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루 Jun 23. 2021

EP.2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주소 등록, 통장 개설, 휴대폰 개통은 일본 워킹홀리데이 3종 세트이다.

시작부터 삐그덕, 2주간의 호텔 생활


신주쿠, 시부야, 하라주쿠, 긴자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보낼 지역은 일본의 수도 도쿄로 정했다.



 “내 친구 집에서 잠깐 머물면서 집을 찾아보면 어때?”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일본인 친구는 내가 일본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일본에 가기 전부터 소식통을 자처해주었다. 

본인의 친구 집에서 머물 수 있으니 친구의 연락처를 주겠다고 했다.

일사천리로 연락처를 받아서 인사도 하고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을 잠시 동안 머물 수 있게 해 주다니 정말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간단히 집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다. 


잠시 머물면서 직접 현지 부동산에서 집을 구하면 되는 것이기에 그날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2주 동안 신세 지는 친구 집에 가져갈 선물도 준비했다. 

 그런데 하루 전날, 불발되었다.


“오.. 신이시여.. 

어쩐지 일이 쉽게 진행된다 싶었다.”


이걸 핑계로 비행기 탑승 날짜를 뒤로 미루고 한국에서 천천히 준비를 하고 출발해도 되지만 더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첫 스타트를 멋있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는 잘 타지 않는 비싼 일본항공으로 예약도 했고 약속이 무산되었다고 좌절할 수 없었다.

급한 대로 출국 하루 전날 부랴부랴 2주 동안 머물 호텔을 예약했다. 

2주간 호텔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예상치 못한 호텔비가 지출되지만 주저 없이 바로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출국 당일.

살림살이를 넣은 이민가방에 봄여름용 옷가지를 넣은 캐리어 20kg와 노트북을 넣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설렘 반 긴장 반

춘천에서 출발한 공항버스가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가져온 짐을 위탁 수화물로 보냈고 무사히 탑승수속을 마쳤다.

수속을 끝내고 자리에 앉아서 탑승시간을 기다렸다.

앉아서 여권을 펼쳐보니 1년간 거주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붙은 페이지가 보였다.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일본어도 많이 배워오고 후회 없는 일 년을 보내고 오자."




2시간 30분간의 비행이 끝나고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여권에 붙여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공항 담당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담당 직원은 나를 따로 창구로 불러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확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 5분이 지났다. 

담당 직원이 일본에서 쓸 수 있는 신분증을 가지고 나타났다.

재류카드(在留カード)였다.


'과연 1년간 일본 생활을 잘하고 올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몇 번씩 잘하고 올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지만 겁이 나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었다.

불안감에 계속 되뇌며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나왔다.

하네다 공항에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아직도 여행 온 기분이 드는 건 뭘까? 





공항에서 받은 재류카드 보다 더 중요한 것.


일본은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증, 재류카드 이외 본인인증을 위해 마이넘버 카드라고 하는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제도를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보급률이 낮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날로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개인의 정보가 시스템화 되어있지 않다.



집 주소로 우편을 보내 실제로 거주하는 곳이 맞는지 여부로 본인 확인을 한다. 

문제는 우편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아무리 빨라도 3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받은 서류를 다시 우편으로 답장해야 한다면 답장을 주고 우편을 보내기까지 시간이 소요되고 적어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시스템이 갖추어 있지 않으니 주소로 본인 확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에서는 주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도장이 있어도 통장을 못 만들고, 통신비를 낼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휴대폰을 만들 수가 없다.

이점을 간과한 나머지.. 초반에 고생했다.



우물 밖을 나온 26살 토종개구리




2주간 호텔에 머무르면서 1년간 살 집을 찾기 시작했다.

라인 메신저를 통해 일본의 유명 부동산 에이브루(エイブル)에서 집을 소개받았다. 

편리했던 점은 미리 라인 메신저로 매물이 나왔는지 묻고 집을 볼 시간을 메일로 약속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마음에 드는 집 정보들을 받아봤다.

괜찮은 집들을 몇 군데 골라두었다가 직접 부동산 담당자와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최대한 입실이 빠르게 가능한 곳들을 위주로 많이 봤다.



그런데 외국인을 입주자로 받아주는 집은 적었고 심지어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보증인까지 필요했다.

어떤 집주인은 실제로 집세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증명이 필요했는지 통장 잔액까지 요구했다.

당시 갖고 있던 현금을 모두 엔화로 바꾸어 갖고 있었던지라 통장에 잔고가 없었다.



다른 부동산에 문의를 해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만 26년간 살았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삶은 이런 거였구나.



그 당시 내 소식을 잘 알고 있는 친한 친구가 일본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를 소개했다.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하고 일본으로 와서 법학과에 진학하여 6년 정도 일본에 있던 친구였다.


"일본인들은 매뉴얼밖에 몰라요. 그놈이 매뉴얼 문화."


6년간 직접 겪은 일본 생활에 대한 팁들이 봇물 터져 나오듯 쏟아져 나왔다.

