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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 Jul 31. 2021

고양이 춤

드러난 나의 민 낯


"엄마 고양이 춤 알아요?"

"고양이 춤?"

"응~이렇게 손 왔다 갔다 하면서 빠르게 치는 음악인데 친구들 아니 동생들도 고양이 춤을 다 잘 쳐요”

“엄청 빠르게 쳐! 나도 고양이 춤 잘 치고 싶은데..."


아이는 피아노 앞에서 친구들의 현란하고 빨랐던 손놀림을 흉내 내며 말했다.


"엄마! 나 고양이 춤 좀 가르쳐줘요!"

아이는 비장했다.

"좋아! 엄마가 가르쳐줄게!!"

엄마도 비장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피아노 학원에서 젓가락 행진곡과 세트로 열심히 눌러대었던,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하고 있는 마성의 고양이 춤. 토요일 오전 우리는 그 고양이 춤을 배우는데 온전히 집중하였다.


고양이춤을 연주할 수 있게 된 아이는 기쁜 마음에 어깨가 뿜뿜 올라가기 시작했고 감출 수 없는 기쁨에 온 몸으로 즐거움을 표현했다. 고양이 춤의 악상이 아이의 귀여운 춤으로 승화되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기쁨의 춤사위로 한참 동안 에너지를 뺀 탓에 아쉽게도 마지막 한 소절을 남겨두고 우리는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찍 눈을 뜬 아이는 이불속에서 몇 분을 뒤척이더니 갑자기 결의에 찬 듯한 몸짓으로 거실로 달려 나갔다. 하얀 피아노 앞에  앉아 ‘따라 단 딴딴~ 따라 단 딴딴~’ 검은건반을 연신 눌러댄다. 누가 쫓아오는 마냥 빠른 호흡으로 신나게 연주를 하던 아이는 어제 미처 끝내지 못한 마지막 한 소절에서 턱 막혔다.


“엄마 마지막 부분 가르쳐 줘요!”

그러나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엄마는 손가락에도 마음에도 여유가 없다.


“아들~우리 교회 다녀와서 나머지 배우자”

코로나로 분할 예배를 드리고 있던 상황이라 아침 9시까지  가야 했기에 서둘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잉… 빨리 끝까지 배우고 싶은데…”

아이의 울상 섞인 목소리에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아직 시간 여유 있는데 마저 가르쳐주는 게 어떨까?”


남편의 말에 ‘그래 아이가 배우길 원하는데 애미의 아침 무기력함이 방해가 되어선 안되지!’하는 생각으로 벌떡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열린 우리의 피아노교실은 초반부터 삐그덕 하기 시작했다.

조급한 엄마는 선생님 모드로 돌변하였고,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아이는 마음에 짜증이 앞섰다.


작은 손으로 누른 건반이 자꾸만 생각했던 음과 안 맞는지 갸우뚱해하길래 음을 짚어주면 엄마 내가 맞는지 보기만 하고 가르쳐 주진 말라니까!” 라며 짜증을 내었다.

한음 한음 옮겨가며 아이가 누르는 건반이 맞는지 계속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절대로 음을 말해주거나 짚어줘선 안된단다. 스무고개처럼 맞는지 틀린 지 알려주면서 레슨을 끌고 가야 했다.


아이는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맘이었다.

아이와 무언가를 할 때 혹여나 그렇지 않은 상황이더라도 스스로 해낸 것처럼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라는 육아 전문가들의 조언을 수 없이 들어왔건만 언제나 그렇듯 실전은 왜 이리도 어려운 건지…


스무고개 피아노 레슨을 10분가량 지속하던 마음 급한 엄마는 급기야 참을 인 자를 던져버리고 말았고, 짜증이 난 아이는 울먹이는 사태가 되어버렸다.


그 순간이었다.

"라이언은 왜 엄마랑 있을 때 자꾸 울어?” 남편이 건넨 이 말이 갑자기 훅 찌르며 들어왔다.

엄마랑 있을 때에 밑 줄 쫘악 그으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엄마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급기야 이른 아침 예배시간 전에 이 레슨 교실의 상황을 만드는데 일조한 남편이 야속해져 서운함을 토로했다. 아니 상한 마음을 안고 단단히 따지고 들었다.


알고 있다. 매사에 감정 기복 없이 한결같은 그는 좋은 아빠다. 아이에게 요구하는 사항도 많이 없고 허용치의 범위도 넓다. 그래서인지 아빠와 아이는 부딪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같이 있으면 자유롭고 잘 놀아주며 통제하려 하지 않는 아빠에게서 아이는 편안함을 느낀다. 늘 유지되는 그의 평안함도 아이에게는 좋은 마음밭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도 남편의 그 한결같음에 안정감을 느끼니 말이다.


반면에 생각이 많고 불안이 높은 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인 척하면서 늘 통제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엄마와 있을 때 덜 자유하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아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 기복이 심한 엄마의 모습을 거울처럼 습득해버린 걸까?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나의 일상을 종일 담아낸다면 렌즈 속의 난 과연 정말 좋은 엄마일까? 남편이 던진 말 한마디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켰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자기 검열, 아니 엄마 검열이 시작되었다.


나도 그 처럼 한결같이 멋진 엄마이고 싶지만 좁디좁은 나의 마음 그릇은 늘 이리도 바닥이 드러난다.

이제 막 십 대가 된 아이는 요즘 전과 다르게 말투에 짜증이 묻어 나올 때가 많아지고 있고 나는 그  말투에 쉽게 감정이 휘말리고 때로는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상한 마음을 안고 예배를 갔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예배 초반에 '삶 고백'이라는 순서가 있는데 성도가 일상에서 느낀 이야기를 강단에 나가 고백하고 나누는 시간이다.


이 날은 아이의 또래친구 엄마가 아이에게 화를 낸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누었는데 “다른 친구의 엄마는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왜 안 그래요?”라는 아이의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더 많이 웃고 일상의 감사에 집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듣는 내내 아침에 뾰족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아이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아이와 함께 있는 그 순간순간을 감사하는 엄마가 되리라 다짐하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항상 웃는 엄마 혜진 씨예요" 라며 입가에 손을대고 말하셨다.

“네?? 저요?? 진땀이 났다.


“아.. 저 오늘 아침에도 버럭하고 나왔는걸요”

“에이~혜진 씨는 버럭해도 화낸 것 같지 않을 텐데 뭘". 


얼굴몹시 붉어졌다. 옆에 있는 남편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차마 그의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나의 온전한  낯을 제대로 알고 있는 그를 말이다.


아, 아무래도 조만간 제대로 된 커밍아웃을 해야 할 듯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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