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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Mar 17. 2021

간장게장, 거부할 수 없는.

삭은 맛, 묵힌 맛, 그리고 감칠 맛

COVID-19으로 집에만 갇혀 있는 것이 벌써 1년이 됐다. 이제는 집에서 일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가끔 사무실에 나가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영 불편하기까지 하다. 어찌 보면 백수 같았던 1년이 지나는 동안 남는 시간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해 준 고마운 것들이 있었다. 넷플릭스, ZOOM, 브런치, 그리고 수많은 먹방 프로들이 바로 그것들인데, 원하지 않던 집콕 생활로 여기저기 구멍 난 시간들을 훌륭히 메워 주었다.


백종원의 프로를 즐겨 보는 아내의 첫 실험대상은 언제나 나일 수밖에 없다. 엊그제는 무전(부침가루 대신 무를 갈아서 만든 빈대떡)을 부쳐 주었는데 뱃속 든든하라고 오징어를 잔뜩 넣어서 오징어 전인지 무전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다. 초등학교 교사가 직업인 아내 또한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것저것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는데 다행히도 식구들이 잘 먹어 주니 그 재미가 꽤 쏠쏠한 것 같다.


필자는 다행히도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아내가 해 주는 음식에 단 한 번도 밥투정을 해 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안 먹어 본 음식도 덥석덥석 잘 받아 먹는 편이다. 못 먹는 음식을 꼽으라면 동남아에 가면 길거리에서도 먹을 수 있다는 바퀴벌레 튀김이나 곤계란(Balut sa Puti) 정도인데 그런 그로테스크한 음식들을 제외하고는 냄새나 모양이 부담스러운 음식들을 대체적으로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혐오식품(?) 순위로 치자면 꿀리지 않는다. 산 낙지, 홍어회, 번데기, 선지회 등등 외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기겁을 할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끔 생각날 때마다 먹으러 가는 Tom Yum Gooong,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월남 국숫집, 페루 사람이 직접 만든다는 ceviche, 30달러만 내면 식당 문 닫을 때까지 먹을 수 있는 All You Can Eat 스시, 그리고 타코벨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는 스트릿 타코까지, 둘러보면 맛있는 음식들이 지천이다. 그나마 요즘 식당들이 영업을 다시 시작해서 비싼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직접 가서 먹을 수 있게 되어 몹시 다행이다. COVID-19 전염률 전 세계 1위인 카운티 안에 살지만 이렇듯 다양한 음식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 거주민의 특별한 어드밴티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태어나기를 한국인으로 태어난 탓에 특별한 한국음식들이 생각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다. 1983년부터 2006년까지 23년 동안 6702회나 연재된 조선일보의 이규태 (2006 작고) 칼럼에서, 그는 한국인만이 가진 고유한 맛의 하나로 '삭은 맛' 또는 '곰삭은 맛'을 꼽았다. 서양 음식에 짜고, 쓰고, 달고, 시고, 매운 다섯 가지의 맛이 있다면 한국 음식에는 묵은 맛, 삭은 맛, 감칠맛 등의 제6, 제7의 미각들이 있다. 음식을 삭힌다는 것은 치즈의 발효과정과는 다른 점이 많은데, 쇠(鐵)도 아니고 음식에 사용하는 삭다라는 동사에는 적당한 영어 번역도 없다. 삭은 것은 발효(醱酵, fermented)와 썩음(腐敗, rotten)의 중간 언저리쯤 되는 상태이다. 홍어회는 썩은 상태에 가깝고, 장(醬)류와 김치, 젓갈들은 삭은 음식이다. 그런데 이 삭은 맛은 김치에 적용할 때와 젓갈에 적용할 때, 그리고 장에 적용할 때 각각 다른 맛으로 표현된다. 묵은지의 삭은 맛은 시어 문드러지기 직전의 새콤아삭한 맛이고, 장의 삭은 맛은 소금과 아미노산, 글루탐산나트륨이 표현하지 못하는 절묘한 미각돌기를 자극하는 맛이며, 젓갈류의 삭은 맛은 비린 맛과 짠맛을 서로 조화시킨 묘한 중독성을 가진 꼬리꼬리한 맛이다. 그 오묘한 맛의 세계를 다 표현하지 못하는 글의 짧음이 안타깝다.


끈적한 곤쟁이젓 한 숟갈, 참기름 몇 방울 넣고 밥을 비벼서 먹는 맛이나 가자미에 찐 좁쌀을 버무려 삭힌 가자미식해의 맛을 안다면 진정한 삭은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음식을 삭힌다는 것은 소금과 곰팡이가 적절한 화학작용을 거쳐 만드는 독특한 효소로 재료가 가진 고유의 풍미를 120% 살려 주는 기막힌 요리법이다.


시인 백석(1912∼1996)은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겜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시케에 들어 절미지'라고 했다. 가자미 회국수가 뛰어난 맛이라면, '시케'(식해)는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인 절미(絶味)라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삭힌 음식은 단순히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방법에 각 지방의 특별한 발효방법을 추가해서 훌륭한 토속음식들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음식들이 총집결되어 있는 이곳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쉽사리 먹어 보기 어려운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홍어회와 간장게장이 있다. 홍어회는 그 음식의 특성상 미국 식품 위생국에서 허가를 받을 수가 없다. 미국인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상한(썩은) 음식이라 제대로 삭힌 홍어회를 팔았다가는 당장 영업정지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먹는 홍어회는 삭히다 만 어정쩡한 맛이다. 코를 쏘는 독한 냄새가 나지도 않고 목구멍이 확 넓어지는 개운함도 없다. 그냥 흉내만 냈다.


