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일본 아르바이트 생존기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편안한 집을 구했으니 다음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차례다.
한국에서 가져왔던 전재산 절반으로 집세를 내고 나니 수중에 15만엔정도 남았다.
아르바이트 자리는 호텔 생활을 하면서도 간간히 봤었다.
대부분 음식점 위주로 많이 봤다.
모집공고가 제일 많았고 처음 시작하기에 무난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해보지 않았으니 음식점 아르바이트가 쉽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실전 경험을 하기 전까지 내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눈물의 아르바이트 에피소드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주일간 내가 원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계속 지원했다.
일본 최대 아르바이트 사이트인 바이토루, 타운 워크, 마이나비 바이토에서 내가 할만한 아르바이트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계속 찾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큰 진전이 없었다.
경험이 없으니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4일 후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 곳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지역:도쿄도 (東京都)
-시급:1,000엔 이상
-교통비 지급:15,000엔 이상 (한 달 전철 정기권 기준)
-역에서의 거리:10분 이내
-마카나이 제공
(마카나이(まかない): 일본에서는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식대비를 따로 지불해서 먹어야 한다.
그래서 식당 알바를 하면서 무료로 밥을 먹으려면 마카나이가 제공되는 가게를 찾아야 한다.)
-외국인 활약 중
-집에서 40분 거리
시급 1000엔 이상, 집에서 거리는 30분, 정기권 지원
이케부쿠로 T백화점 소롱포 식당
면접 갈 곳이 정해졌다.
며칠간 뭘 써야 할지 새벽까지 고민하며 쓴 일본어 이력서도 준비됐다.
편안한 마음으로 누워봤지만 첫 면접이라 그런지 잡생각에 잠이 안 왔다.
면접장까지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과연 일본어로 면접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꼬리를 물고 다녔다.
다음날 아침이 됐다.
면접을 가기 위해 서둘러 전날 챙겨두었던 것들을 챙겨서 전철을 타러 나갔다.
"나도 이제 정기권이 생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30분 전철을 타면 도쿄 시내가 나온다.
전철비는 왕복 1,300엔이다.
한화로 14,000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일 큰 메리트중 하나는 정기권도 포함되어있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정해진 구간 외의 곳은 내가 부담해야 하지만 정기권이 없다면 100프로 자비로 나가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일자리를 구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왕 1년 사는 거 소위 도쿄 물 좀 먹어보자는 생각이었고 자주 왔다 갔다 하려면 정기권이 절실했다.
9시 45분 면접장소에 도착했다.
T백화점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즐비한 식당가였다.
"本日、10時からの面接に参りました。"
(오늘 10시부터 면접 보러 왔습니다.)
시간에 맞춰 바로 아르바이트 담당자와 면접을 봤다.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압도당해 더욱 긴장됐다.
본사가 대만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일본에도 점포를 냈다고 했다는 내용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왜 이 가게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일본어는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지.
성실히 잘 나올 수 있는지.
근무 스케줄(시프트)은 어떻게 할 건지.
교통비 지원 및 근무내용에 대한 설명.
일본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40분가량 면접을 이어나갔다.
겉으로는 필사적으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야기 맥락이 잘못 엇나갈까 봐 끙끙 앓고 있었다.
시간이 반쯤 지나면서부터는 망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험했다는 셈 치자며 나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나름 도쿄의 유명 백화점이었고 이런 일본어 실력으로 붙을 리가 없었다.
듣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접객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할 때쯤 전화 한 통이 왔다.
아침에 면접 간 곳이 붙어버렸다.
이틀 후에 매장에서 함께 일하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분명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첫 면접 자리에서 합격을 했다니..
앞으로 남은 워킹홀리데이 생활에 월세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푹 놓였다.
너무나도 설레고 들뜬마음으로 첫 알바를 갔다.
일본은 비교적 짧은 시간으로 나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내 근무시간은 평일 9시부터 15시까지 총 6시간 근무로 정해졌다.
아침 조회시간에 오늘 주의할 점, 손님이 어느 정도 올지에 대한 내용들로 짧게 회의를 했다.
그리고 오늘 처음 일하게 된 나는 내 소개를 간단히 했다.
일본어 교재에서 공부했던 인사를 드디어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었던 날이었다.
"ホント申します。韓国から来ました。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홍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일을 가르쳐줬다.
처음에는 그릇 정리하는 법부터 알려줬다.
알려주신 분은 일본 사람이었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 같이 얘기해보니 처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한자의 난관에 봉착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판매하고 있는 음식을 외워야 하기에 메뉴판을 열었다.
세상에.. 메뉴가 전부 한자였다.
그것도 일본식 식당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중국 한자였다.
일단 붙고 보자는 생각에 사전조사 없이 이곳저곳 되는대로 응모한 것이 실수였다.
히라가나는 하나도 없는 오로지 한자만으로 쓰인 메뉴판을 보고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계속 넘겨봐도 읽을 수 있는 한자가 하나도 없. 었. 다.
나의 심각함을 감지한 중국인 매니저와 1:1 한자 읽기 레슨이 시작되었다.
매니저가 메뉴를 읽으면 옆에서 그대로 따라 읽었다.
따라 읽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방금 읽은 한자들을 하루 만에 전부 마스터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또 먹는 방법도 설명해줘야 하니 외워야 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매니저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급기야 바보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あの子、漢字が読めないみたいよ。"
(쟤, 한자를 못 읽는다나 봐.)
순간 모든 직원들의 시선은 나로 향했다.
26살에 글 모르는 외국인 까막눈.
모두의 앞에서 한밍아웃을 해버린 나는 수치심에 견딜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멘탈은 이미 깨져 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매우 바쁜 가게였고, 홀에 나가 주문은커녕 한자로 써진 메뉴판도 못 읽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주문은 물밀듯이 들어오고 홀 아르바이트라고 뽑아놨는데 일도 못하고 주방에만 박혀있으니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가게의 공기는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한계를 겪고 삼일 후 이 가게는 그만두었다.
하지만, 여기서 일본 생활을 끝낼 순 없었다.
이 경험을 살려 다음 아르바이트 자리는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곳 그리고 메뉴판은 가급적 한자가 적고 가타카나 표기로 된 가게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