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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방법

소소반추

by 사브리나 Sabrina

어릴 때 말이다. 편한 옷보다는 단정하고 차림새 있는 옷을 선호했다. 가족의 영향이 컸으리라. 옷을 사주시는 기준은 늘 교회 입고 갈 수 있는 옷과 아닌 옷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잘 살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김민제 아동복을 사서 입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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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옷은 거의 정장에 가깝게 입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교복이 너무 좋았던 것도 그때 입을 수 있는 정장 스타일에서 가장 예뻤기 때문일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교복이 예뻤다.


대학에 가서도 정장에 대한 애정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맨투맨에 청바지에 대학 점퍼에 운동화나 스니커즈 이런 거로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녔어야 했는데 나는 하이힐에 세미 정장에 가죽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좀 창피하다만 그때는 그게 또 나름 멋이었다 생각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학비도 벌고 할 겸 직장을 잠깐 다녔었는데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직업이었다. 그때도 유니폼 입는 게 찰떡같이 좋았다. 사람들은 불편하다 했는데 나는 유니폼 입는 것도 좋았다. 정돈되어 보이고 깔끔한 차림새는 언제나 나한테 자신감을 주는 어떤 것이었다.


그러다 대학원이 좌절되고 무엇을 하고 사나 할 때 NGO에 들어가게 되었다. 외국계 회사여서 그런지 대표님부터 모두 옷이 좀 자유로웠다. 특히 금요일은 캐주얼 데이라고 해서 모두 청바지에 운동화에 다들 편하게 입고 출근하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그날이 나에게는 곤욕스러웠다. 나한테 편한 옷이라고는 면바지? 그리고 어디 여행 가거나 할 때나 신는 운동화 하나 왜에는그렇다할 캐주얼이라 부를 만한 옷들이 없었다.


회사가 종로 근처였는데 그때 종로 3가 근처에 아주 큰 지오다노 매장이 있었다. 열심히 캐주얼을 매칭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회사 갈 때 특히 직급이 올라가면서 더더욱 정장 혹은 세미 정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되면서도 정장을 놓을 수 없었다. 교원자격증은 없지

나의 첫 차 빙봉이! 15만을 타고 보내줬다.

만 그래도 나는 학교 밖 선생님이고, 내가 방문하는 집들은 어떻게 하다 보니 한남, 청담, 대치, 압구정... 기생충에 나오는 그런 최상위 집들이 많았다. 옷과 신발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이동을 많이 해야 하지만 겨울에도 구두와 코트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자동차를 사게 된 것도 그때였다. (한남 유엔빌리지는 차 없이 다니기에 불편하기도 하고... 예쁜 소형 외제차를 구매하게 된 것도 사실 나에게 최선이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는 하지만 사실 정장 입는 걸 좋아했다. 정확하게는 정장 입었을 때의 나를 좋아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옷은 갑옷 같은 것이었다. 뭔가 정장을 입고 갖춰 입으면 사람들이 나한테 함부로 하지 않는 것 같고, 또 나한테 함부로 하지 마세요. 하는 무언의 메시지가 되는 것 같았다. 한편 내가 그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뜻도 되었다. 이건 흡사 갑옷 같은 것이다. 나를 보호하면서도 공격하지 말라는 보이는 방어선이 되는 것이다.


정장 옷이 갑옷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정서적으로 힘이 빠지고 나서 알게 되었다. 우선 처음 변화는 아이들을 만나던 중에 한 아이가 장례식장 다녀오냐고 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정장도 검은색, 회색 무채색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선생님을 좀 딱딱하게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옷에 색을 넣기 시작했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밝은 색 위주로.


그리고 옷도 점점 청바지를 곁들인 세미 정장이든지 조금씩 변형을 주기 시작했고 한동안 스니커즈의 세계에 빠져서 정장이든 함께 매칭하는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특히 수업 없는 날. 교회 가는 날. 이제 교회에서 이제 무언가 맡은 직분이 없어서 자유롭게 입고 간다. 그래도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 있고, 선생님이라는 나의 정체성에서 크게 과하게 날티나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옷을 편하게 입게 된 것은 방문 수업을 줄이고 작은 공간이지만 아이들이 와서 수업을 하기 시작했고 내 공간 나만의 분위기를 만들면서이다. 사람들의 기준이나 환경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고 오롯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정서적인 긴장도가 줄어들었다. 물론 상담이 있고 수업 있는 날은 더 신경을 썼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정장을 입는 횟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오늘 입고 나온 투피스

그런데 자존감이 떨어진 날은 혹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 가야 하는 날은 정장을 챙겨 입게 된다. 나를 지키는 갑옷이 필요하니까. 결국 오늘 아침에도 정장을 챙겨 입으면서 지금 내 상태가 안 좋구나. 힘이 드는구나. 했다. 정장을 입고 정돈되고 그런 모습에서 위안 아닌 위안을 얻는다.


장황하게 썼지만 결국 내 마음 상태가 옷 입는 스타일도 좌우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도 궁금하다. 힘들면 찾아 신는 신발이 있는지, 어떤 옷을 입으면 안정감을 얻는다거나, 불안할 때는 어떤 색 옷을 찾아 입게 되는지... 등등 말이다. 우리의 마음은 꽁꽁 숨어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런저런 모양으로 결국에는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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