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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 아프리카, 여인, 꽃 >

by 심재훈

화가 천경자 씨는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아직도 서울시립미술관에 잘 전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아프리카 여인들이 있다. 인위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의 여인들이 나를 째려본다. 과연 미술을 올바르게 감상하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그 초상화의 여인들은 천경자 씨 자신을 대변하면서도 감상하는 나를 대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그림은 현실에서 벗어나 초현실주의에 가까워진다. 그녀는 남미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자메이카와 타히티 여인들을 그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그림은 폴 고갱의 무드를 빼닮았다. 그들은 모두 원주민들을 향한 동경과 애정을 품고 살았다. 그래서 < 타히티 고갱 미술관에서 >에서 한 번 멈췄다. 나는 한 작품에 꽂히면 그 앞에 오래 서있는 다. 거기서 나오는 빨간 광경들은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려 든 것일까? 무수한 기묘 함들이 둥근 얼굴 석상에서 새어 나와 마치 내 안에 숨어 있는 야만성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에 <엔자>의 눈은 나를 사로잡았다. 여러 타원형이 겹친 눈매와 렌즈를 낀 것 같은 맑은 동공은 나의 순수성을 위협했다. 날카로운 턱 선과 오똑 솟은 코는 아프리카의 신비를 뿜어낸다. 주술과 마법을 부려 어떤 사상에 매혹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는 듯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루의 도시, ‘이키토스’를 그린 그림에 나는 멈춰 섰다. 이키토스는 페루의 아마존 열대성 밀림지역 한가운데 있는 도시이다. 그녀의 그림, <페루 이키토스>는 명동 성당과 닮은 대성당 앞에서 열심히 노동하고 있는 여인들을 그렸다. 대성당의 고딕 구조는 왠지 그 여인들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왜 성당에 집착하는 것일까? 어떤 화가이든, 어떤 그림이든, 성당 그림엔 항상 무언가 거대한 상징이 담겨있기 때문일테다. 아마 성당은 위를 바라보게 하며 하늘을 쳐다보게끔 만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잠시 신성과 거룩의 의미를 되새길 시간을 갖는다. 이것이 내가 성당을 사모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관람을 마치고 나서 나는 덕수궁 옆에 있는 성공회 성당에 다시 주목했다. 그것의 팔각형 모양과 주황색 지붕은 밤이 가까워졌음에도 마음의 눈으론 여전히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천경자 씨는 뛰어난 글쟁이이기도 했다. 그녀는 작가가 되었어도 꽤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그녀의 문체는 프랑수아즈 사강을 닮았다. 혼자 음미하기엔 너무 아까워 한 번 소개해보고 싶다.



물감을 으깨고 붓을 눌리고 하는 것이 나의 일생생활이니 노상 꿈을 파먹고 산다고 할 만도 하다. 웬일인지 해가 갈수록 성미가 더 꼼꼼해져서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무던히도 맴돌고 헤매어야 한다. 나의 타고난 비 천재(非天才)의 탓을 한탄도 해 보지만 그러나 나일론 깔깔이 같이 기계에서 쉽게 다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보다는 누에게 뽕을 먹고 자라 실오라기를 뿜어내어 누에고치가 되어 명주나 비단이 짜여 나오는 식으로 모체(母體)의 태반(胎盤) 냄새가 나는 것이라야 한다고 나는 자위해 보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 그리기를 더욱 사랑한다. 글 없는 나는 있을 수 있어도 그림 없는 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84년 4월, 천경자

천경자,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자유문학사, 1984)



도대체 요즘 출판사들은 이런 소중한 보석 같은 글들을 내놓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글들은 어디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One of a Kind'. 거대한 거장 앞에서 초라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동료와 미술관 밖을 나왔다. 벌써 어둠이 싸늘하게 세상을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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