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 내 삶의 기록 그 시작과 여정
어릴 때 언젠가 제목의 'UNTITLED'라는 형용사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한 단어는 뭔가 모를 오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노래의 제목이 UNTITLED... 영어를 잘 몰랐던 그때는 "아 그냥 제목이 저거구나! 특이하다."라고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 그것의 의미가 '무제'라는 것을 알게 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무제'의 작품을 꼭 한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며 드디어 'UNTITLED'를 써보고자 한다. 말 그대로 '무제'이며 내용은 의식에 흐름에 따른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에 둘러 쌓여 살았다. 어머니가 책과 관련된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내가 책에 둘러싸여 유년기,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할지라도, 빌 게이츠와는 다르게 항상 책을 손에서 멀리했었다. 텍스트를 보고 집중하여 읽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자꾸 읽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들고, 독서는 재미가 없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는 항상 "옛 성현들은 항상 책을 가까이하였다. 책에는 인생의 길이 있다."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하셨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책뿐만 아니라 모든 텍스트 매체를 독파하는 경향이 있다. 그 안에서 얻은 지식, 상상력은 때로는 아주 유용하게, 때로는 나를 아주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우리의 출현은 본질적으로 'UNTITLED'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는 백지장과 같은 상태로 아무 제목, 부연설명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삶은 우리의 다채로운 활동을 통해 'UNTITLED'를 'TITLED'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어떤 활동이든 좋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모든 행위는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항상 약간 혹은 오랜 지루함이 지속된 후에 발생한다. 오랜 기간 매집 기간을 가지고 급등하는 작전주와 같다고 할까? 너무 직관적인 비유인 것 같다. 나의 삶의 베이스는 '무료함'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다고 느낀다. 대학생 때는 마냥 캠퍼스의 낭만이 좋았고, 무한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며 삶의 설렘 빈도는 더 줄어든 거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월~금까지 일을 하고 주말을 맞이하면 예전 같은 재미가 없었다. 원인을 깊이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거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나의 무료함을 떨쳐버려 줄 '다이내믹한 활동'이 생겼다.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재미있다. 나는 원래 글은 잘 쓰지 않았어도, 어디 가든 나의 사고방식과 사상을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나 자신을 '경험주의자'라고 불러왔다. 무엇이든 나 스스로 경험을 하기 전에는 절대 선입견을 가지거나 가치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그렇다 보니 20대 초반부터 다양한 상황에 나 자신을 노출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했고, 그 안에서 항상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남들과 이야기할 때 풀어놓을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레퍼토리가 생겼다.
이러한 삶의 경험과 순간의 생각들을 글로써 기록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사진과 기록은 내 삶의 존재 이유와 역사의 반증이다. 앞으로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차곡차곡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에너지를 온전히 담은 에세이 한 권을 우선 출판해보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나는 죽어서 도서관 한편에 내가 쓴 저작을 남기겠다. 그리고 반드시 경제, 투자 관련 소설을 연재해볼 계획이다.
건조해진 혈관에 왕성한 혈류가 흐르는 기분이 든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카타르시스이다. 한 번에 커다란 것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은 버리자. 대신 조금씩 조금씩 정해진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가지자. 그러면 언젠가 그곳에 도착한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