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보름 정도 되었다. 할머니의 유골도 다 뿌린 뒤라,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할머니를 볼 수 있는 방법은 꿈 말고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 사촌언니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친동생이 같이 놀러 가자고 연락을 한 뒤, 어디선가 어린아이들 여러 명이 몰려왔는데 정작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웬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서 정신없이 노는데 같이 놀자고 한 동생은 연락도 없고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너무나 화가 나서 욕이 나왔다고 한다. 몇 시간 뒤, 뒤늦게 나타난 동생을 보고 짜증을 마구 내는데, 동생이 무어라무어라 변명을 했다. 분명 엄청나게 짜증 난 상태였는데 동생의 변명을 들으니 이내 마음이 풀려 즐겁게 놀다 잠에서 깼다 한다.
언니는 이 꿈이 필시 할머니가 자신에게 전하는 어떤 메시지일 것이라 확신했다. 사촌언니는 할머니의 큰 딸의 큰 딸로, 할머니에겐 첫 손주다. 할머니가 가장 의지하던 큰 딸, 그리고 가장 힘이 되어주던 큰 손주. 어딜 가든 큰 딸과 큰 손주만 와있으면 ‘이제 됐다’고 생각하시던 할머니. 언니에겐, 할머니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셨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 날 입관식에서 언니는 꿈의 의미를 깨달았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던 가족들의 모습. 언니 꿈속에서 난데없이 몰려왔던 그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아무도 지키지 못한 할머니의 임종. 모두 멀리 살고 있어, 몇 시간이 지나서야 모일 수 있었던 가족들의 상황. 언니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주며 할머니의 뜻을 이렇게 풀이했다. “내가 떠나면서 너희를 기다렸는데, 몇 시간이고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너무 화가 났다. 그런데 얼굴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완전히 풀렸다. 이제는 마음이 아주 편하다”라고.
그리고 나는 오늘 할머니 꿈을 꾸었다.
할머니의 장례식 직후 일주일 간은 상실감과 우울감을 겪었다. 엄마 아빠 아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할머니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면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와 현실을 마주하니, 평소와 비슷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의 빈자리를 느낄 틈 없이 내 앞에 산적한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코로나19에 확진되고 며칠을 앓아눕다 쾌차한 오늘. 쾌차는 했지만 후유증 때문인지 온종일 잠이 왔다. 아기 낮잠 핑계로 아이 옆에 누워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백화점 1층에서 빙글빙글, 찾던 것이 나오지 않아 허무하고 힘이 들었다. 그러다 로비 가운데, 가마 같은 것을 타려고 서있는 어떤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화려한 상하의에, 검은 조끼. 할머니가 살아생전 자주 입던 그 옷이었다. 옷차림새며 뒷모습이 분명 우리 할머니 같은데, 우리 할머니는 이제 안 계시니까 저건 우리 할머니가 아닐 거야. 그런데 우리 할머니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찰나 뒤돌아보는 할머니의 얼굴은 우리 할머니였다. 그 순간 잠에서 깼다.
너무 보고 싶었던 할머니 얼굴. 입관식에서 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인데 이렇게 바로 깨버리다니. 어떻게든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눈을 감아 마지막 장면을 이어가 보려 했지만, 어디 꿈이란 게 그렇게 쉽게 다시 꾸어지는 것이던가. 몇 차례 꿈 이어 보기를 시도하다 포기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할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할머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체감했고 다시 마음이 한없이 침전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나는 사춘기 아이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덧없음을 생각하곤 했다. 삶의 유한함을 한껏 느끼며, 내가 굳이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굳이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고 느껴졌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 우리 언니는 말했다. 그럼에도 때로는 희생하고 때로는 힘겨워하며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할머니가 우리에게 준 숙제라고. 분명 우리의 삶은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 지치고 힘겨운 일이 많을 테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낸 것이 할머니의 삶이었고, 우리 또한 할머니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내가 힘들 때 신기루처럼 나타났던 오늘 꿈처럼, 내가 힘겨울 때마다 곁에서 나를 지켜주겠다는 의미였을까? 오늘 꿈에서 스쳐 지나간 할머니의 얼굴은 필시 그것만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내게 그런 존재인 것처럼, 내 존재도 남은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언니에게, 딸에게, 남편에게. 꿈속에서 할머니는 가마를 타기 위해 서있었고, 내가 이어 보지 못한 꿈의 뒷부분에선 분명 그 가마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셨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세상에 남아, 남은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길을 잃어 지쳐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나 힘이 되어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할머니가 내게 준 과제이고, 내가 끝없이 물었던 ‘내 삶의 이유’에 대한 할머니의 답인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가 보고 싶어질 땐 어떻게 해야 돼? 가마 타고 떠났지만 내가 할머니 보고 싶어 할 땐 가끔씩 오늘처럼 꿈에 나와주면 안 될까? 꿈에 나와서 로또 번호를 점지해주지 않아도 되고, 웃어주지 않아도 되고, 안아주지 않아도 되니까. 오늘처럼 뒷모습이라도 그렇게 보여주면 안 될까? 나에겐 아직 할머니가 필요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