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교시 Mar 23. 2024

일학년이 사랑에 빠지는 시간

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3월이 되면 아이들에게 하는 필수 교육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조하는 교육 중 하나는 유괴예방교육이다. 이러한 교육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나는 매해 당부와 당부를 거듭한다.

  일학년에게 유괴예방교육이 특히나 필요한 이유는 여덟 살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지칭하는 줄임말, 이하 금사빠)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생겨난 '금사빠'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진정한 금사빠야말로 1학년이 아닐까?' 싶었다.

 1학년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사랑에 빠진다. 아이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빠른 친구들은 제트기 수준이라 첫날, 첫 시간 수업만으로도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것을 어떻게 단언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사랑에 빠진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업이 끝나고 생긴 첫 번째 쉬는 시간만에 '선생님, 사랑해요.'가 적힌 색종이를 받곤 하니까. 어떤 아이는 다리에 매달려서 무해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 채 자신의 귀여움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도 한다.


'저... 저기... 초면에 미안하지만.. 선생님 다리는 놓고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1학년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어른이 만든 속담일 것이다. 그렇기에 유괴 예방교육은 특히나 일학년에게 정기적으로 필요한 교육이다. 다양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에 비슷하지만 다양한 유괴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얘기하곤 한다.  며칠 전엔 아이들에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보호자와 얘기되지 않은 사람 따라가지 않기' 라던지 '낯선 사람 함부로 도와주거나 따라가지 않기,'를 상황별 역할극을 하며 교육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실수로 떨어트려 교실에 흩날린 통신문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와 너나 할 것 없이 도와주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었던 무서운 표정의 대상은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교육하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나 입학 후 첫 일주일이상은 귀가 시 발생할 수 있는 실종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기도 하다. 다음은 내가 올해 학부모님께 안내드렸던 귀가 지도에 대한 안내 사항이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하교 지도 관련 교육★★

1) 반드시 하교 후 핸드폰 키도록 교육하기

2) 보호자와 만날 장소 명확히 약속하기

(사례: 현관에서 부모님과 약속 장소로 가던 중 평소와 다른 출입문으로 나갔다가 엇갈림)

3) 일정 변경되면 부모님께 허락 맡기

(사례: 새로 사귄 친구와 놀고 싶어서 부모님 허락 없이 친구집에 놀러 가 저녁까지 연락이 안 됨)

4) 잃어버렸을 때 만날 장소 약속하기

5) 잃어버렸을 때 대처 요령 연습하기

-보호자 휴대번호 외우기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을 때 대처방법 알려주기(교사 또는 학교 어른 도움요청 등)



 입학식 다음날이었다. 급식을 먹기 위해 화장실을 보낸 뒤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눈이 마주친 아진이가 나를 끌어안았다. "선생님이다~" 옆에 서 있던 하늘이도 반가운 기색을 보이더니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인스타 해요?"

"아니요~ 선생님은 인스타 안 하는데요~"

"선생님 그럼 저랑 카톡 해요. 제 핸드폰 번호는요~"


 아이는 빠르게 열한 자리의 숫자를 나열했다. 그러자 내 품에 안겨있던 아진이도 질세라 하늘이의 말을 뒤이었다.


"선생님, 저도 핸드폰 있어요. 제 번호는요~"


 빠르게 쏟아져내린 22자리의 숫자들에 흘려들으며 얼렁뚱땅 "그렇구나! 고마워요. 그런데 선생님이 숫자가 너무 많아서 기억을 잘 못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이 아진이는 나의 오른쪽 귀에, 하늘이는 나의 왼쪽 귀에 대고 동시에 자신들의 핸드폰 번호를 속삭였다. "이젠 알겠죠?"라고 확신에 찬 눈으로 아이들이 날 바라봤다.


'으.. 응. 얘들아, 고마워.. 그런데 이거 혹시... 청력테스트니?'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일학년 선생님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