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RN Mar 14. 2022

대외활동 할까, 아르바이트 할까.

지긋지긋한 등록금과 생활비

 

 끈질긴 생활력을 획득한 공대생은 선택지가 많다. 이번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을 차례였다. 공부 걱정없이 아르바이트만 했던 것보다 난이도가 하나 더 오른 셈이다. 등록금과 생활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440만 원의 큰돈을 학업과 병행하여 모으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전액 장학금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전액 장학금은 학과 수석에게만 주어졌다. 이건 노력과 실력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수석은 운도 따라줘야 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대안은 있는 법. 국가 장학금, 기업 장학금, 지역 장학금을 찾아보게 되었다.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직접 찾아보고 여기저기 지원을 했다. 의외로 자격조건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이 많았다. 운 좋게도 지역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남은 학기 모두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묻지마식으로 막 지원했던 것이 얻어걸려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첫 사례였다. 혹시나 해서 동네 친구에게도 이 정보를 알려줬는데 같이 혜택을 받아 몹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이 사는 시청 사이트에 접속해서 장학금 지원 사업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가장 큰 산인 등록금 문제를 해결했다.



 다음은 생활비 문제로 넘어갔다. 친구들은 과외를 주로 했다. 그 당시, 과외는 주 2회 월 30~50만 원의 고액 아르바이트였다. 나도 과외를 알아볼까 하는 중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대학생 홍보 대표 리포터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더 눈을 이끈 문구는 '활동비 지급'이었다. 아, 대외활동으로 생활비를 벌 수 있으려나?


 사이트를 접속해봤다. 애경그룹의 대학생 홍보대사를 모집하는 광고였다. 연예인 같은 대학생들이 글도 쓰고 사진도 올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포스팅이 가득했다. 뭔가 부러웠다. 돈을 받으면서 이런 재미있는 걸 하다니.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을까. 이미 낯이 두꺼워진 공대생에게 주저할 시간은 없었다.


 첫 자기소개서를 적는데 나 자신에 대해 쓸 말이 하나도 없었다. 어려서 운동을 배웠고, 성실하고, 뭐 기타 등등 평범한 스토리뿐이었다. 어차피 대학생 활동이니까 다들 같겠지라는 위안을 갖고 무난하게 적어나갔다. 이번에 안되면 다른 거라도 지원하겠다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마음을 비웠다고 했지만 사실 거의 매일 사이트를 접속했다. 1차 발표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부족했다. 써놓은 자기소개서를 조금씩 바꿔서 다른 대외활동도 지원했다.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창피함을 덜기 위해서 하나는 걸리겠지 전략으로 여기저기 마구 지원서를 뿌려댔다.


 여러 곳에 지원한 덕분에 일부는 통과할 수 있었다. 이후 합격한 자기소개서 스타일대로 다듬어서 다른 곳에 지원했다. 이걸 반복하니 성공률이 계속 높아졌다. 이게 자소서 스킬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대학 기간 동안 이 작업을 20~30번 연습을 하게 된 듯하다.


 애경그룹 홍보대표리포터 1차 합격으로 면접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공대생에게 대외활동 면접은 굉장히 불리하다. 타 전공 대비해서 팀플 발표보다는 개인 공부로 필기시험 보는 게 많기 때문에 말을 조리 있게 할 기회가 없다. 최초로 타 전공자들이 모인 면접 자리를 다녀오면서 뼈저리게 그 격차를 느꼈다.


 취업 면접이 아니기에 굉장히 특이한 발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제학과, 광고홍보학과, 문예창작학과, 경영학과, 철학과, 교육학과, 연극영화과, 정치외교학과, 성악과의 자기소개를 들어봤다. 그들은 매력을 어필하는 데 확실히 능숙했다. 처음 보는 자리지만 금세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을 듣고 있으면 내가 너무 작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걸 들킬까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면접은 질문과 답변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대화하듯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자기소개부터 버벅거리고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번 면접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떨어진 김에 누가 합격할지 예측하고 있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돌발 질문을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대답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도 저렇게 잘하고 싶다. 근데 아무리 연습해도 저렇게는 못하겠다.'


 예측은 틀렸다. 의외로 합격이었다. 그리고 내가 합격을 예측한 지원자가 탈락했다. 왜지? 그럴리가? 발대식에서야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합격자 중 나이가 2번째로 많아서 면접관 옆에 앉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질문을 쏟아냈다.


 - 나: 제가 왜 합격인가요? 엄청 떨어서 말도 못 했는데요.


 - 면접관: 네, 진짜 그래 보였어요. 확실히 말은 잘 못하는데 그냥 성실해 보였어요. 뭔가 진짜 열심히 할 것 같은 기운이 있어서? 그리고 공대생은 이런 거 잘 안 하는데 어떻게 하나 궁금하기도 하고요.


 - 나: 저랑 같이 면접 봤던 다른 지원자 중에 말 진짜 잘하고 멋진 사람 있었는데 그분은 왜 탈락된 거예요?


 - 면접관: 그 지원자는 스펙은 뛰어난데 딱히 우리한테 필요하지 않아서 안 뽑았어요. 뭔가 다른 거에 더 열중할 거 같아서 관리가 안될 거 같아요. 같은 전공자도 너무 많고.


 주어진 일에 얼마나 성실하게 임하고, 집중할 수 있느냐가 핵심인 듯했다. 이게 스펙보다 중요했다. 물론 이건 대학생 활동 면접에서만 해당하는 것 같다. 취업시장에서는 스펙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 말이다. 요새는 전공과 연계된 직무 경험이 있는 사람 중에 인성도 훌륭하고 글로벌 언어 능력까지 겸비해야 취업하는 시기니까. 이것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얼마나 많이 탈락했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20~3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초반에는 상심이 컸지만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7개 기업의 대학생 홍보대사, 마케터, 심지어 모델 일까지 했다. 활동비로 월 60~80만 원, 그리고 매달 신상 옷을 받았다. 덕분에 생활비로부터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지낼 수 있었다. 이 활동들은 취업할 때 내게 유리한 스토리들을 많이 만들어줬다.




 지원한 곳에서 떨어졌을 때 조금 기분 나쁜 것 빼고 손해 본 것은 없었다. 그래서 더 많이 시도하는 것이 이득이다. 어쩌면 하나의 성공 경험을 갖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한 번의 성공 경험은 눈덩이가 커지듯이 계속 누적되는 것 같다. 이게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줄지 모다.


 가끔 인터넷이나 TV에서 지원자 모집 공고를 보면 잠시 집중한다. 저기에 당첨되면 내게 좋은 일일까? 그곳에 참가했을 때 즐거운 일이 있거나 또는 평소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면 고민할 필요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참가비와 상금, 새로운 사람들, 즐거운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시원 창문 있는 방 할까, 없는 방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