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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an 20. 2024

내가 정답이 아님을 알았을 때

워킹맘의 뒤늦은 사춘기

마음이 복잡하다.

내가 그동안 그럴 것이라 믿고 행동한 것이 사실은 그다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믿음이 있었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어떤 일이든 내게 주어진 일을 그때그때 성실히 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일을 할 때는 집중해서 열심을 다 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꾸밈없이 진심을 다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회사일이든, 육아든, 인간관계든 열심과 진심만으로 잘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복직 후 1년, 나는 최선을 다 해 열심히 회사일을 했다. 내가 하기에 무리인 업무가 주어졌을 때는 잠시 머뭇대다가도 결국은 받아서 꾸역꾸역 해냈고, 어찌 되었든 마무리를 했다. 모두가 반대하고 하기 싫어했던 업무가 내게 주어졌을 때도 결국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어쩌겠나, 내가 해야지, 하고 해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마찰도 빚었지만 결국 나는 내가 잘 해냈다고 생각했다. 내게 업무를 지시한 사람이 보기에도 제법 나쁘지 않게 잘 해냈다고 착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드디어 승진을 했고 프로젝트는 조용히 마무리되었지만, 회사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나는 불합리한 일을 겪었고, 눈물바람과 호소 뒤에 결국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피해자일 뿐이었고 최선을 다해 불합리한 일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되바라진 직원이 되어있었다. 작은 소동, 작은 에피소드로 지나갈 일이었으나 내 마음은 어딘가로 침전하는 것 같았다. 그저 열심히 성실히 묵묵히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이런 소동에 휘말려야 하는 것인지 억울하기만 했다.


소동이 지난 후에도 어찌 되었든 나는 성실히 살았다. 내게 주어진 업무를 적시에 해냈고, 누가 하기에 애매하거나 꺼리는 일은 내가 처리했다. 선배들에게 요청하며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빨리 처리하는 게 수월했고 편했다. 누군가에게 빨리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번거롭고 불편하니, 누가 해도 상관없고 애매한 업무라면 내가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일을 문제없이 넘기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열심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나의 업무 스타일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해진 R&R을 흩트리는 행동이었고,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일 잘하는 나'라고 생각했던 습관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아도 요즈음 쉽지가 않다. 아이는 그 유명한 '미운 네 살'이 되었다.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았고, 한 번 화가 나면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가 금쪽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그 순간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대했다.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훈육을 했고, 훈육 후에는 사랑을 주었다. 아이와 있는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정성과 사랑을 건넸다.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또박또박 하나씩 가르쳐주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떼를 심하게 썼고, 문제행동이 나아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훈육법, 대처법을 찾아보며 이리저리 시도를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우리 아이의 시터를 하고 있는 친구도 같이 고민하며 해결방법을 찾았다. 친구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친구가 나보다 더 진중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정답을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과 별개로,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생각한 최선이, 최선이 아니라서.


회사 업무와 육아에서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 최선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 매 순간 열심히 살았지만 내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그저 눈앞의 작은 일만 그 순간에 해소하고 넘어갔을 뿐, 사실 제대로 해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배려랍시고 한 행동은, 상대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때로는 불편함을 야기했다는 것. 잘 해냈다고 생각한 것이 그저 상황을 모면하고 회피한 것뿐이었다는 사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엄마, 언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여행을 다녀와서 기분이 좋았고, 우리의 근황을 물었다. 즐거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못했고, 불편함 중 하나였던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엄마와 언니는 최선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계속 시원찮은 내 얼굴에 언니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너 방식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의 조언, 의견, 불편함은 모두 옳다. 그와 동시에 모든 일에 정답은 없고 때로는 모순적이다. 반드시 모든 의견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나는 바뀌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바뀌어야 할 대상은 없다.


진짜 부끄러운 일은 내가 부끄러운 행동을 한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나만 부끄러운 줄 몰랐을 때다. 그 부끄러운 일을 내가 '고쳐야겠다'라고 생각하면 내게 무거운 짐이 되고,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나는 그저, 인지하고 인정하면 된다. 내가 정답이었는지 오답이었는지 판단하지 말고 그저 있었던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사람이 왜 내게 그랬는지,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겨났는지, 왜 나의 열심과 진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건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난 일에 대해 구태여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려 할 필요가 없다. 부끄러움을 인지하면 된다. 부끄럽게 살기는 죽어도 싫은 나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새로운 잣대, 새로운 삶의 태도를 견지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문제'라 생각한 시간들은 저절로, 흘러간다. 문제가 해결될 필요는 없다. 그냥 흘러가면 된다. 우리네 인생은 멈출 줄을 몰라서 내 생각과 마음이 멈추지 않는다면 모든 것들은 흘러간다.


여전히 나는 어리숙하다. 내 무거운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 채로 있지만, 그냥 그렇게 두기로 했다. 왜 무거운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멈추지 않는 시간을 그저 그렇게 두기로 했다. 정답이 무엇인지, 애써 찾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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