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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의 눈 May 14. 2023

이 서비스를
안쓸 사람이 있을까요?

좋은 제품이 안 쓰이는 이유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는데, 너무 긴 출국 심사 대기줄에 기운부터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나마 출발할 때는 힘이 넘치지만, 돌아올 때 공항에서 줄 서는 일은 더 힘이 빠지는 것 같다. 만약에 출국 심사 대기줄을 없애거나 최소 3-5분 이내로 줄여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출처: 한국면세뉴스, 인천공항 출국심사 대기줄

 실현 가능성은 잠시 접어두고, 한 번 상상을 해보자. 사전에 출국자의 정보와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이나 정맥 같은 생체 정보를 받을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줄을 서서 사람이 티켓과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보다 몇 배는 빨라질 것이다. 생체 정보를 통해 신원 확인을 하다 보니, 관리자 1-2명만 두어 관리할 수 있으니 공항 측의 효율도 높아지게 된다. 상상을 더 해보자면, 어느 정도의 금액을 내고도 이용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입국 심사 줄은 퍼스트 클래스 이용객부터 이코노미 이용객까지 모두 똑같이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아니면 공항에 B2B로 서비스를 판매하고, 공항 이용객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서비스가 무료라면 안쓸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미 있다..!

 국내 공항에는 사전에 무인 바이오정보 사전등록대를 이용하여, 생체정보를 등록하면 국내선 탑승 수속을 빠르게 할 수 있다. 국내선 한정이기는 하지만 줄 서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드는 훌륭한 서비스이다. 유료여도 사용하지 않을까 싶은 서비스인데,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그런데 이 서비스는 잘 이용되지 않고 있다.

(사진 속 왼쪽) 유인 탑승 수속 줄 (오른쪽) 바이오 패스 줄

 위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은 제주 공항 사진이다('23.05.14). 기존 탑승 수속을 밟는 줄은 사진 밖까지 꽤 긴 줄이 있는 반면에 바이오패스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아 줄이 없다. 그렇다고 바이오패스를 사전 등록하는 줄이 긴 것도 아니었다. 일행이 직접 등록하는데 5분 남짓 걸릴 정도의 사전 등록줄이었으니 말이다. 5분만 사전 등록하면 줄을 안 서고 통과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20분 이상의 탑승 수속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려운 확률이지만 이 날짜만 이용률이 저조한 것일까? 놀랍게도 바이오패스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뉴스기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왜 안 쓸까?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를 해결하였고, 심지어 무료인 서비스이다. 직접 이용해 본 결과 서비스도 매우 간편하고 편리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20분 이상 줄 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일까?


 스타트업들은 고객의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효율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도 외면받는 경우가 있다. 외면을 받으면 고객의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위의 바이오패스 같은 사례들이 고객의 욕구를 충족 못 시켰다고 하기는 어렵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1. 비용과 학습

 새로운 서비스를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 자체를 소비자는 비용으로 느낀다. 실제로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이 훨씬 효율적인 것이 명백할지라도 말이다. 새로운 서비스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단기적인 시간과 노력이라는 비용으로 인해 소비자가 이탈하는 것이다. 


 바이오패스의 경우에는 서비스의 인지도가 낮다 보니 사용자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학습과 사전 등록하는 비용(시간과 노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말이다.


 비슷하지만 바이오패스보다 학습 비용이 훨씬 높았던 사례로 키보드가 있다. 현재 흔히 쓰이는 쿼티 키보드는 사실 비효율적인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 타이핑 속도가 더 빠르고, 손가락 부담을 줄이는 구조의 키보드가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이미 익숙해져 버린 키보드를 대체하기에 소비자가 느낀 비용이 너무 컸다. 또한 쿼티 키보드가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탓에 환경과 문화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에 대한 저항"을 불러왔다.


2. 변화에 대한 저항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게 되는 심리가 존재한다. 인간은 생각만큼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효율보다 기존 서비스의 친숙함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바이오패스의 경우 사전 등록을 하는 비용을 과대평가한 것도 있지만, 새로운 서비스를 택하는 것에 불확실성을 느껴서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기존에 사용하던 탑승수속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택하여 시간이나 비용적 손실을 보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괜히 사전 등록하다가 잘 안 돼서 다시 줄 서면 손해 아니야?' 같은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손실에 대한 불안감은 속도가 중시되는 상황에서 잘 느끼는 것을 생각하면, 공항의 바이오패스가 외면받는 이유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 외에도 단순히 바이오 패스의 줄이 없는 것을 보고 '이유가 있겠지', '나는 할 수 없는 서비스일 거야' 등의 집단적인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효율성' 그 자체가 서비스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기획한다면 솔루션의 효율성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관한 고찰을 넘어서 사용자의 행동과 문화적 요인 등도 고려해야 한다. 즉,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를 탐색하여 사용자가 진정으로 공감하는 제품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문학이 주목받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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