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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N Sep 24. 2021

태권도할까, 공부를 할까.

10살에 찾아온 첫 선택의 순간

  '차렷. 경례. 태권.'


 나는 5살의 나이에 태권도를 시작하였다. 첫 등원을 한 날, 부모님께서는 내가 귀가하여 '태권'이라고 경례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우셨나 보다. 곧이어 내 적성을 찾은 듯이 기뻐하시며 나를 태권도장에 맡기셨고, 그렇게 운동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매일 일어나면 학원에 가는 게 당연했기에 언제 수련을 끝맺을 지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선택지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 아마도 부모님께서는 내가 태권도장을 차려서 평생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하신 듯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내 나이 10살에 나름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부모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내 선택을 말씀드렸다.

 






유치부

 태권도장은 내게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시간은 유치부, 1부, 2부, 선수부로 나누어져 있었고 나는 이 모든 시간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유치부 기간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1시간마다 10분씩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는 요즘의 키즈카페에서 노는 것처럼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블록을 세워놓고 멀리서 다른 블록을 던져 넘어뜨리는 망까기 게임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손으로 던져 무언가를 맞추는 종목을 지금까지 좋아하나 보다.


 외모에서 호랑이 기운이 가득한 사범님조차 유치부에게는 온화하셨다. 구순구개열을 가지고 계신 탓에 첫인상은 무섭기만 했었다. 등원 첫날부터 나를 어깨에 올리시고는 내 볼이 찹쌀떡 같다며 깨무는 시늉을 하셨다. 내가 싫다는 듯이 사범님 볼을 밀쳐내자 '알았다 알았다.' 하시면서 나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세상을 맛본 후, 태권도장은 천적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1부

 유치부를 졸업했을 때, 나는 고작 8살에 3년을 넘게 수련한 노장이 되어 있었다. 1부가 시작되면 나는 40명쯤 되는 인원들을 4열 종대로 세우고, 앉아 번호를 외쳤다. 인원 파악이 완료되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그리고 그날 기분에 따라 수강생에게 태극 1장부터 태극 8장 중 몇 개를 골라 내 마음대로 품새를 가르쳤다. 30분이 지나면 호랑이 사범님이 나오셔서 특별한 시범을 보이셨다. 발차기를 종류별로 가르치시거나 호신술을 가르치시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가끔 신체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몇 명을 골라 겨루기 시합을 시키고는 했다. 나는 몸이 유연하거나 힘이 세지는 않았지만, 1부 인원을 통솔하는 역할을 해서 그런지 후배들은 나를 겨루기 상대로 선택하기 싫어했었다. 나도 품새 할 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불안한 긴장감과, 상대방과 타격을 주고받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권도는 품새와 겨루기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모두를 함께 해야만 했다.





2부

 태권도장에 배운 것은 '긴장하기'였다. 긴장 속에서는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더 세게 힘을 낼 수 있다. 모든 생물체가 생존을 위해 남겨놓은 히든카드 같은 것이다. 아마도 2부에서는 이런 히든카드를 쉽게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연습을 한 것 같다. 발차기가 느리면 사랑의 매가 내 엉덩이나 허벅지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그 자극에 반응하여 조금 더 빠른 발차기를 하게 됐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나의 발차기 속도가 향상되고는 했다. 이는 이후 교감신경, 부교감신경을 배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속도를 내는 신경은 많이 쓰면 마모되고 손상된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은퇴 이후에 고생하는 이유도 이것일 경우가 많다.


 어쨌든 긴장감 속에서 빠르게 큰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지만 지구력이 좋지 않은 단점이 있었다. 나는 이 부족한 지구력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그것이 '정신력'이라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가장 의심이 되는 개념이긴 하다. '정신력'보다는 '인내심'이라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힘 력'보다는 '마음 심'쪽이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힘이 생기기보다는 그냥 힘든 마음을 참고 내색하지 않는 정도기 때문이다.



선수부

 태권도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수련을 한 사람에게 검은띠를 수여한다. 검은띠를 맨 사람은 3품 이상을 수련한 사람다. 10살에 3품을 따고, 나는 2부와 선수부를 모두 나가게 되었다. 처음과 다르게 나의 사범님은 내게 무서운 존재로 변하고 있었다. 선수부에서는 2부보다 더욱 엄하게 수련생들을 다루셨다. 이때 단체 활동이라는 개념을 이해한 것 같다. 친구들 중 한 명이 잘못해도 모든 사람이 같은 벌을 받았다. 군대의 훈련병을 미리 경험했다고 보면 된다.


 2부보다 더 높은 기준이 있었고 이에 도달하지 못하면 혼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눈물을 곧잘 참는 편이었기에 집에서 내색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억울한 날이 쌓이면서 결국 참을 수 없는 날이 찾아왔다. 시간이 가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그런 날들이 잦아졌다. 선수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 생활을 견뎌야 하는데, 그 당시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했었다. 좀 더 평화롭고 합리적인 세상을 꿈꾸었다.




태권도할까 공부할까

 발전을 꿈꾸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지만 그때 내가 생각한 해결 방법은 그만두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보다는 그저 그것을 도피처로 이용했다. 공부에 관심 있었다면 초등학교 1, 2학년 때 성적이 좋았겠지만 그러질 못했다. 엄마는 그래도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을 데리고 동네의 속셈학원에 등록시켜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며 인사를 해주었다. 간단한 산수문제를 풀고 반배치를 하였는데, 운 좋게도 좋은 점수가 나와서 나를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기억해주셨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솔직히 말했다.


 "엄마, 학원 선생님이 나 공부 잘하는 줄 알아. 나 어떡해?"

 "그럼 잘하면 되지. 사실 엄마가 너 공부 잘한다고 하고 왔어."


 웃긴 얘기지만, 그 말 때문에 부담이 돼서 진짜로 공부를 하게 됐다. 태권도장을 그만두면서 시간이 남아 할 게 없기도 했지만, 공부를 진짜 잘해야 되는 상황이 왔기에 공부를 했다. 공부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이 시킨 대로 예습과 복습을 꾸준히 해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때 수학을 100점을 맞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일으켜서 칭찬해주셨고, 반 친구들이 '오~' 추임새를 붙이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기분이 너무나 짜릿하고 좋았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태권도가 내게 준 것은 생각보다 많다. 먼저, 어린 나를 좋은 길로 이끌어 준 태권도 원장님과 사범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된다. 12년의 학교 생활, 2년의 군대 생활, 10년의 직장 생활 동안 지각 결석이 없었던 이유는 태권도에서 배운 '정신력', '긴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 운동회 단거리 계주 선수를 줄곧 한 이유는 역시 태권도에서 기른 '순발력' 덕분이었다. 나의 이런 근면함과 운동감각은 분명 어렸을 적 수련했던 태권도에서 비롯됨이 분명하다.


 잃은 것이 있다면 평안한 느낌이다. 긴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성장한 것 같다. 이 긴장감은 불안함과도 연관이 있다. 이 불안함을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버릇이 생겼다. 그만큼 체력소모가 커서 쉽게 지치고 피곤함을 많이 느낀다. 이 상태를 정신력으로 버티다 보니 무의식 속에서 싫증과 짜증이 차곡차곡 쌓였다. 최근에는 이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닫고 여유로운 생각과 삶을 가까이하고 있다. 이를 깨닫기 까지도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나는 결국 공부를 선택했다. 운동을 버렸다기보다는 그 문화를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현재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가 줄었으면 한다. 선택에 합리화를 하자면, 만약 내가 운동을 택했어도 나는 그 분야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 어쩐지 지금의 내 커리어가 더 나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는 내 모습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정해주신 것이고,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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