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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의 눈 Jun 17. 2024

1주일에 2개씩 가설 검증을 하면 생기는 일

3주 동안 6가지 가설을 검증했다.

벼랑 끝에서 깨우치다

 어쩔 수 없는 사업가의 생리현상 같은 습관 중 하나는 '최종 종착지'를 생생하게 상상한다는 것이다. 꿈꾸는 모든 기능이 담긴 제품, 꿈꾸는 모든 영역에 진출한 사업체, 꿈꾸는 모든 사업 계획을 진행된 후의 상태를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최종 목적지를 통해 탑 다운 형식으로 현재 해야 할 일이 도출되니까 말이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는 미래가 있다는 것은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2주 전부터 이 상상을 모두 버렸다. 정확히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창업 대회와 지원사업을 통해 시작한 사업인 탓인지 '최종 종착지'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탑 다운 형식의 사업 계획과 진행은 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객을 만나고, 제품 테스트를 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답정너'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수많은 사업 교육과 네크워킹 덕분에 대놓고 '이런 제품 필요하시지요?'라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니다. 특정 원하는 대답으로 몰고 가는 인터뷰를 하는 실수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었긴 했으나 '답정너'였다. 수집한 고객의 데이터를 편견 없이 바라보지 못했다. 고객 의견을 해석할 때 '최종 종착지'와 자연스럽게 연결 지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벼랑 끝에 와서야 깨달았다.


"거봐 역시 이 문제를 우리 솔루션으로 해결할 수 있다니까?"


'자아'를 뺀 가설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는 '자아'가 빠져야 한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내 '자아'가 듬뿍 들어간 제품의 최종 모습이 아니라 고객의 실제 필요와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1) 최대한 적은 리소스로 제품 만들기:

 일단 테스터를 모집하고 제품 만들기, 엑셀로 정보 정리하기, 없는 제품 구매 의사에 대한 콜드 메일, 없는 서비스와의 제휴 의사 콜드 메일, 가상의 이미지로 설문 조사 등 지난 2주간 시도했던 대략적인 방법들이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고객의 실제 요구와 반응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
감이나 직관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XYZ가설이 유용하다.

적어도 X퍼센트의 Y는 Z 할 것이다

 이 방식의 가설은 특정 고객 집단(Y)의 X%는 특정 반응(Z)을 보일 것이라는 구체적인 예측을 가설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를 정량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객관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1주일에 2개씩 검증해 보자

 처음 시작에 1주일에 2개씩 검증을 의도하진 않았다. 그냥 되는 데로 검증하다 보니 1주일에 2개씩 이제 4주 차에 접어들고 있다. 리소스를 적게 들이자는 것이 결코 대충 하자는 것은 아니었고, 필요한 만큼의 리소스를 들이기로 했다. 가령, B2C의 경우에는 베타테스터를 모집하고 그다음 구글시트로 서비스를 구현하기도 했으며, B2B 어프로치 메일에는 개발할 서비스에 대한 상세한 제안서를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결코 대충 만들어 운에 맡기는 것이 가설 검증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글 외에 아임웹, 메일, 왈라 등 외부 툴까지 다양하게 활용했다.


 다행히 테스터가 모이는 단계가 왔다면 그때서야 XYZ 가설이 필요하다. 테스터들이 모이지도 않았을 가능성을 넘어서 온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조금 더 리소스를 들인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가설 검증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전화 인터뷰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자아'를 빼기로 했으므로 테스트를 잘 참여하더라도 어떤 이유로 잘 참여하고, 어떤 점을 좋아하고, 어디서 매력과 불편함을 느꼈는지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다. 검증의 이유를 떠나서 하나의 고객 사례를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은 시작, 중간, 인터뷰까지 잘 정리하고 팀 내 공유하여 계속 진행할지 다르게 재정비해서 다시 테스트할 지를 정했다.


망하면 어떡해요?

 약 3주를 이렇게 지내면서 느낀 점은 그동안 비효율적으로 일을 했다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들었다. 조금만 고민하면 수요가 있는지 확인해 볼 방법은 정말 많다. 벼랑 끝에 와서인지, 아니면 검증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인지 실패가 전혀 두렵지 않게 되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열심히 개발한 제품이 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리소스가 적으니 망해도 타격이 없다. 창피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내향적인 성격임에도 창피해서 성공할 제품을 찾을 수 있다면 오히려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마음이 갖춰지자 비로소 서비스에 '자아'를 뺄 수 있었다. 내가 느린 편인지도 모르겠다.

스프레드 시트에서 시작한 서비스들

 확실히 테스트하는 과정은 멋지지 않다. AI가 난무하는 시대에 구글 스프레드 시트나 콜드 메일로 가설 검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수 많은 대기업이 스프레드 시트에서 탄생해 온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건 스프레드 시트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이를 빠르게, 많이 해보려면 필연적으로 리소스가 줄어야 하고, '자아'를 빼고 가설을 검증해야 한다. 늦게나마 알게 된, 어쩌면 모든 스타트업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겠지만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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