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일이 많은 너에게.

두려움의 알파와 오메가를 찾아서.

by 수련

한창 자다가 깨서 베개 옆에 엎어놓은 핸드폰을 뒤집어 화면을 켰는데, 연락 주고받는 일이 드물어진 누군가의 카톡 알림창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시야가 흐린 눈을 비비며 미처 쫓아내지 못한 졸음을 때문에 눈만 끔뻑였을 텐데, 어째 내 심장이 요란하게 출력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두 눈꺼풀이 강제로 샷따를 올렸다. 비상!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프게 두근댄다. 이건 지금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난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았다. 막 기어 다닐 무렵부터 둥둥 떠다니는 풍선만 봐도 바들바들 떨었고(부모님 피셜), 아직도 어릴 때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울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지에 오줌을 싸버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대 중반까지는 그 기억에 집중하면 당시에 느꼈던 온몸의 긴장감과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한복판에 내쳐져 버린 듯한 탈락 감을 더듬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공포와 두려움은 내 온몸에 남아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린 나의 보호자들, 다시 말해 맞벌이를 했던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의 공동 양육자들의 대다수는 유약한 심성의 나를 안정적으로 보듬어 주기보단 발발거리는 어린애를 놀려 먹으며 재미를 찾는 부류들이었다. 엄마는 오줌 젖은 바지를 입고 엉엉 우는 어린 딸에게 "이게 뭐 가 무섭다고 질질 짜! 뚝!" 하며 골리는 주변 어른들이 무지하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입장도 있고 해서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못한 채 옆에서 못마땅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적이 많았다.


아무튼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무섭거나 두려워도 안 그런 척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무작정 억압만 해 버릇한 나머지 어딘가 크게 뒤틀린 성인으로 자라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뒤지게 떨리더라도 스스로 "응~ 하나도 안 무서워~"라며 정신승리를 강하게 하는 타입인데 이게 점점 습관이 되니까 진짜로 안 무섭게 되더라. 생각이 곧 말이고, 말이 곧 생각이 된다더니 하도 안 무섭다! 나는 강하다! 했더니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한 두 달 전에 공포소설을 연달아 읽은 적이 있다. 정말 오랜만에 읽었던 공포소설은 꽤나 무서운 분위기가 볼만하다 해서 골라본 것인데 별로 안 무섭고 시시해서 실망했었다. 그러고 나서 재미반 오기반으로 도서관에서 공포소설만 줄차게 빌려 읽었다. 그런데 분명히 아무리 읽어도 무섭지가 않다고 생각되던 것이, 한 순간 책을 덮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책에서 묘사되었던 귀신이 내 방 어딘가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자마자(이건 거의 자동적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상상의 구체화 실력이 좋은 나머지 그 장면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져 정말 말 그대로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집은 나 혼자 살아도 비좁은데 누가 들어와 있다고? 그럼 너도 월세랑 전기세 내, 인마!'하고 속으로 외쳤다. 그랬더니 느껴지던 무서움이 어디론가 슥 물러갔다. 전기 효율등급이 낮아서 한 달에 일주일만 돌려도 전기세가 n만원에 달하는 에어컨을 켜는 순간이 제일 오싹하다.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고 말았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연락을 받고 싶지 않은 권위자의 문자 메시지 알림, 어쩔 수 없이 친해진 바람에 끊어내지도 못하고 최대한 발랄한 척 연기를 해야만 하는 지인의 전화, 스피커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커다란 음악 소리, 성인 남성이 내지르는 욕설 섞인 고성. 이런 것들이 두려운 이유는 나에게 문자를 한 그 어른이, 전화를 한 그 지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욕설을 하는 그자가 나에게 위협이나 부담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어른, 그 지인, 그 무언가, 그 누군가는 나를 해치지 않는다. 특히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다가오는 이들은 사실 만나보면 나를 걱정하고 애정하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신경 써 주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저것들을 맞닥뜨리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심장이 너무 죄여 오고 귀에는 이명까지 들린다.


더 이상 나를 공포로 몰아넣는 것은 없다. 다만 내 몸이 그 감각을 잊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과거에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그들의 말과 표정, 행동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저 편 어딘가에서 플래시백처럼 그 장면들을 회상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나는 두려운 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정말 무서웠다. 생긴 건 아빠라서 적응됐으니까 둘째 치고, 눈빛도 그렇고 술만 먹고 오면 무섭고 거칠게 욕을 하며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도 자던 나를 깨워 무릎 꿇리고 다그치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평상시에는 나에게 별말하지 않는데도 가끔 내가 잘못을 하면 세상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험악한 표정으로 경고를 하던 아빠는 곧 나에게 공포였다. 그런 아빠가 지금은 제일 귀여운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우리 딸 사랑한다면서 나를 꼭 끌어안아주고 마트에만 가면 꼭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만 골라 사주는 아빠가 되었다. 그토록 무섭던 아빠는 사라지고 없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두려워하는 그 모든 것들의 알파는 아빠였다. 이건 나에게 두려움을 남긴 아빠에 대한 회한을 풀어낸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이 두려움의 오메가를 향해 달려가려고 한다. 알파는 사라졌다. 나에게 남은 건 나 스스로 나의 보호자가 되어 이끌어 가야 할 나의 인생뿐이다.


아직도 알파를 원망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두려움을 잊혀진 그 끝, 오메가를 향한 여정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알파는 사라졌다! 다시 말하지만 알파는 죽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알파가 살아서 두려움 그 자체로 형형히 눈을 밝히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뭐, 괜찮다! 겁이 나서 어쩔 줄 몰라도,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굳어버려도 괜찮다. 두려움을 참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거나 맞서 싸우는 것만이 어른의 방식이 아니다. 너무 무서우면 도망가도 되고, 피해버려도 좋다. 그 때문에 괴로워서 미치겠다면 그냥 울어버려라. 틀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잊지 마라. 당신도 언젠가는 오메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혹시 나처럼 아프게 팔딱대는 심장의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고 의연한 자세로 세상을 버티어 나가는 누군가 있는가? 다 큰 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체가 뚜렷한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의젓하게 보이려고 애쓰며 살고 있는가? 나는 듣지 못한 말이지만 그런 당신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진짜 많이 무서웠겠다. 마음 고생 많았구나.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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