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드 출고기>라는 글에서 오딧세이 살까 1년 고민하다 결국 1일 알아본 팰리세이드를 샀다고 했다. 애초에 오딧세이를 알아본 이유는 크게 안전함과 넓은 수납공간 때문이었다고 했다. 사실 후자는 전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 오딧세이를 고민한 이유는 오직 안전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2열 3카시트'.
카시트를 알아보는 다자녀(3자녀 이상) 아빠라면 "아이와차"라는 카페를 통해 이 카시트 설치 대원칙을 들어봤을 것이다. 3열보다는 2열이 안전하므로 3자녀의 경우에도 2열에 모두 앉히자는 것.
많은 카페 회원이 이 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듯하다. 기존 차 2열에 카시트 3개를 설치하려면 어떤 카시트를 사야 할지 묻는 회원한테, 카시트를 추천하거나 해당 차량 2열 3카시트 성공 후기를 공유해 주기도 한다. 신차차를 추천해 달라는 글에도 2열에 카시트 3개 설치 가능한 차를 추천하기도 하고. 실제로 나도 이 원칙을 한동안 지켰다. 모하비에 카시트 3개 설치해서 갓 태어난 막내까지 아이 셋을 태우고 다녔으니까.
다만 오늘날 "안전"이라는 개념에 비춰볼 때 모하비가 안전한다고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아이와차" 카페에서 가장 빈번히 추천되는 다자녀 차량이자, IIHS에서 항상 최고 등급을 받으면서 동시에 카시트에 최적화된 시트 & 벨트 구성을 가지고 있는 오딧세이로 기변 하려고 했다. (앞서 말한 오딧세이의 넓은 수납공간은 2열에 카시트 3개를 설치함으로써 확보된다)
하지만 <팰리세이드 출고기>에서 말한 것처럼 '2열 3카시트'라는 원칙을 포기하고 결국엔 팰리세이드를 구매했다. 거기서도 밝혔지만 팰리세이드를 사면서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당시에 내가 알기론 팰리세이드는 IIHS에서 처참한 성적을 받았고, 오딧세이를 안 사고 팰리세이드를 산다는 말인즉, 내 아이의 안전을 훼손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팰리세이드 타고 (애써 죄책감을 이겨내며) 가족여행 다니며 잘 살고 있었는데, 카페 매니저님이 IIHS 결과를 업데이트한 것을 봤다. 읭? 뭥미?
페이스리프트된 팰리세이드가 IIHS에서 Saftey Pick +를 받았다고. 오딧세이가 받던 성적을 팰리세이드가 받았다는 데서 약간 멍했음. 매니저님 말로는 페이스리프트 모델부터 IIHS 기준에 대응을 적극적으로 했다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죄책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팰리세이드 사길 잘했다고 한동안 기분 좋게 지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최근 뉴스 기사로 현대 기아 차 모두 IIHS 낙제점을 받았단다. 물론 팰리세이드도 포함. 자세한 내용을 보니 팰리세이드가 Saftey Pick + 받은 이후 진행한 강화된 기준의 2열 충격 시험에서 Poor(낙제) 등급을 받은 것. 홈페이지를 보니 특히 머리와 가슴 쪽 충격에 매우 취약했다고. 하, 그래, 그럼 그렇지.
다시금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근데 이번엔 단순히 팰리세이드가 위험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사람들한테 차(그리고 카시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는 것도 한몫했다.
우선 이번 강화된 시험 결과는 여러모로 눈여겨볼 점이 많았다. 가장 눈에 띠는 점은 그동안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혼다의 파일럿이 M등급을 받았다는 점이다(신문 기사엔 P라고 되어 있는데 IIHS홈페이지에선 M이었음).
팰리세이드를 타면서 한동안 지나가는 오딧세이를 보며 가슴앓이를 했더랬다. 그런데 점점 SUV인 팰리세이드에 적응하고 나니 미니밴인 오딧세이보다 같은 혼다 브랜드의 파일럿에 관심이 생겼다. 많은 사람이 욕하는 후진 인테리어 디자인과 옵션은 오히려 내 취향이었다. 그리고 저 개성이라곤 찾을 수 없는 외장 디자인도 딱 취저! 거기다 안전하기까지 하니, 팰리세이드가 아니라 파일럿을 샀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했다.
그런 파일럿도 이번에 강화된 시험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니?! 파일럿의 성적을 보고 오딧세이는 어떨까 궁금했다. 다시 한번 '아 결국엔 오딧세이여야 했던 건가?' 싶은 생각이 0.5초 정도 스쳐갔기 때문에.
?????!!!!!!!! 근데 이게 웬걸?
오늘 카페 매니저님이 공유한 결과를 보니 오딧세이가 팰리세이드와 같은 P를 받았다! 거기서 1차 충격. 카니발이 파일럿과 같은 M을 받았다는 데서 2차 충격. 다시 감정이 요동친다. 오딧세이 대신 팰리세이드 사면서 '안전을 포기한 대신 천만 원 굳었다'라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 페리된 리세이드가 오딧세이만큼 안전하다고 해서 '개이득' 하며 좋아했다가, 저번 주 팰리세이드 2열이 충격에 취약하다는 말 듣고 다시금 죄인 모드. 그런데 오늘 결과 보니 어차피 오딧세이 샀어도 나을 건 없었겠네 싶은 생각.
그러다 문득 내가 카페에서 알게 된 걸 여러 지인한테 알려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중 몇몇은 무척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답하길 곤란한 질문을 하기도 했더랬다.
-"IIHS 항목에 덤프트럭이 졸음 운전해서 뒤에서 시속 100km로 들이박는 경우도 포함되어 있냐?"
-"IIHS가 계속 기준을 높이는 데 지금 안전한 차 샀다가 몇 년 후에 안전하지 않다고 하면 어쩔 거냐?"
-"그 카페["아이와차"]에서 말하는 안전한 카시트 타면 차가 찌부돼도 사냐?"
-"IIHS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차에 국산 카시트 쓰는 거랑 제일 낮은 등급의 차에 제일 좋은 카시트 쓰는 거랑 뭐가 더 안전하냐?" 등등
이런 질문에 내가 답을 하지 못하면, 몇 년 전 온라인상에서 검증되지 않은 의학적 정보를 알려준 의료 전문인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던 부모와 다를 바가 뭐냐며 질책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이번 결과를 보니, 어쩌면 내가 정말로 그 사람들처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떠들어댄 게 아닌가 싶어졌다. 만약 내가 오딧세이를 추천해서 지인이 오딧세이를 샀다면? 얼마나 부끄러웠을 것인가?!
아이와차에서 알게 된 내용이 거짓이라거나 해롭다는 게 아니다. 아무리 옳고 좋은 정보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나)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해서 안 된다는 말이다.
이번 IIHS 결과를 보면 내가 진지하게 고민했던 오딧세이, 트래버스, 팰리세이드, 카니발 모두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 결과에 따로 거론되지 않은 차는 어떨까? 2열 3카시트에 용이한 좋은 다자녀 차로 종종 거론되는 차로는 트랙스 신형이나 푸조5008 그리고 시트로엥(정확한 모델은 모름)이 있다. '기술의 혼다'라 불리는 오딧세이와 파일럿도 이런데 과연 이 세 차라고 강화된 기준에 부합할까 싶은데...
결론.
1. 결국엔 오딧세이 대신 팰리세이드를 선택한 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게 좋은 의미로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니다.(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