그리고 나의 최애, 삭은 음식 중에 최고로 치는 음식 중 하나가 간장에 폭 담가 잘 삭힌 게장이다. 내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음식인데, 흔히들 밥도둑이라고 부르는 간장게장은 그 비주얼 자체부터 영롱하다. 간장에 잘 삭은 게장의 독특한 맛은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먹어보고 만 사람은 없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을 가졌다. 이게 또 외국에서 쉽사리 접할 수가 없다. 간장게장은 한 끼 식사로 하기에는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들고 만드는 과정이 어렵워 제대로 맛을 내기도 쉽지 않다. 식당에서 많은 양을 만들어 팔기에도 부담이 가는 메뉴라 제대로 하는 식당을 찾기가 녹록한 일이 아니다. 게도 싱싱한 참게를 써야 맛있는데 다리 열 개 다 붙어 있는 싱싱한 제 철 참게 구하기도 어려워 간장게장을 파는 식당이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 집은 간장게장을 만들어 먹는다. 다행히 조금만 발품을 팔면 싱싱한 재료를 구할 수가 있다. 아내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에 왔다. 결혼해서도 음식에는 솜씨도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뭐든 도전해보는 그 용감한 실험정신이라니! 지금은 자타공인 알아 주는 손맛 일품 주부가 됐다. 집에서 간장게장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데 이젠 게장 맛 내기도 달인이 되었다. 참게는 아침 일찍 중국 마켓에 가면 살아서 펄펄 뛰는 놈들을 파운드 당 1-2달러 정도면 살 수 있다. 나머지 재료야 어딜 가던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한 번은 아내가 간장게장에 쓸 소주를 사러 동네 한국수퍼마켓에 갔는데 카트에 담긴 2리터짜리 소주 두 병을 발견한 교회 권사님이 소주와 아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라고. 모르긴 몰라도 그 술은 내가 먹으려고 사는 것이라고 짐작했을 그 권사님이 나를 알콜중독자 취급까지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우리  cul-de-sac 가득 채우던 꼬리꼬리한 간장 끓이냄새를 기억한다. 동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머도 우리 집에서 정화조를 고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손이  아내는 간장게장을 만들 때마다 참게를  마리쯤 산다.  정도 사니 간장도 국통으로 하나 가득 끓여야 한다. 그렇게 담은 게장은 겨우내 우리 먹고, 나눠 주고, 그러고도 남아서  고객들 연말 선물로도 드린다. 작년에는 COVID-19 때문에 못했지만  손님   분은   동안 게장 생각만 하신다는 분도 있다, 통통한 오렌지색 알이 잔뜩 붙은 몸통을 덥석 깨물어 먹고, 등딱지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넣어 썩썩 비벼  숟갈 입에 넣으면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다. 밥상의 행복은 가족의 행복이다.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나누는 일만큼 복스런 일이  있을까.




아래는 아내의 간장게장 recipe이다.



참게의 집게발 끝을 자르고 철솔로 박박 문질러 오물들을 제거한 다음 등딱지와 몸통을 분리한다. 배에 있는 덮개를 젖히고 손가락을 넣어 힘을 주면 등딱지와 몸통이 분리되는데 처음엔 힘들어도 숙달되면 한 번에 분리할 수 있다. 버둥거리던 게는 여기서 죽는다.


분리한 게를 흐르는 물에 씻어 체에 받혀 물기를 뺀다.


몸통은 먹기 좋게 가위로 2등분, 혹은 4등분으로 분리한다.


(살아서 펄펄 뛰는 게를 못 만지는 아내 때문에 여기까지는 100% 나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간장과 소주를 1:1로 섞은 것에 식초, 할라페뇨(jalapeño), 다시마, 생강, 감초, 마늘 등을 넣고 끓인다. 소주를 넣는 것은 간장의 텁텁한 맛과 게의 비린 잡내를 없애기 위함. 할라페뇨 대신 청양고추를 넣어도 된다.


간장물이 식으면 차게 식혔다가 게를 담은 통에 붓고 이틀 정도 삭힌다.


간장이 어느 정도 게에 배어 들었으면 게를 건져 내고 한 번 더 끓여 식힌 다음 고운 체에 받혀서 거른다.


게 등딱지에 자른 몸통을 원래 모양대로 조립(?) 한 후 차곡차곡 쌓은 통에 레몬, 표고, 생강 저민 것을 올린 다음 간장물을 붓고 밀봉한다. 한꺼번에 한 통에 넣지 말고 조그만 통에 나누어 담는 것이 좋다.


(기호에 따라 새우와 같이 삭혀도 맛있는 새우장까지 곁들일 수 있다)


보통 먹기 좋게 삭는데 냉장고 안에서 1-2주 정도 걸린다. 이때가 가장 참기 힘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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