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으로 본 ‘예술의 종합’과 건축사적 의의
ⅳ. 현대건축물 속에 찾는 게딱지 정신
(1) 안도 다다오와 빛의 교회
안도 다다오 건축양식의 트레이드 마크를 꼽으라면 바로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자연환경과 융합된 기법이다. 상대적으로 재료값이 저렴한 콘크리트를 외벽으로 사용함으로써 저예산으로도 아름답고 복합적인 건축물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서 콘크리트 외벽이 주는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는 자연의 빛과 그림자와 조화를 이루면서 기이한 매력을 뽐낸다. 이런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989년에 지어진 오사카 북부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빛의 교회(Church of the Light)이다. 콘크리트 외벽의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예배당 내부에 십자가 모양의 틈을 냄으로써 외부의 빛이 자연스럽게 예배당을 비추고 따뜻한 전경을 보여준다. 안도 다다오는 이 교회를 건축할 당시에 시골 마을의 지역적 특성과 느낌을 살리고자 했고, 이는 콘크리트 외벽이라는 인공물과 빛이라는 자연적인 요소가 결합되면서 배가되었다. 그는 건축을 자연과 분리시키지 않고 오히려 건축물 내부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그저 작품을 관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건축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도록 이끈다. 신도들과 관광객들은 교회의 입구에서부터 직접 걷고, 느끼며, 사고한다. 즉 관광객들이 건축물과 직접 교감을 갖으면서 애초에 건축물을 지음으로 이루고자했던 목표를 함께 성취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물의 초입부터 내부까지 의도적으로 복잡한 건축구조를 설계함으로써 관광객이 무언가를 느끼고 건축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도록 이끈다. 그의 이런 복잡다단한 건축 시퀀스(sequence)는 마치 어떤 특정 이야기 속에 다양한 사건을 겪는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건축물의 중심인 내부로 바로 진입하지 않고 벽과 벽 사이의 좁은 통로, 90도 이상으로 틀어진 우회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등과 같은 구조를 만듦으로써 관광객으로 하여금 어떤 신화적인 여정을 통과하고 있는 인상을 남긴다. 빛의 교회에서도 좁은 통로를 지나가다가 다시 넓은 공간으로 이어지거나 새로운 건축 전경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직으로 진입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등의 건축구조가 역시 잘 반영되어 있다. 이는 인간과 건축이 서로 교류할 수 있고 인간이 단순히 건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일부가 되어 예술을 완성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에 담긴 정신 또한 이것과 유사하다. 실제로 안도 다다오가 홀로 유럽에서 건축을 독학할 당시에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양식을 동경하고 연구했다는 점은 주목할 점이다. 이렇게 인간, 건축, 자연이 각각 독립적인 위치에 머물지 않고 어떤 과정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르 코르뷔지에와 안도 다다오의 합일정신은 플라톤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플라톤은 현실세계는 불변하고 관념적인 이데아(Idea)를 모방하고 있으며 현실에 가시적인 존재나 물질의 근본을 탐구하다 보면 결국 어떤 절대적인 관념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건축 또한 이런 관념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영역이며 르 코르뷔지에와 안도 다다오는 인간, 건축, 자연이 같은 물질계의 요소로써 어떤 한 관념을 표현하는 데에 함께 동참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롱샹 성당과 빛의 교회 모두 단순히 기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건축을 넘어서서 건축이 하나의 예술로써 인간에게 심오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2) 네리 옥스만과 실크 파빌리온
네리 옥스만(Neri Oxman, 1976~)은 유대계 미국인 MIT 미디어 랩(Media Lab)교수로 최근 학계에서 물질생태학(Material Ecology)로 주목받고 있는 학자이다. 인공적인 방식으로 물질을 직접 제조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우리 실생활의 모든 것들을 자연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만들 수 있음을 그녀의 연구가 잘 보여준다. 현대의 3D 프린트 기술은 그 대상의 크기에 관계없이 재료만 주어지면 무엇이든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네리 옥스만은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각 개체의 개별적인 특성과 필요를 수용할 수 있는 건축디자인은 기획하고 설계한다. 그녀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diversity)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시키느냐이다. 