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역이다. 아무리 삼키려 해도 고이는 눈물을 품고 있기엔 버겁다. 차 창 너머 스쳐가는 익숙한 풍경에 그렁그렁 맺혀 용케도 버티던 눈물은 결국 주르륵 떨어져 버렸다.
지난 주말 미국에서 갑작스레 들어오신 이모들과 함께 해운대 거리와 밤바다를 거닐었다.
엄두가 나지 않아 차마 오지 못했던 이곳. 마주하기 두려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루었던 발걸음. 엄마의 마지막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 해운대에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했던 가족들과 함께 왔다.
거리 곳곳에 엄마와의 시간들이 묻어있다.
장산역에서 친정집까지. 큰 가로수가 우거진 녹음 짙은 거리 한가운데서 엄마와 나는 잠든 아이를 서로 업겠노라 옥신각신했었다. 엄마는 몸이 약한 내가 아까워서, 나는 나이 들어가는 엄마가 아까워서.
사랑으로 무장한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한 나는 언제나 백기를 들었고, 엄마의 등판 위에서 곤히 잠든 할머니와 한 몸이 된 아이를 보며, 애꿎은 아파트 입구의 오르막길을 미워하며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곤 했었다.
달리는 차 창 너머로 그날의 엄마와 내가 보인다. 여전히 아웅다웅하며 서로를 위하다 결국엔 서로에게 역정을 내고 마는 웃픈 우리가 그려진다.
이곳을 마주하지 못했던 나는 여전히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서야 엄마의 마침표를 직면하고 품어본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엄마를 눕혀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던 동생은 마지막 순간 엄마의 뺨을 타고 흘렀던 뜨거운 눈물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 눈물이 삶에 대한 미련 같아서 참 많이 아팠다. 그래서 엄마의 마침표를 지우고 또 지웠었다. 그러나 모질게도 언제나 다시 생겨났다.
지워지지 않는 엄마의 마침표를 덮어둔 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숱한 날들을 지내왔다. 어떤 날은 무너졌고, 또 다른 어떤 날은 살만했다. 그런데 그날을 지나 돌아보니 문득 내게 찍힌 쉼표가 보인다. 나의 세계에 갇혀 앞만 쫒아가던 내게 엄마가 찍어 준 쉼표,
엄마의 마침표는 나와 내 가족에만 집중하며 살아왔던 나를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하였고, 아픈 시간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소망하게 하였다. 그리 살아내보고 싶다. 엄마의 마침표가 아닌 내 몫의 따뜻한 쉼표를 품고서.
하늘과의 경계가 사라져 버린, 칠흑 같은 밤바다가 품고 있는 깊은 추억들이, 마음 한켠에 꾹꾹 눌러 둔 그리움을 더욱 짙어지게 한다. 본디 가라앉아 있는 마음은 작은 흔들림에도 금세 떠올라 버리기 마련이니 말이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고 했으니 넓은 밤바다 앞에서는 그리움의 눈물을 훔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