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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Jun 16. 2022

영어, 그 원초적인 핸디캡에 대하여

 대통령이 지난 10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찬 회동에서 용산 시민공원 이름을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로 이름을 지으면 좋겠다.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 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8일에도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거버먼트 어토니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 관료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라고 말했고, 5 바다의  기념식에서는 “부산항이 세계적인 초대형 메가포트로 도약할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뉴스나 시사적인 내용을 자주 챙겨 보면서 도어스테핑 준비를 한다라고언급했다. 이런 발언들을 미뤄 보아 이분의 영어사랑은 정말 진심이구나 하고 느끼지 않을  없다.


그런데, 국립 추모공원, 법무부 검사, 초대형 항구, 사전질의… 이 단어들이 촌스러운가?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어쩌다 한국에 방문하면 영어 단어   마디 섞어 쓰지 않는 사람이 없어 보일만큼 모두들 영어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서점엔 남들보다 빨리 영어를 배울  있다는 책들이 가판대를 가득 메우고 있고, 번화가의 간판들은 여기가 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비영어권 국가 중에서 한국만큼 영어교육에 많이 투자를 하는 국가는 없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연간  세계에서 토익에 응시하는 인원이 700 명인데 한국에서만 200 명이라고 하며, 미국, 호주  영어권 국가로 언어 연수를 가는 학생이나 성인도 한국이 가장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의 비율은 그다지 높지 못하다.



한국에서는 몰라도, 영미권 국가들에서의 영어능력의 평가는 절대적으로 읽기와 쓰기 능력으로 판가름 난다. 발음 좋은 거지와 발음 약간 부족한 엘리트의 대접 차이랄까. 수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지만 그들의 대학생활은 어쩌면 영어와의 사투라고 해도  만큼 치열하고 눈물겹다. 숙제를  때마다 별별 도움을  청해야 한다. 강의실에서 토론 시간이 되면 영어가 불편한 학생들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어찌어찌 간신히 졸업해서 한국에 돌아가면 미국 유학생이라는 간판을 하나  붙일지는 몰라도, 때론 어떻게 졸업하고 학위를 받아갔나 싶을 정도의 처참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미국 명문대에서 학위 받아간 사람이 영어로 보낸 이메일이 중학교 2학년짜리가  것만도 못해서 적잖이 당황스러운 때가 많은 것이다.


한국인들은 왜 영어를 못할까? 한국인들의 영어는 왜 실전에 약하며, 한글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느낄까?


필자 같은 86세대들은 철저한 주입식 영어교육을 받고 자랐다. 문법 공부를  하면 시험 점수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본인조차도 어눌한 발음을 가진 영어 선생님에게 발음을 계속 지적받았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10 이상을 투자한 시간 대비 효율이 굉장히 낮은 영어공부였다. 대입시험을 치르는 데까지는 어찌어찌해   있었으나, 정작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혀가 몽땅 굳어버리는 무딘 영어였다. 영어와 함께 울렁거리는 증상까지 얻어,  마디  놓고 혹시라도 발음 잘못했을까  눈치부터 보아야 하는 못난 영어였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영어를 잘한다 기준은 발음(pronunciation), 문법(grammar), 속도(speed), 순발력(reaction) 등의 직관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외국인(여기서는 영미권)들의 기준은 어휘(vocabulary), 읽기(reading comprehension), 작문능력(writing), 의사전달 능력(debate, convincing) 등이다. 발음이  나빠도 위에 열거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주저 없이 유창하다(fluent, perfect)라는 평가를 한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연방 하원 3선 의원을 지냈었던 김창준 씨가 의회 첫 등원 때 다른 의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 양해하고 들어 달라.”


그랬더니 다른 의원 중 하나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우리는 당신의 정책을 들으러 온 것이지 발음을 평가하러 여기 온 것이 아니다.”




발음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가 또 ‘생활영어’이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7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건너온 조화유 씨는 미주 한국일보에  40 가까이 ‘조화유 생활영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일주일에 4-5회씩이니 거의 1 2 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아직도 출판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화유 기자가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미국인들의 생활영어이다. 관용구들, 약간의 속어 표현, 어법에 맞지 않지만 현지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대화 내용들이 거의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영어를 달달 외운다고 해서 영어실력이 속시원히 늘지 않는다.


필자도  때는 관용어구들을 달달 외우고 다녔었다. 그러나 그런 표현들이 일상생활에서 툭툭 튀어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자연스러운 영어는 아직까지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래전, 어느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미국인 친구가 스테이크에 같이 따라 나온 빨간색 소스를 가리키며 웨이터에게 물었다. “Is this bite?” 웨이터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Kind of pinching.”


친구에게 무슨 뜻이었냐고 물으니 ‘소스가 맵냐’, ‘혀가 약간 꼬집히는 정도다’라는 설명이었다.


‘아하, 맵다는 것을 혀를 꼬집는다고도 표현하는구나!’


이것을 달달 외우고 있던 내게도 마침내 기회가 왔다. 함께 식당에 간 와이프가 약간 매워 보이는 쇠고기 스튜를 시킨 것. 이때다 싶었던 나는 웨이터에게 바로 물었다.


“Is this bite (이거 맵니)?”


손가락으로 스튜가 담긴 그릇을 가리키는 내게, 그는 당황한 듯한 눈빛으로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


“Well, bulls don’t bite, they butt instead. (어… 소들은 물진 않아, 대개 들이받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가는 나를 뒤로 하고 웨이터는 냉큼 자리를 떠났다.



생활영어는 그런 것이다. 생활영어 표현 천 개 외우고 있다고 한들 적시적소에 써먹기 어렵고, 외려 부적절한 사용으로 어색해지기만 할 뿐이다. 하물며 영어 단어들에 한글 조사만 붙인 문장은 영어도 한글도 아닌 국적불명의 언어일 뿐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버릇처럼 섞어 쓰는 영어 단어는 전혀 멋있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의 가치를 천박해 보이게 할 뿐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외국인들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인사말을 외우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만큼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졌다. 휴대전화에 깔려 있는 앱을 쓰면 외국어가 실시간으로 통역되는 세상이 되었다. BTS의 공연에 비싼 티켓을 사서 들어온 외국인 팬들이 한글 가사로 떼창을 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백인들 타운 한가운데에 한글로 간판을 써 붙인 식당이 명소가 되고 있다. 김연아로, 삼성전자로, 기생충, 현대자동차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수직 격상되었다. 뉴욕 맨하탄 중심의 보쌈 전문점에 노랑머리 미국인 넷이 앉아 파전과 보쌈을 시켜 놓고 항아리에 든 막걸리를 바가지로 퍼 나눠 마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어. 여전히 경쟁력 높은 아이템이다. 아직도 영어는 국제 공용어이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은 어딜 가나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 추모공원’은 절대 촌스러운 단어가 아니다.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멋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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