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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또집 Oct 26. 2024

엄마의 우선순위

다 소중하지만

나는 엄마다.



가진 게 하나 없었던 미혼시절.

오롯이 내 이름 하나로 살아가던 그때만 해도

그때는 무엇 하나 선택하는 게 어렵지 않았고

선택지가 틀려도 무섭지 않았다.



3-4시간 쪽잠을 자던

명확히 지금보다 바쁘면 바빴지 절대 여유롭지 않았던 나날들이었지만

그때는 시간이 아까워 본 적이 없었다.

써도 써도 남고 그저 무한정 흐르는 게 시간이란 이름의 가치였다.



나는 지금 엄마다.



가진 게 많다.

아니, 가진 이름이 많다.



나는 엄마이고

나는 아내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사진작가를 준비하는 사람이고

또 나는 딸이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불꽃같았던 미혼시절보다

무엇을 할지 채워 넣을 공간이 많은 시간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시간표의 넓어진 공간만큼이나

내가 챙겨야 할 존재들도 많아진 지금,

그 공간을 채워 넣는 데에는 조금 더 고민이 들어간다.







일찌감치 깨어난 둘째를 밥 먹이던 어느 어스름한 새벽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나의 부모. 혹은 내 남편의 부모.

내가 마땅히 존경할만하고 내 시간을 흔쾌히 내어줄 수 있는 그 존재들에게

시간을 짜게 쓰고 있나?라는 생각이.



정말 만나는 시간이 짜다기보다는

그 시간을 내어주기까지 내 마음이 짜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를 짚어보다 보니

'부모보다는 배우자가 귀해서일까'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부모님들 댁에 가면 분명 배우자가 힘들어지는 순간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일 것이기 때문에)



분명 여전히 너무나도 소중하고 사랑하는 부모님이지만

이제 내게 새로이 생긴 더 집중해야 할 가족이 있기에

그래서 부모 앞에서 한 번은 더 생각하는 내 모습을 봤다.



'아, 이제는 내 가족의 모습이 더 이상 딸로서만 있지 않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남은 나의 이름은 여러 개.



내가 갖고 싶은

직업적인 이름도 있지만

그 또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이름이기에

몇 이름을 재빨리 제외시키고 나면



엄마.

그리고 아내.

두 가지의 이름이 남는다.



둘 다 끔찍이도 소중한 내 가족이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보자니



난 아무래도 남편인 듯싶다.



솔직한 말로는

마음의 크기를 따지자면 남편이 아이들을 이길 수는 없지만



아이들은 그저

자라나는 순간을 나와 함께할 뿐

결국 육아의 도달점은 독립.



누군가의 딸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나와 같이



엄마아빠가 세상의 전부인 듯 한  아이들도 언젠가는

아들이라는 이름을 조금은 내려두고 새로운 이름들로 세상에 설 것이기에,

나는 자식보다는 나와 계속해서 함께할 남편의 손을 들어본다.



나의 남편은 영어 강사.

남들보다 출근도 퇴근도 늦다.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고

곤히 자는 남편 머리 위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아직은 어두룩한 새벽임에도

감겨있던 아이들의 눈은 금세 떠오르는 해와 같이 둥글어지고

이내 잠들기 직전까지도 보고 싶었던 아빠를 깨우기 시작한다.



아침이나 주말에나 얼굴을 볼 수 있는 아빠이니

얼마나 반갑고 놀고 싶을까 싶으면서도

약간의 나무람을 곁들여 서둘러 아이들을 방 밖으로 빼어낸다.



작은 아이야 그저 날이 밝았고 엄마가 함께 있다는 것에 신나는 아침일 뿐이지만

오매불망 아빠를 기다리던 큰 아이의 눈에는

아침이 되어도 여전히 아빠 옆에 있을 수 없다는 것에 가득히 서러움이 차오른다.



나는 아이를 살살 달래 본다.

소중한 아빠가 힘들지 않도록 좀 더 코 자게 두자고.

아이가 아빠의 피로를 이해할리 만무하지만 그저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아이의 마음보다는 남편의 기분 좋은 기상에 손을 들어준다.



우리네 인생엔

무엇 하나 포기하기 어렵게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많이도 있다.



그렇지만 내 몸은 하나.

내가 쓸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은 24시간.



가진 것이 점점 더 많아진 엄마로서의 삶에서는

어딘가에 마음을 두고 그 마음이 간 데에 시간을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고민이 곁들여진다.



그래서 어스름한 새벽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똑 떨어지게 그 순번에 따라서 살 것도 아닌

의미 없는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까지 생각이 흘렀다.



그러고 보 잊지 말아야 할 0번도 있다.

바로 내 이름.



내 부모와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0번에 내 이름 석자를

1번에는 남편의 이름을 애써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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