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왕이 될 거야!
타국 생활 중 너무나도 힘이 됐다.
그사이 한국에서 친구 2명이나 나를 보러 와줬다.
꽉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2주간은 아무 생각 없이 일본 관광객이 되어 여행을 즐겼다.
잠시 쉬면서 부서진 멘탈을 하나씩 주어서 다시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온 이유가 뭐였더라?
왜 굳이 일본 현지인과 같이 일하고 싶을까?
고생하지 않고 편한 지름길은 없을까?
내가 일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했던 때는 또 한 번의 한류 열풍이 불었던 시기였다.
주로 10대, 20대를 타깃으로 한 아이돌 굿즈샵부터 한국음식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한식당도 즐비했다.
그 당시 제일 핫했던 음식은 치즈 닭갈비.
닭갈비의 본고장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나에게는 익숙한 음식이었다.
비록 타국이었지만 모국에 온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고 유일하게 기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도쿄에서 유일하게 마음 둘 곳은 신오오쿠보라고 하는 한인타운이었다.
이쯤 되면 익숙한 것에 기대고 싶은 심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일본에 오기 전에 나 자신과 큰 결심을 했다.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내 자의식 안에 갇히지 말고 그때그때 상황을 극복해나가자고.
일본어를 못해서 거절당하더라도 맨땅에서 배워가는 하나의 과정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실패는 우리가 어떻게 실패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정의된다.
- 오프라 윈프리 -
첫 알바의 쓴 추억으로 경험치가 생겼다.
타운 워크에서 지원서를 넣고 기다렸다.
알바를 지원하면 할수록 편의점에 가는 횟수도 늘어났다.
이력서를 쓰고 지우고 버리고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글도 아닌 일본어로 실수 없이 볼펜으로 완벽하게 이력서를 써야 했다.
아르바이트 시작도 전에 진 빠지는 중노동을 계속 이어갔다.
기진맥진해있던 도중에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거다!
두 번째로 찾은 알바는 신주쿠에 위치해 있고 주로 일본 셀러리맨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오는 가게였다.
밤새 땀 나가며 적어놓은 이력서를 챙겨서 신주쿠로 향했다.
하도 거절을 당하다 보니 점점 베짱이 생겼다.
"이제 뭐 될 대로 되라지. 거절당하는 거 무섭지도 않다."
인간은 확실히 적응의 동물이다.
면접 시작 5분을 남겨놓고 가게로 들어갔다.
점장님은 필리핀 출신으로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그의 일본어에 순간 뇌가 확 트였다.
이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일본어는 무조건 발음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외국어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내 생각을 타인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의사소통능력을 키우자."
그 당시 점장님은 나의 롤모델이었다.
<면접 내용>
-왜 일본에 오게 되었는지?
-시프트(근무시간)는 오전 시간대로 배정받게 될 거고 조금씩 바뀔 수 있는데 괜찮은지.
-왜 신주쿠에서 알바를 하고 싶은지.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으며 지인의 소개였는지.
-일본어 말고 또 다른 외국어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월급 받을 통장은 갖고 있는지.
-일본 워킹홀리데이 끝까지 가게에서 일해 줄 수 있는지
-집에서 신주쿠까지의 정기권 금액이 얼마인지.
-집이 먼데 성실히 나올 수 있는지.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털레털레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아무래도 베짱이 생겼다는 건 거짓말인가 보다.
면접은 언제 봐도 힘이 쭉쭉 빠졌다.
이제는 마음 푹 놓고 아르바이트를 다녀도 되었다.
이곳은 메뉴에 어려운 한자가 없었다.
아르바이트생 대신 자동판매기가 계산을 대신해줬다.
아르바이트생들 중 절반은 외국인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챙겨줬다.
그런데 또 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바로 경어였다.
일본에도 우리나라처럼 존댓말이 있다.
그런데 어째 그 쓰임새가 더 정교했다.
JLPT N3자격증 교재 뒷부분에 다른 문법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으로 경어 표현이 나온다.
시험을 볼 때도 2문제 안팎으로 출제되었기에 중요성을 알지 못했었다.
지금 와서 깨달아도 늦었다.
이미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시작되었다.
당장 내일 일본인을 상대로 접객을 해야 했다.
무료 봉사도 아닌 돈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입장인데 참 막막했다.
존경어(尊敬語) : 상대방을 높이는 말
겸양어(謙讓語) : 자신을 낮추는 말
정중어(丁寧語) : 합니다, 습니다와 같은 기본 존댓말
미화어(美化語) : お나 ご를 붙여 부드럽게 사용하는 말
일본 현지인 중에도 경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어디까지나 나의 무지를 합리화를 하기 위함이 아닐까?
어려움을 겪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이때부터 일본어에 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는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의사, 변호사, 판사, 건축사, 세무사 등)을 갖은 사람에게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해당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선생님이라는 칭호는 붙이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경어를 사용했다.
경어를 모르면 현지인에게 반말 대우를 당하기 일쑤다.
이해하기 쉽게 외국인에게는 배려의 의미로 반말을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진짜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경어를 공부하고 나서부터 반말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일본에 처음 가면 구약소나 시약소에서 주소지 등록을 위해 관공서에 가야 한다.
통장을 만들기 위해 은행업무도 봐야 한다.
종종 외국인에게 반말로 응대해주는 장면을 목격한다.
가끔은 전혀 의사소통이 통하지 않아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생긴다.
어떡해서든 경어를 공부했다.
경어를 쓰지 못하는 외국인은 일본에서 도태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일본에서 경어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적어도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본인이 성취해야 하는 큰일이 있다면 말이다.
첫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는 한자부터 막혀 접객 경험을 쌓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본격적으로 손님 응대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일본어가 늘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첫날에는 간단히 아침 조회를 했다.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선배들이 손님 응대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쪽 손에는 볼펜을 들고 수첩에 대화 내용을 한글반 히라가나반 들리는 대로 적어내려 갔다.
역시 손보다는 입이 빠르다.
중간중간 놓친 부분은 일본인 선배에게 물어물어 가며 공부했다.
내가 쓴 메모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처음 봤어요. 이게 한글이에요? 히라가나도 쓸 줄 알아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지쳐버렸다.
뒤죽박죽 들리는 대로 적은 수첩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집에 오자마자 대자로 누웠다.
그리고 수첩을 열었다.
“하루라도 빨리 외워버리자.”
온통 이 생각밖에 없었다.
귓동냥으로 얻어온 대화 내용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누웠다.
볶음밥 가게였다.
손님이 들어온다.
“いらっしゃいませ! (어서오세요!)”
꿈에서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