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라면 된다

추억의 옛날 떡볶이

by 떡믈리에


몇 년 전 어느 초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미팅을 위해 올라오는 고객을 모시러 청량리로 향했다.


기차역은 유독 사람들의 움직임이 직선적이다.


멍하니 걷다보면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치이곤 한다.


여행의 설레임 때문인지 열차의 정시성 때문인지 다들 약간은 분주하고 약간은 흥분해있다


혼잡한 역내를 지나 역사 밖에 있는 벤치에 걸터 앉은 나는


붐비는 통에 쭈구렸던 마음을 펼쳐 여유를 찾아본다.


정신없는 실내와 달리 한산했고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오래지 않아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발수코팅이 벗겨지지 않은 새 군복에 심플한 계급장.


아마도 첫 휴가를 나온 것 같은 젊은 군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딘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았다.


자꾸만 들어보이는 그의 지샥 전자시계,


팔과 함께 발광하는 시계의 백라이트가 그의 눈빛만큼이나 깜빡거렸다.


그래 조급할만하다.


예전에 우리도 첫휴가 4박 5일을 4.5초라고 했었지.


군복무 기간이 우리의 부모세대보다 절반가까이 줄어든 지금에도


휴대 전화와 각종 SNS가 오픈되어 있는 지금에도 첫 휴가의 가치는 변함 없으리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여자친구? 군대 선임은 아니기를 바란다.


휴 나의 슬픈 추억을 떠올리려는 찰나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었다.


"야... 죽을 것 같아"


약간의 욕설과 친근한 말투가 들려오는게 아마 친구에게 전화를 건 것 같았다.


"괜찮을까? 무슨 말 하지?"


여자네. 여자여.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뭔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괴는 척 하면서 슬며시 반대쪽 귀를 막아보았다.


"아니 그거 이게 사실 너무 쌩뚱맞잖아"


"그치만 지금 군대에 있고..."


"밖에 있을 때도 ...였는데..."


한 손으로 모자를 벗고 뒷머리를 긁는 그에게 전화기 저편의 친구는 연신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아 괜히 만나자고 했어... 차라리 전역 하고 볼 걸 그랬나..."


언성이 높아진 상대방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환갑 되면 잔치 가서 고백해 그럼'


아마도 이 친구, 오래 지켜보고 오래 참아온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저편의 친구는 그 사랑의 이력을 아는 것이겠지.


청춘이니 젊은 혈기니 하면서 젊은이들이 기운차고 무모하고 활기차리라 수식하지만


하지만 대부분의 젊음은 무기력하고 위축되어 있다.


대부분 처음이고, 두렵고, 소심해진다. 사랑과 연애도 그렇다.


그리고 청춘은 후회한다. 모름지기.


좋아한다고 말하지 그랬어.


그 때 그냥 손 잡아봤으면 어떨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


먼저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지.


한 때 청춘이었던 그들처럼, 아마 이 친구도 그랬나보다.


(근데 환갑 잔치에 문 열고 들어가서 고백하면 그거 나름 박력있긴 하겠다)


"어 아니 안 샀어. 아 쫌 그건 쫌 오바 아니냐..."


아. 고백하는 남자가 살 것은 뻔하지.


비트코인 아니면 꽃이다.


나라면 꽃을 샀을텐데...


보이는 꽃집에 뛰어 들어가서,


"꽃... 꽃... 꽃을 주세요.. 여자가 받으면 좋아할 만한 꽃 아무거나 주세요!" 외치리라.


마치 은하영웅전설의 볼프강 미터마이어처럼, 꽃을 사야 프로포즈지. 암.


"무슨 말을 하지. 그래도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


"갑자기 어떻게 사귀자 그래"


그래 갑자기 그러진 말고...


거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넌지시 친구의 얘기 처럼 돌려 한 말... 참 좋은 친굴 뒀노라며 샐쭉...


"어 지수가 떡볶이 좋아해서 거기 지수네 학교 앞 떡볶이집 가자고 했어"


떡볶이?


어 이 사람 보게 훌륭한 사람일세.


근데 그 가게는 어디일까. 지수 혹시 학교 어디 다니니...


학교 앞 떡볶이집이라 하면 어떤 곳일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공학일까... 여대일까... '학교 앞'이라고 까지 말하는 걸 보면 학교에 정말 가까운 곳일텐데...


"아니 지수가 먹고 싶다고 했어. 아니 지수는 그런 거 안 좋아한다던데..."


"어?!"


...


...


갑자기 그가 놀라며 큰 소리를 냈다. 넓은 공간에 그의 목소리가 짧게 울리며 그 곳에 정적을 낳았다.


지나가던 행인도 그를 주목할만큼 큰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정적 속에서 시선이 그에게 이끌려 눈이 마주쳤다.


그는 죄송하다며 가볍게 눈인사를 하더니 전화기를 두 손에 모아쥐고 속삭였다.


"아닐텐데 지수도 최근에 가지 않았을까? 잘 검색해봐. 상단노출이 안 되어서 그런 거 아냐?"


아마도 가게가 없어졌나보다.


그래 코로나19로 많은 가게들이 타격을 입었고,


코로나19를 졸업했나 싶더니 지독한 경기침체가 시작되고 있다.


어려워진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니 요식업계는 직격을 받고 있다.


내가 가던 단골 가게들도 여럿 문을 닫았고...


겨우겨우 본인 인건비 뽑아가며 위태롭게 버텨가는 가게들도 부지기수다.


