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관한 기록> - YOLO
밤을 맞이하고 있다. 마의 산을 오르고 있다. 오늘은 D.H. 로렌스의 책을 샀다. 아주 값싸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어보려 한다. 이제 우리 옆에는 ‘금서’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걸 볼 수 있고 모든 걸 읽을 수 있다.
내 서재 가운데에는 히틀러가 생전에 썼던 『나의 투쟁』이 꽂혀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있다. 아직 그 책들을 읽지 못했지만 나는 금서의 향기를 사랑하고 그것에 한껏 둘러싸인다. 그리고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를 사랑하지만 그 나라의 역사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이 남아있다. ‘도이칠란드’, ‘도이칠란드’. 우리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그 곳에 보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에서 그 나라와 다시 만났다. 도이칠란드에는 희미한 동경이 새겨져 있다. 베를린 벽이 무너질 때 우리들은 얼마나 그 모습을 부러워했는가. 나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영토에 키스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 금서는 사라지고 우리는 자유의 세계에 살아간다. 아무것도 우리를 구속하거나 억압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읽을 수 있다. 그러니 곧 우주의 비밀도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암흑에너지의 실체를 곧 알아내지 않을까? 외계인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게 되지 않을까? 스튜어트 밀이 그토록 설파했던 ‘자유’가 정말로 이 땅에 실현되지 않을까? 미셸 푸코가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의 몸은 자유의 도래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지게 될 것이다. 보르헤스의 바벨 도서관을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돼 또 다른 고차원의 세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동경했던 닐 게이먼이 다시 나의 꿈에 등장해 나를 괴롭힌다. 결국 양자역학의 비밀을 깨달은 인류는 자신이 이 우주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는 자유를 얻은 대신 물리적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 몸 속의 원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한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 우리는 슬피 울며 고독자가 된다. 미국의 연방정부에서 멀리 떨어지기를 선택했던 스테이트(state)처럼. 그러므로 완전한 자유를 맞는다는 건 심판의 때를 상징한다. 그 때 KKK는 심판을 면할 수 있을까. 노예제는 과연 옳은 것일까. 어쨌든 사도 바울도 시종은 주인을 힘껏 섬기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엄청난 자유를 맞이한 난 지금 자금성이 쏜 화살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일본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오세아니아... 동아시아... 수많은 오브라이언이 나를 감시한다. 이제는 러시아의 모략까지 걱정해야할 때가 왔다. 내 자신이 건강한지 스스로 몸을 훑어본다. 혹시 낫질에 성기가 잘려나가진 않았는지 아주 추하게 더듬어본다. 이제 나에게서 커다란 리바이어던을 사라졌다. 나는 루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드먼크 버크를 더 좋아한다. 시각을 달리 보니 이런 것들이 어느새 당연해졌다. 혁명을 하여 무엇하는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나는 크게 외쳐본다. 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쳐보고. 원빈 아저씨가 말했던 그 명대사를 혼자 곱씹는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그래도 종말의 자유를 원하는가? 그 땐 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우리는 차원과 차원이 만나면서 먼지처럼 사라진다. 아직도 착각하시나본데, 우리는 교수형으로 죽는 게 아니다. 또 총살형도 아니다. 전기의자도 아니고, 익사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유령의 죽음을 맞이한다. 타노스가 건틀렛을 건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녕! 지구여...
안녕! 우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