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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Dec 11. 2022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예비워킹맘의 복직 준비 과정

복직 전 마지막 일주일. 밀어두었던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바쁘게 보내는 중이다. 이번 주에는 육아를 시작하며 가장 의존하고 있는 친구와, 앞으로 가장 의존하게 될 친구를 만났다.




늘 그렇듯 내 브런치 글을 챙겨 읽고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위로는 건네는 친구. 지난주 내가 올린 글을 보고 같이 회사 욕을 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이 아니면 복직 전 이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급만남을 제안했다. 친구는 나보다 먼저 복직해서 잘 적응 중인 복직 선배다.


퇴근 직후 아이를 데리고 약속 장소에 나왔다. 각자 하원 후 아이를 데리고 약속 장소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기에, 한껏 초췌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그럼에도 내 눈에 친구는 오랜 휴직 후에도 멋지게 빠른 적응을 마친, 누가 봐도 능숙해 보이는 워킹맘이다. 끊임없는 아이의 요구에도 가방에서 척척 무엇이든 꺼내어 미션을 해결하고, 온종일 일하고 온 지친 몸인데도 두 아이를 태운 웨건을 요리조리 휙휙 운전했다. 친구에게도 숱한 피땀눈물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견디고 버텨서 지금의 능숙한 워킹맘이 된 것이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친구는 말했다. 온몸으로 복직 전 우울증을 나타내고 있다고. 항상 신던 노란 신발 대신 까무잡잡한 운동화, 무채색의 상하의, 어딘가 힘없는 걸음과 얼빠진 얼굴. 그러더니 내 머릿속에 있던 걱정거리들을 읊었다. 그리고 그 걱정거리들은 사실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도.


대체 맞벌이는 어떻게 하는 거야?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 어쩌지.

죄책감을 버리면 돼. 세 아이 키우는 엄마가 있는데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도, 아침 일찍 등원해도 죄책감을 갖지 않아. 밥을 안 먹으면 본인이 안 먹겠다는데 어쩌겠냐며 엄마는 먹이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겠지만 아이가 안 먹을 때마다 울적할 필요 없다고. 등원 시간은 세 아이 키우려면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되는데 별 수 있냐고, 이것이 네가 앞으로 살아야 할 너의 인생임을 아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회사에서 무능한 애엄마로 낙인찍히면 어쩌지?

무능한 사람 아니잖아? 우린 휴직 전에도 이미 100% 이상을 해내던 사람들인데. '저 사람은 매일 정시 퇴근하는 사람이네, 무책임해'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돼. 퇴근 전에 내 할 일 충분히 다하고, 업무시간에는 온전히 집중하고. 정시 퇴근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도록. 그런데 그건 애쓸 필요 없어. 우린 이미 그런 사람들이니까.


아이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긴급하원하게 되면 어쩌지?

나한테 연락해. 내가 안 되면 우리 엄마라도 보내면 되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생기겠어. 그럼에도 정말 어디에도 부탁할 곳이 없으면 얘기해줘.


친구도 복직 전 나와 똑같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이 끝나는 것이 무서웠고, 잠든 아이 얼굴을 보고 몇 번이나 울고, 언제나 아이 곁에 있어주고 싶지만 회사로 돌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미웠다. 그럼에도 친구는 현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원하는 삶이 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고, 버티고, 적응해냈다. 끝끝내 이겨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에게 빙의해 천국에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지만, 사실 그곳은 도살장도 지옥도 아니라고. 출산 전 우리가 몇 년 간 살았던 일상이었고, 앞으로 몇 년 간 살아야 할 현실이라고. 내가 걱정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며, 생각보다 멋지게 우리는 적응해낸다고. 그저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해 걱정했던 일들을 말끔히 정리해주었다. 언제나,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는 든든한 위로까지. 역시나 멋진 복직 선배다.




나는 복직 후 아이 돌봄을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임산부였다. 배가 불러오고 아이를 낳고 지금껏 기르기까지 가장 자주 만난 친구다. 딩크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놀아주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와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나보다 체력도, 센스도 좋아서 친구가 놀러 오면 아이의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항상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놀이법을 만들어내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을 발견해낸다.


내가 복직 후 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하자, 자신은 프리랜서라 평일에 시간이 되니, 하원을 돕겠다고 나서 주었다. 처음엔 농담처럼 "정말 그럼 좋겠다!"라고 말했지만, 친구를 만나면 만날수록 친구만큼이나 우리 아이와 잘 놀아줄 사람, 내가 진정으로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친구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돈거래인데, 우리는 이제 금전 기반의 계약관계를 맺어야 한다. 아기 돌봄에 공백이 생기는 것도 너무나 두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도 두려웠다.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니까. 친구가 '하원 업무'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해서, 힘들 땐 유튜브만 틀어줘도 괜찮다고, 만약에 아이가 대변을 보면 물티슈로 대충 닦아내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과 있을 때는 tv보다 재밌는 걸 하게 만들 것이라고, 아이의 대변을 직접 치우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엄마가 엄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주었던 것을 자신은 호락호락하게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미안한 마음에 자신에게 매번 밥을 사지 말라고, 밥을 같이 사 먹게 되면 정확하게 더치페이를 하자고 덧붙였다.

나는 어떻게든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미안한 마음을 덜 방법만 생각했는데, 친구는 누구보다 돌봄 업무에 진심이었다. 그냥 시간이 남아서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자신의 프리랜서 업무 중 한 가지이며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집약하여 잘 해내고 싶은 업무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받기만 한다면 언젠가 사이가 틀어질 수 있음을 예상했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름의 방편을 고민했다.


복직을 받아들이면서 나의 시야는 좁아지고 마음은 한없이 말랑해져 있었다.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죄책감, 회사에서 부족한 직원이라 질책받는 두려움만 생각하느라 다른 것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야근을 하느라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하는 악몽, 육아에 정신이 팔려 실수를 연거푸하는 악몽, 갑자기 발가벗겨져서 길 한가운데 버려지는 악몽만 연거푸 꾸었다. 언제든 관둘 이유가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곧장 퇴사를 고려했다.


현실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지만 그만큼 살 궁리도 곳곳에 있다. 내가 안 되면 남편이 하면 되고, 둘 다 안 되면 친구에게, 친구도 안 되면 조금 멀리 살지만 지하철로 올 수 있는 이모나 시어머니에게, 모든 가족이 안 되면 생면부지 만난 적도 없지만 서로 '육아 연대'로 이어져있는 친구의 가족에게 부탁하면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까지 안 되는 상황이라면 어린이집에서도 이해해주고 조금 늦는 나를 기다려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나를 무리한 상황에 몰아넣을 정도로 배려심 없는 상사를 만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양가 도움 없이 단둘이 맞벌이하는 '육아 독립군'이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은 곳곳에 있다.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우리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기도 했고, 우리와 같은 딱한 사정의 부모가 많기에 나라에서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도 많다. 내가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은 대체로 오지 않으며, '혹시나'의 경우를 위해 우리는 준비하고 또 준비해왔다.


그저, 내 죄책감만 덜면 된다. 나는 아마 누군가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열심히, 제 몫을 하기 위해 일할 것이고 또 전처럼 성과를 낼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들지만, 어떻게 해서든 아이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려고 애를 쓸 것이고. 또 집에 와서는 한순간도 아이와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고 놀아줄 것이다. 그렇게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내 마음이 다시 말랑흐물해질 때면 내가 믿고 의지하는 가족들,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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