어딜 가나 매뉴얼대로 대응을 해주지만 얘기하다 보면 알려주는 내용에는 헛점이 있으니 안된다고 무조건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추가로 도장을 찍을 때는 귀찮다고 넘기지 말고 항상 규약을 잘 보고 서명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해줬다.

다음날 부동산에 가서 써먹을 만한 내용이었다.


'안된다고 무조건 체념하지 말고 계속 물어봐서 방법을 찾아보자.'


다음날 친구 소개로 받은 지인과 이케부쿠로역에서 5분 정도에 위치한 부동산 회사를 갔다.

들어가서 보니 나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상담받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살고 싶은 집 구조와 조건을 말했다.


1) 1K (방 1개에 키친이 있는 집 구조)

2) 로프트

3) 도쿄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 노선

4) 욕실과 화장실이 따로 분리되어있는 구조

5) 만들어진지 30년 미만의 맨션



말해놓고 보니 가격대가 높은 집들이 검색되어 나왔다.

도쿄 도심 부근은 평균 8만 엔이었고 도심에서 30분 이상 거리가 되는 집으로 찾으니 평균 6만 엔대의 집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계속 도심에 있는 누가 봐도 살고 싶은 깔끔하고 좋은 집들을 보여줬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지인이 더 저렴한 집이 있지 않냐며 좀 더 낮은 가격대의 집으로 보여 달라고 했고 그때부터 내가 예상한 가격대와 얼추 비슷한 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알바를 해서 벌 월급과 집세를 한 달 기준으로 생각해보니 5만 엔대 정도라면 부담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계약하러 갔던 부동산의 큰 메리트는 가전제품을 내가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준비가 되어있는 점과 세콤과 같은 경비 시스템이 있다는 점이었다.

초기 자금을 생각하면 도쿄에서 거리상으로 멀어도 1년간 거주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아무리 치안이 좋은 일본이라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집에 경비 시스템이 붙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원룸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프트가 있는 집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로프트는 한국의 복층구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다락방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원룸임에도 불구하고 로프트가 있는 집은 천장이 높다.

덕분에 개방감이 있고 1층과 2층 나눠서 공간 활용을 하기에 매우 좋다. 



2시간 넘게 상담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시한 조건과 맞는 곳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보안경비 시스템 및 입주자 서포트 비용: 2만 5천엔 

화재 보험비: 8천엔 

퇴실 시 청소요금: 4만 엔 

인터넷 비용 기타 잡비 포함.

(비용목록과 금액은 현재와 조금 상이할 수 있다.)



시키킨, 레이킨이 없었으므로 2달치 월세 포함 23만엔, 대략 한국돈 240만원으로 살 집을 구하게 되었다.

(시키킨 敷金:한국의 보증금 개념과 같다.

레이킨 礼金:집을 빌려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집주인에게 주는 돈으로 한번 주고 나면 돌려받지 못한다.)





드디어 두 다리 뻗을 집을 구했다.


쾌락과 궁전 속을 거니는 것도

언제나 초라한 내 집보다 편안하지는 않다.


- J. H. 페인 집, 즐거운 집 중 -


입주 날이 되어 호텔 생활을 청산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호텔 생활이지만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더 비싸고 서비스가 훌륭한 호텔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나?

비즈니스호텔이니까 그런 거 아닌가?라고 생각해봤지만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따라올 수 없었다.



새로 계약한 집의 열쇠를 받기 위해 집 주변 전날 계약한 부동산 지점을 방문했다.

집 열쇠는 총 3개 준비되어있었다.

그중 2개를 받고 나머지 1개는 분실 시 사용할 수 있게 사무실에 보관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계약한 집의 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사이타마 토부 토죠 센 신가시 역 (埼玉県 東武東上線 新河岸駅)

부동산 회사에서는 전철로 한정거장, 역에서 걸어가면 5분 거리에 1년 동안 거주할 집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늘 생활하던 집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빨리 눈으로 보고 싶은 나머지 그대로 짐을 현관문에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화면으로 본 것보다 쾌적하고 넓어서 좋았다.





방한 가운데 멍하니 앉아있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현관문으로 가서 가져온 짐들을 얼추 정리했다.

2층 로프트에 침실을 꾸미고 싶었다.

당장 침구류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일본 생활용품계의 유니클로라고 하는 시마무라(しまむら)에서 이불, 매트리스, 베개를 사 왔다.

옷장에 옷을 넣고 짐들을 하나둘씩 풀어 정리해두니 점점 내 집다운 모습으로 변했다.



마냥 이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게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 생활 돌입이다.

집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일본의 생필품, 식료품들의 가격대가 얼마인지 대략 파악해두었다.

근처 큰 마트와 일반 슈퍼에 가서 비교도 해보았으니 이제 실전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먼저 한 후기들을 보니 가급적이면 정착하고 바로 일을 구해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경험자들의 조언이 있었다.

가져온 전재산 45만엔 중, 절반을 집 구하는 초기 자금으로 쓰였으니 슬슬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처절한 일본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 버스여행의 낭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