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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Jul 29. 2023

끓는 지구와 얼음 인간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global warming' 시대가 끝나고 'global boiling'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귀가 뚫릴세라 들어왔던 지구온난화라는 말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설명하기에 부족하기까지 이르렀다. 들끓는 지구. 비유적인 표현인데도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쉽다. 한여름과 한겨울이라는 계절의 극단은 매년 기록적으로 흉포해지고,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어제 정오 즈음부터 여섯 시간 정도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더위를 피하려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곳에는 모조리 앉아있었다. 다행히 나는 푹신한 등받이 의자가 있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어서, 허리가 아프지 않게 내리 책을 읽었다.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빨대 빠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는데, 유독 안전안내문자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폭염경보가 발효되었으니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많이 마시고, 안전에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도서관을 나온 건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여닫이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데,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처럼 후끈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에어컨 바람 밑에서 몇 시간을 있다 보니 한낮의 더위를 잊고 있었다. 늦은 오후 시간인데도 이렇게 덥다니. 근처에 있는 정류장까지 고작 몇십 걸음 걸었는데 땀이 방울져 흘렀다. 시원한 이온음료를 하나 갖고 있었는데 나오기 직전 한 번에 들이켰던 게 후회가 되었다.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예정된 4분이 길게만 느껴졌다. 몇 분이 지나자 내가 타야 하는 버스를 포함하여 무려 버스 네 대가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속도가 꽤 느렸다. 안 그래도 더워서 힘든데 엉금엉금 기어오는 버스가 야속했다.


버스 네 대가 정류장으로 근접하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버스 사이에 종이가 거의 버스 높이만큼 수북하게 쌓여있는 리어카 한 대가 함께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종이란 종이는 다 모아놓은 것처럼 계란판이며 작은 상자며 할 것 없이 쌓여있었다. 버스를 비롯한 자동차들이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자 리어카도 함께 멈췄다. 얇은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리어카 손잡이를 꼭 잡던 손을 무릎으로 옮기고 허리를 숙여 거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순간 수백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잠시나마 리어카를 끌어드릴까, 아니면 물이라도 드릴까,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학습했던,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 기계적으로 머릿속에 맴돌았으나 난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교통카드를 가져다 댔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 공부한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수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짐했으면서도 난 불과 몇 분 전 도서관에서 읽은 책의 내용을 모두 망각했고, 염치 있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장황하게 글까지 썼으면서도, 난 내가 한 말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살기 위해 야외활동을 자제할 수 없고, 물을 많이 마실 수 없고, 안전에 유의할 수도 없는 한 사람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누볐을 도로의 거리와 쌓이도록 모았을 종이의 무게가 지폐 몇 장으로 환원될 것을 곱씹으며, 그리고 그 과정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했음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하루를 마쳤다. 난 고작 더위에 지친 사람 한 명도 그냥 지나쳤다. 시간을 조금 아끼겠다고 금세 버스에 올라탄 내 모습이 무척이나 차갑게 느껴졌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는 가벼운 아픔은 어떻게든 치료받고 위로받으려 애쓰면서도, 정작 내게 요원한 사람들의 큰 고통이나 죽음 같은 것에는 잠깐의 마음도 주지 않으니까. 결국 난 누구도 탓하고 원망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우리가 여름에 이토록 무심함은, 여름과 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우리는 사랑한다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잊지 않겠다면서도 금세 잊는 연약한 생명이니까. 그래서 어젯밤 자기 전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누워서, 모든 사람은 표리부동한 얼음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몸 전체가 얼음이라서 차고 미끌거리는 탓에 서로의 손도 잡아주지 못하는 존재.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도 내가 겨울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년 우리의 여름은 점점 뜨거워지고, 그러다 여름 중앙에 당도한 우리는 녹아가겠지. 사람들이 점점 서로를 밀어내고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개인화되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극이기 때문일까? 모두가 겨울과 가깝게 똑닮은 얼음인간이라, 차가운 마음을 본성으로 갖고 사는 우리는 뜨겁게 껴안을 수 없는 것일까?


열대야. 영어로는 트로피컬 나이트(Tropical night)라 한다. 트로피컬이라는 말은 내게는 야자수가 하고많은 낭만적인 해변을 떠올리게 한다. 찌는 듯한 열대야에 녹은 얼음 인간들은 서서히 밤바다에 녹아들겠지. 난 그제야 모든 인간들이 서로 엉겨붙는 상상을 한다. 해수면이 오르는 이유는 차가운 마음들이 녹아 서로 끈끈하게 손잡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때문에 'Global boiling' 시대가 반갑지 않다. 따뜻해지는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끓는 것들은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폭염을 지나며, 얼음장 같은 우리가 따스하게 녹아 하나로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삶을 위협하는 혹서에 우리가 들끓어 소멸하는 일은 없기를 또한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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