유발하지 않아도 다음 시즌 소식이 들려오면 기분 좋게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착하게, 스스로 당당할 수 있게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인 삶만이 정답은 아니다. 나타샤 리온이 연기하는 또 다른 매력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이 한 편의 영화 같은 드라마가 그 점을 다시 되새겨준다.
*왓챠에서 시청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