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넷플릭스 컨텐츠를 둘러보다가 ‘랑종’이 올라와 있는 걸 발견했다. 영화관에서 처음 친구와 이 영화를 보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좀비, 점프 스케어, 오컬트 등 다양한 호러물이 섞여 있다는 블로그들을 먼저 읽었다.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이슈가 된 건 광고미디어의 승리라고 말하는 영화 평론가도 많았다. 도대체 어디가 무섭냐고 비아냥대는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은 일제히 이 영화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로 일침을 가했다.
먼저 나의 의견을 밝히자면 ‘랑종’이 뛰어난 수작이 아니라는 일반적인 의견에는 동의하고 싶다. 하지만「셔터」(2005)로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했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영화였기에 개인적으로 더 기대가 갔다. 그리고 「곡성」(2016)의 나홍진 감독이 각본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충분히 이 영화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영화관을 나올 때, 기대했던 만큼의 충분한 충격과 신선함을 느꼈다. 다른 관객들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영화 값 주고 본 전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여서 전개상 중간 중간 ‘밍’(주인공)의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는 나홍진 감독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그만의 미스테리 작법은 영화 속 보이지 않는 ‘비밀’의 정체를 서서히 파헤쳐간다. 하지만 관객은 그 ‘비밀’의 구체적인 정체와 작동원리를 알 수 없다. 이 ‘비밀’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유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이 ‘비밀’의 세계는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세계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없다. 마치 새벽녘에 안개가 가득 차 전방에 대상을 어렴풋이 밖에 확인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랑종’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비밀’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 공존하고 있으며, 어쩌면 자신이 상위의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이 영화에 매력을 느꼈던 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합체’에 관한 거였다. 결국 밍은 바얀 신에 빙의된 게 아니었다. 영화 후반부에 밍의 엄마 또한 무언가에 빙의되는데, 그 또한 바얀이 아니었다. 영화 중반부에 밍이 빙의된 건 ‘수없이 많은 잡다한 것’이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곧 ‘자연’(Nature)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한다. 이 ‘잡다한 것’은 자연 속에 사는 생명체들을 일컫는 것 같다. 이것은 고대의 샤머니즘과 토테미즘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이 영화가 결국 밍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자연’의 혼란스럽고 임의적인 속성이라 생각한다. 혼란스럽고, 임의적이다(chaotic and randomly). 우리가 마주보는 숲과 나무, 하늘과 바람, 땅과 동물들은 모두 자신의 본능에 의거하여 움직인다. 마른 땅에 벼락이 쳐 마을의 누군가가 죽는다고 해도, 거기엔 자연이 직접적으로 의도한 바가 없다.(오늘날에도 피뢰침이 없는 동남아 마을에선 이런 일들이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최근 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급증하면서 병원 내에서도 가정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같은 부서들이 인기가 있다. 중범죄와 조현병 및 정신병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무언가에 빙의되는 것과 정신병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겠냐마는 … ‘랑종’은 자연(nature)의 힘과 기운이 인간 세계를 침범하고 해를 가할 수 있다는 픽션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인간 역사에서 귀신 들린 사람은 아주 소수지만 언제나 존재해왔다. 세상에 모든 무당들이 전부 사기꾼은 아닐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정말 나무와 숲, 특정한 동물을 숭배함으로써 적당한 힘과 기운을 얻는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가 인간의 이성과 마찬가지로 매우 자연발생적이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자연과 사회규율에 얽매여 살아가는 인간은 광기와 이성, 두 가지에 모두 영향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람이 광기에 휩싸인다는 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런 일일지도 모른다.(물론 그 광기가 얼마나 심하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광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내부적으로 마음과 정신이 얼마나 파괴되었느냐에 따라 미치기도 하지만, 순전히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광기를 안게 되기도 한다. ‘랑종’은 이러한 외부적인 힘, 곧 자연의 막강한 힘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픽션물이다. 그러한 힘이 우리를 위협한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힘이 미약하나마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지성적인 편일 것이다.
‘랑종’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비밀’세계의 역동성을 조명했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무언가에 빙의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존의 엑소시스트 영화들은 이미 너무 많지만, ‘랑종’처럼 ‘수없이 많은 잡다한 것’에 기초를 두고 전개를 맡긴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끼리 서로 합체하여 더 커다란 ‘무언가’가 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학(dynamics)와 상호작용. 분명 관객들은 밍 안에 있는 것의 정체에 대해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영화 속에 여전히 실제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속 이러한 보이지 않는 영적 역학관계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도 이와 비슷한 힘의 작용들이 – 분명 미미하지만 -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어쨌든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소재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이런 얘기조차도 그저 예술품에 대해 논하고 싶은 내 개인적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