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Dec 16. 2022

복직, 그날이 왔다

예비워킹맘의 복직 준비 과정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왔다. 드디어 복직이다.

나는 2년 간 이 날을 생각하면서 늘 악몽을 꾸었다. 휴직 후 만족스럽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질 때마다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미래의 내가 안쓰러웠다. 집은 편한 곳, 회사는 불편하고 힘든 곳이라는 명백한 구분이 생겼다. 휴직은 행복, 복직은 불행.


복직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불안하고 힘겨웠다. 인사담당자는 연락이 닿지 않고 내 거취는 복직 직전까지 정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 회사에서는 다 정해져 있고 최종 승인만 남은 단계였으나 당사자인 내게 어떤 안내도 없었다. 나의 선호부서라든지, 원하는 근무지, 개발하고 싶은 업무역량 등 그 무엇도 묻는 이가 없었다. 괜히 먼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가 '찍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해서 잠자코 회사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결국 복직 전날이 되어서야 담당자와 연락이 되었다. 아침 9시가 되길 기다렸다가, 그가 숨 돌릴 틈 7분 정도 주고 9시 7분에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담당자는 사죄를 거듭하다가 상황 설명을 이어갔다. "계속 같은 업무만 해오셔서 복직 후에는 경력을 좀 확장하실 수 있는 부서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A팀으로 가시게 됐습니다." A팀은 휴직 전에 협업을 많이 했던 부서인데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있던 곳이었다. 불안 끝에 겨우 전화를 걸었는데, 안도하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내 소식을 전해 들은 선배들은 그 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팀장님이 보건복지여가부장관급이라, 육아맘 케어를 잘해주신다고. 오후가 되니 장관님의 문자가 당도했다. 나와 일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복무는 육아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쓰시면 된다고. 갑자기 애사심이 솟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소식을 전했다. 당사자인 나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하던 아빠는 활짝 웃으며 안도했다. 본래 걱정하던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잘될 일만 떠올리면 그대로 현실이 된다고. 내년은 나의 해가 되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덕담도 잊지않았다.


아빠와 통화를 마치니 장관님의 문자가 또 왔다. 동료들에게 들은 나의 평판이 좋아서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이야기였다. 나의 과거 회사생활은 분명 쉽지 않았고 나 자신을 잃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사이에서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지난 8년의 고통들은 나름대로 견고한 '커리어'로 남았고, 모래알처럼 흩어져있지만 조금씩 빈틈 채우듯 나의 앞길을 다져주는 '사람'이 남았다. 역시 삶에는 마냥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한 일은 없는 법인가 보다. 어떤 시간들, 어떤 사건, 어떤 힘듦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는가 보다.



복직을 앞두고 나는 매일 인터넷 쇼핑을 했다. 아이의 등하원길 찬바람이 거세지자 방풍커버가 달린 웨건을 구입했고, 기모 상하의, 귀도리, 털장갑, 도톰한 양말을 주문했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이 빠듯할까 싶어 아이반찬을 주문했고, 간식이며 음료까지 종류별로 주문해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놀아 달라는 아이를 옆에 세워두고 나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마치 몇 달은 족히 못 돌어오는 기러기 엄마가 된 것 마냥. 전쟁터 나가는 군인이 된 것 마냥.

매일같이 하던 영상 편집과 블로그 글 작성도 평소보다 부지런히 해두었다. 복직 후에는 영상 편집도, 글쓰기도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올해 말까지 올릴 콘텐츠를 모두 만들어두고 예약 발행까지 걸어두었다. 읽고 싶었던 책도 무리해서 모두 읽었고, 사고 싶었던 인형도 평소보다 많이 구매했다. 분명 복직 후의 삶에도 취미 생활을 즐길 여유는 있을 텐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이라도 건너는 듯이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댔다.


복직을 그토록 두려워한 것은 결국 내가 내 인생을 컨트롤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상들이 많지만, 내 인생의 큰 흐름은 대체로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 흐름에 맞춰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면 그만이다. 내가 어떤 역경에 빠졌다면 분명 내게 모래알만큼이라도 남는 것이 생길 테다. 나의 일상이 깨지고 새로운 환경에 직면한다면 나는 또 다른 행복의 일상을 찾아가면 된다. 내게 몰려온 큰 파도를 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파도가 휩쓸고 난 뒤 어느 평화로운 지평선에 서서, 내 손에 남은 모래알들을 바라보며 꽤 재밌었다고 회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휴직을 하면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매일 가야만 했던 회사, 매일 만나던 사람들, 매일 하던 어떤 일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집에만 붙어있어야 하는 사람이 됐다.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내 하루가 막막하고 갑갑했지만, 그 사이에서 나만의 시간이 갖는 의미를 찾았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찾아 나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확실한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어렵사리 얻은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매일 쉴 틈 없이 무언가 할 일을 찾아 나섰다. 그 모든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휴직 후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활 전반이 '해야만 하는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내 생활이 채워질 예정이다. 다시 한번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타이밍이다.


나는 막연히 숨 쉴 틈 없이 바쁘고 매일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의 삶을 상상했다. 많은 이들이 너의 복직 후는 이럴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스스로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출산육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낳은 뒤엔 내 시간을 잃고 내 자유를 잃고 그렇게 나 자신을 잃어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했다. 너처럼 사회생활 열심히 하던 애들은 '엄마'가 되면 많이 힘들 거라고. 하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찾아냈다. 남들의 우려는, 내 걱정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항상 그래 왔듯 힘겨운 근심 걱정의 시간이 지나고 시나브로 현실이 내 앞에 왔다. 생각보다 현실은 각박하지 않다. 잔잔한 호수와 같은 일상이 이어진다. 휴직 마지막 날이지만 아이에겐 특별한 날이 아니다. 평소처럼 아이는 칭얼대다가, 귀엽게 까르르 웃다가, 돌연 간식 접시를 던지다가, 내가 까준 귤을 맛나게 먹었다. 우리 언니가 복직 선물로 보내준 새 장난감을 신나게 두드리다가, 엄마도 와서 같이 놀자고 승질을 부리다가, 갑자기 엄마 사랑한다고 웃어 보였다. "엄마 내일 회사 가야 돼. 힘내라고 해줘"라고 하니 "엄마 힘내!"라고 곧장 따라 말한다.



아이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지도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 가지도 않았다. 그냥 언제나 그렇듯 내 옆에 붙어있다. 내가 떠나보낼까 전전긍긍했던 평화도, 행복도 내 옆에 있다. 어느 누가 나의 힘듦을 예고해도, 나는 내 곁의 행복을 찾아내면 된다. 내 일상이, 내 인생의 형상이 바뀌는 것이지, 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복직 날. 내 인생이 다시 한번 크게 바뀌는 타이밍.

내 겨드랑이에 작고 말랑한 손을 끼우고 자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내 인생을 여러 번 뒤엎어놓고도 평화롭게 잠든 저 아이의 얼굴을. 그리고 내 평화를, 행복을, 일상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저 얼굴을.



매거진의 이전글 한 번 울고 이겨내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