현대의 건축현장에서는 형태(form)를 먼저 구상하고 이에 적합한 구조(structure)를 설계한 이후에 필요한 재료(material)를 선택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탑-다운 방식으로 빠르고, 대량생산이 용이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일방적인 디자인 방식은 각 개체가 가변적이고 다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개별적인 특성들을 효율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인간사회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인간은 자연과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환경을 모색한다. 현대건축은 x-y-z 3차원 모델을 토대로 발전하지만, 곤충과 나무, 작은 미생물들은 다양한 각도에서의 무게(load), 온도와 열 변화, 습도, 활력도(viral forces), 미생물의 역학(microbial forces) 등 다양한 차원들을 고려한 매트릭스를 형성한다. 심지어 현재의 컴퓨터 기술역량으로도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을 분석할 수 없다. 미래의 건축은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연하고(flexible) 맞춤형(customized) 모델 제작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네리 옥스만은 이러한 섬세한 생태기술을 3D프린터와 같은 장치에 대입하여 다변화하는 환경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건축을 시도한다. 형태-구조-재료 순의 탑-다운 방식과 반대로 자연생물은 재료중심적인 매트릭스를 짜 올린다. 생태계 내에 너무나 다양한 재료들이 구비되어 있기에 이런 방식의 매트릭스 제조가 가능하다. 자연생물은 스스로 밀도와 강도를 조절하며 재료를 선택할 수 있고, 지역적인 특성에 적합한 건축을 시도한다. 종·횡적 수축 이완이 필요한 구간에선 유연하고(flexible) 부드러운(soft) 조직을 생성하고 큰 압력에 저항할 때는 견고하고(stiff) 단단한(hard) 재료를 선택한다. 네리 옥스만 연구팀은 이러한 생태기술을 활용하여 손목터널증후군을 겪는 환자 개개인의 필요에 맞는 개별화된 장갑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환자마다 통증부위가 개인차가 존재하고 옥스만 연구팀은 VPF(Variable Properties Fabrication) 기술을 통해 환자에게 적합한 장갑을 만든다. 이렇게 건축현장의 주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연이 되고 궁극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우면서 유연하고 효율적인 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실크 파빌리온(Silk Pavillion)은 네리 옥스만 연구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컴퓨터로 정교한 계산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26개의 다각형 패널 구조를 만들어 놓은 뒤에 6500마리의 누에들을 풀어 직접 명주실을 뽑도록 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누에는 번데기가 되고 그 후에 생긴 나방들이 150만개의 알을 낳아 250개의 고치들이 추가된다. 연구팀은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누에의 외부환경의 행동양식을 고려해 조직체계를 구상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새로운 디자인 가능성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자연 안에 거대한 예술성이 담겨 있으며 앞으로의 건축은 자신 스스로 지어지고 사라지는 ‘자연발생적’인 행위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주도하는 건축은 서서히 사라지고 미래의 건축물은 점점 더 자연의 원형(prototype)을 닮아갈 것이다. 즉 미래에는 우리가 숨을 쉬듯이 건축 또한 무의식적으로 어디선가 지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미래의 건축은 자가 회복하고 자가 통제한다. 인간은 그저 그 건축의 시발점을 자극한다. 건축에 소요되는 인력과 자본 또한 급격하게 감소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네리 옥스만의 연구는 건축이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노동의 영역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하나의 예술로서 인간과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도록 기여한다. 건축물이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변신한다. 인간은 건축물이 더 이상 인공적인 산물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는 데에서 더 큰 친근감을 느낀다. 자연으로부터 새로운 예술성과 디자인 가능성을 발견하고 유기적인 모더니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롱샹성당과 실크 파빌리온은 닮아있다. 미래의 건축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로써 더 이상 ‘지어지는’(built)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나고’(growing) 성장하는 아주 근본적인 실생활의 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앞으로의 건축은 지어지는 것이 아닌 발견되고 성장하는 것임을 상상해볼 수 있다. 롱샹성당의 게딱지 또한 어느 순간 한 예술가의 눈에 띄었고 그렇게 현실로 재현되었다. 비단 이제 세상은 아이디어(idea)의 승부이다. 예술세계에서 영감을 가져와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는 즉흥적이지만 창조적이기도 하다. 과거 고대 태양신의 신전이 무너진 자리에 다시 세워진 롱샹성당이 더 기이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