"어, 맞아 추억의 옛날 떡볶이... 이상하네 나도 전화 끊고 찾아볼게 아 어떻게하지..."


추억의 옛날 떡볶이.


성신여대 앞이네. 추억의 옛날 떡볶이. 아 언제였더라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 언덕 길 같은 신기한 곳에 위치했던 정겨운 가게


오늘처럼 선선하고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빼곡하게 진열된 잘 튀겨진 튀김들을 고르면서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한참을 웃었지.


그 때 그녀는 잘 지내고 있...


"아! 지수 왔나봐! 전화온다 나중에 연락할게! 어어 아 됐어 꺼져 끊어!"


벌떡 일어난 그는 약간 얼굴이 상기되고 잔뜩 흥분해 보였다.


"어어... 지금 나 거기 나와있어. 어디야 내가 그리로 갈게...


아 알았어 그럼 여기 있을게 여기 xx앞에 그 벤치"


휴. 다행이다.


이 친구가 이동했다면 나는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끝을 확인하기 위해 미행이라도 했어야 했다구.


고독한 미식가처럼 차려입고 미행이라니 그건 너무 가혹하다구.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휴대폰을 급하게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뭐해? 차라리 거울이라도 한 번 보는 게 낫지 않아?


맞다. 아까 그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했지.


그래... 어서 초인적인 속도로 새로운 옵션을 찾아내야 한다.


툭툭툭툭.


어느새 일어 선 채로 군화 뒤축을 구르고...


입이 마르는 듯 굳게 다문 입 속으로 잇몸을 씹는 모습...


"세창아!"


"어...엇?"


퉁. 퉁. 퉁퉁퉁...


그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 휴대폰을 놓쳐버렸고


휴대폰은 세 번의 재주를 넘고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둘 다 경직되어, 덤으로 나도 경직되어, 그 귀한 재주를 구경했다.


"어어어 왔어? 정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들이 원래 어떤 사이였는지 모르지만


--어떤 사이였건 간에--아주 어색한 인사였음은 분명했다.


침착해. 침착해.


"어...어...엇"


아, 휴대폰을 줍다가 이번엔 또 세워놨던 쇼핑백을 건드려 버렸다.


스르르르르... 짐이 쏟아졌다.


"아아 미안 잠깐만,,,,,,"


괜찮아. 침착해. 괜찮아. 침착해.


왜 항상 가장 모든 게 다 잘 풀리길 절실하게 바라는 장면에서는


잘 일어나지도 않던 일들이 연이어서 터져나오는지...


엿보던 나에게서 한숨이 터져나왓다.


주여 이 어린양을 지켜주소서.


"아 정말 오랜만이야! 휴 군대에 잠깐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이리 다 어색하냐 정신이 없어!"


당혹스럽고 어색한 미소.


자격지심이라고 해야하나 단순한 위축감이라 해야하나.


크든 작게든 사회와 분리되어 의무에 묶여 있다는 것이 주는 불쾌한 기분과


그로인하여 다른 선택지들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했단 열등감,


그리고 찾아올 것 같은 열패감에 대한 두려움,


넘겨 짚은 거라 아니라면 미안하지만


이 젊은 영혼의 복잡한 심경이 내 마음 속에서 휘몰아쳤다.


정말 짧은 정적과 내 생각의 소용돌이를 깨버린 건 약간 숨찬 듯한 그녀의 목소리였다.


"정말 많이 탔다!... 새까맣네!... 정말 고생 많았어!"


준비한 대사였을까. 약간은 어색하게. 끊어서 던진 그녀의 말.


"어 까맣지 그냥 군인이지 뭐... "


쓸데 없는 소리 한다.


"번호 매겨져서 관리되는 부품 같은 뭐 그런..."


거기까지만 해라.


"에이... 왜 그렇게 말 해!"


팡. 하고 그녀가 그의 등짝을 때린다.


"가자!"


그녀가 그의 어둠을 씩씩하게 걷어내고, 두 젊은이를 나아가게 했다


뚜벅. 뚜벅.


조금씩 멀어져 가는 둘의 대화가 궁금하고


조금씩 가까워져 갈 둘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그렇게 그들은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울림을 남긴 멀어져갔다.


멀어져가는 청춘을 보며 이미 멀어진 내 청춘에 붙여 혼자 상상해본다.


나란히 걷던 둘 중 한 명이 슬쩍 손을 뻗더니


옆 사람의 손을 잡는 상상을


아니면 갑자기


아무런 설명도 예고도 없이 확 껴안는 상상을.


그리고 이야기 하는거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의 사람이야.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원하던 그대로야."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고 너를 기다려왔어.

너로 인해 비로소 나는 완벽해져."


"1%도 더 필요치 않아.

그냥 너라면 되고 너로써 완벽해."


어딘가 언젠가 만날 사람을 기대하다,


비정한 운명의 파도에 농락당하고,


분주한 기차역의 인파 속에 휩쓸리듯이 인연의 끈을 놓쳐 엇갈리지 말지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서처럼


긴 이야기를 준비할 수 없다면, 그냥 이야기 하는거다.


"그냥 너라면 되고, 너로써 완벽하고, 너만을 원해."


그렇게 추억을 함께 만들고 간직하고


계속 같이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길 바래.


함께 했던 떡볶이집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길 바래.


어느 가을 날,


청량리역 어느 벤치에서 100%의 누군가와 마주할 청춘들을 위하여.







추억의 옛날 떡볶이(폐업)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22길 39-5 (동선동1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