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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젤 워싱턴

< Denzel Washington ; 액션. 절도. 정의 >

by 심재훈

전 세계적으로 액션배우로 가장 걸출한 배우를 꼽으라면 아마 덴젤 워싱턴이 아닐까?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왈드제네거, 「다이하드」 시리즈의 브루스 윌리스,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 이들도 엄청난 액션배우들이지만 저마다 다른 액션 매력들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잔혹하면서도 엄밀한 액션 시퀀스를 보여주는 배우가 덴젤 워싱턴일 것이다. 칼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일당백 상대를 넘어뜨리는 액션이 정말 멋지다.


덴젤 워싱턴의 액션물은 이미 하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보았던 「맨 온 파이어」(2004)는 그 당시 내겐 센세이션했다. 원빈의 「아저씨」도 아마 여기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 싶다. 정이 붙은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경험했었다. 이런 잔혹한 액션 계보를 이은 게 「이퀄라이저」 시리즈이다. 그런데 솔직히 얘기하면 이 시리즈도 「맨 온 파이어」의 벽을 넘지 못한 것 같다. 「아메리칸 갱스터」(2007)에서 덴젤 워싱턴은 약간 「대부」의 알 파치노(마이클 역)처럼 보인다. 도시를 주름잡는 갱스터가 약간의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특별히 닮았다. 「세이프 하우스」(2012)도 꽤 볼만한 액션물이다. 이병헌과 함께 출연한 「매그니피센트 7」도 재밌다.


덴젤 워싱턴의 영화들은 선과 악이 분명하게 갈리고 정의를 위해 복수를 선택한다. 그런 면에서 관객들은 진한 복수극을 자행하는 주인공을 보면서도 오히려 그의 액션에 열광한다. 그게 바로 워싱턴만의 매력이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온 저승사자.


하지만 내가 여기서 덴젤 워싱턴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멘츄리안 캔디데이트」(2004)라는 영화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다른 영화와 달리 액션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마르코(워싱턴)는 퇴역군인으로서 걸프전 후유증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 그의 부하였던 레이몬드 쇼(리브 슈라이버)는 미국 부통령 후보로 오르게 된다. 이 영화는 걸프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퇴역군인들의 정신적인 아픔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암시하고 있는데 이 트라우마가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 오히려 이들은 누군가의 욕망으로 인해 기억이 조작되고 세뇌당한다.


나는 이 영화가 덴젤 워싱턴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정신이란 가장 중요한 부위이자 삶의 모든 걸 지배하는 중심축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한다. ‘빅 브라더’의 정체가 영화에선 선명하진 않지만 어떤 영적인 세계의 절대성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있어서 더 독보적으로 느껴진다. 레이몬드 쇼는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절대적인 힘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내용적인 구성으로 보자면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도 분명 닮았다. 막바지에 마르코(워싱턴)와 레이몬드 쇼가 서로를 마주 보고 대화하는 장면은 걸출하다. 두 배우들의 눈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데 마치 우리에게 알 수 없는 주문을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굳이 액션이 없어도 덴젤 워싱턴이 명배우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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