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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

< Natalie Portman ; 레옹. 블랙스완. 다재다능함 >

by 심재훈

토르의 연인, 그리고 마틸다. 나탈리 포트만은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매력을 둘 다 갖고 있는 배우처럼 보인다. 「레옹」에서의 단발머리 이미지가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아직도 나에게는 어린 마틸다가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말끝마다 “오케이”, “오케이”를 빼먹지 않는 마틸다를 혼내는 레옹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귀엽게 느껴진다. 마틸다 같은 딸이 하나 있으면 정말 흐뭇할 것 같다. 많은 남자들이 나와 같은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레옹과 마틸다의 조합은 영화 속에선 아저씨와 어린 소녀의 관계로 나타나지만 또 다른 방식의 관계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버지와 딸, 또는 연인 관계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런 다층적인 성격들은 결국 이 영화가 어떻게 전 세계적인 팬덤을 갖게 되었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부녀지간 같으면서도 연인 같은 애매모호한 관계에 매혹됐다. 외람된 얘기지만 악당으로 나오는 게리 올드만은 이미 이때부터 대단한 연기를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나탈리 포트만의 변곡점이 「블랙 스완」(2010)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명작이 없었던 포트만에게 이 영화는 정말 명작 중에 명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영상미나 배우들의 연기 면에서 모두 출중하다고 볼 수 있다.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은 열등감에 휩싸이기 시작하고 비로소 진짜 자신이 한 마리의 백조가 되었다고 착각한다. 희고 투명한 백조가 아니라 엄청난 욕망이 함축된 검은 새가 된다. 이 영화는 현대인들의 무너진 정신세계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상대방을 제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구도에서 니나(포트만)는 결국 ‘자신’이라는 주체를 상실해버린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완벽한 타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보다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얼마나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선 레즈비언 애무 씬도 나오는데 이는 이런 경쟁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개인의 혼란을 상징한다. 최근 영화계에서 LGBT 영화는 이제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보수적인 시각에선 이런 게이 로맨스 물을 싫어해야겠지만 이런 트렌드는 어떻게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섭리처럼 보인다. 현대사회는 점점 바쁘고 복잡해진다. 그리고 개인이 설 자리는 더더욱 사라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은 점점 더 깊은 혼란을 겪고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만다. 동성애는 어쩌면 이런 개인의 혼란이 더 심화돼서 나타난 현상일지도 모른다. 니나(포트만)는 실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대(릴리)를 창조해낸다. 그리고 자신과 대비되는 그녀를 죽이는 환상을 꾼다. 그리고는 드디어 블랙 스완으로 환생한다. 마지막에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한 마리의 완벽한 백조는 되었지만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 아닐까? 포트만은 이런 혼란스러운 내면 연기를 소름 끼칠 정도로 잘 해낸다.

그녀는 하버드대를 나왔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인스타 계정으로 그녀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요리나 책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제인 갓 어 건」(2015)과 같은 서부극 영화도 찍은 걸 보면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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