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걸이가 무심한 표정으로 목하를 위해 집을 꾸민다. 그리고 모진 말을 하는 목하에게 덤덤히 이야기한다.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우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하지만, 언제든 지치면 돌아오라고. 기다리겠다고.
보걸이는 어느 때나 목하의 숨 쉴 구멍이었다. 수조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 갇혀있던 목하를 구원한 것도 보걸이었다. 무인도에 15년 동안 갇혀있던 목하를 구해낸 것도 그였다.
목하가 노래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 주고, 자신과의 연조차 끊어가며 꿈을 펼치게 하는 보걸이는 그녀의 숨 자체 아닐까. 어느 네티즌이 그랬다. 보걸이란 이름은 ‘허파’라는 뜻의 경상남도 지방의 방언이라고.
그랬다. 보걸이는 목하가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존재였다. 스스로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목하를 보며 참아낸 보걸이는, 그녀를 통해 존재 이유를 찾기도, 그녀가 존재할 이유가 되기도 했다.
엊그제 밥을 먹는데, 머리가 계속 묵직하니 어지러웠다. 진통제를 계속 먹는데도 미세한 두통과 ‘브레인 포그’ 현상이 나아지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의 편인 나또 님이 그런다. “자꾸 아프다고 하지 말고, 삶의 패턴을 좀 바꿔 봐. 자기를 돌아보고.”
순간 울컥해서 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애써 눌러 담으며, 눈물 대신 뾰족한 말을 내뱉었다. “대체 내가 뭘 얼마나 쓰레기같이 산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건데?”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는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일어난다. 일상적으로 출근하여, 수업하고 업무를 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저녁 준비를 하고, 7시 전에 저녁을 먹는다.
그 이후에는 글을 쓰고, 대본집이나 읽어야 할 책을 읽고, 나무지기 훈련 과정을 소화한다. 하브독토가 있을 때는 하브독토 모임에 참여했었다.
비록 운동을 못하고 있긴 하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을 땐, 누워서 핸드폰으로 글을 읽는다.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쓰레기 같은 삶인가 싶고, 좀 우울해진다.
갑자기 쉼표란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이 세상 어디에도 네 편이 없다 느껴질 때, 너의 편이 되어줄게. 깊게 달게 자렴.’ 유일한 나의 가족이자 보호자인 그가 꼭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츤데레처럼 목하만을 위한 삶을 사는 보걸이가 생각났다. 목하의 숨 쉴 구멍이 되어주는, 아니 숨 자체가 되어주는 보걸이가 말이다. 그래서 더 그들의 영상만 찾아보게 되나 보다. 나는 비록 목하 발의 때보다도 못한 존재일지라도, 잠시나마 영상을 보며 나도 숨 쉴 구멍을 찾으니 말이다.
무릇 아내들이 왜 이렇게 남편보다 드라마에 빠져드는지, 알겠다. 숨 쉴 구멍이 되어야 할 존재들이 숨통을 막아버린다. 턱 숨이 막히게 한다. 숨은 쉬어야 살겠으니, 영상에 대고라도 숨을 쉬어보는 거다.
감히, 꿈꿔 본다. 발칙하고 야무진 꿈일지라도. 남의 편이 부디 나를 숨 쉬게 하는 보걸이가 되기를. 나도 그의 목하가 되어 볼 테니. 서로의 한숨이 아닌, 숨이 되기를-.
*사진출처: tvn 무인도의 디바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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