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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다 May 29. 2023

북한에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있을까?


덜컹덜컹. 덜컹덜컹. 
우영우 변호사는 평소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애용하며 본인이 좋아하는 고래의 소리를 듣곤 한다. 그리고 고래가 자기 곁에서 헤엄친다고 상상한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한강을 지나는 지하철, 일정한 백색 소음과 함께 객실 내부를 비추는 햇빛, 그리고 각자의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세상을 살아가는 시민들. 열차 안은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단발머리에 헤드셋을 뒤집어쓴 여성 뒤에 정체 모를 큰 물체가 움직이는군요.


우영우 변호사는 퇴근 길 지하철을 타고 가던 도중 한 마리의 고래가 열차 위에 함께 달리는 상상을 한다. / 뉴시스

아, 말로만 듣던 대왕 고래인가 봅니다. 크디큰 대왕 고래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나다니요. 지하철과 같은 방향으로 한강을 건너고 있네요.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고 모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의 상상 속 세계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홍보 포스터 / 뉴시스

위 이야기는 요즘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영어 제목은 ‘Extraordinary Attorney Woo’)’의 한 장면입니다.  주인공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변호사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 감각지각 능력 등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보이는 한편,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보이는 신경 발달 장애입니다. 이 중 지적장애를 동반한 일반적인 ‘저기능 자폐증’이 아닌 경우 ‘고기능 자폐증’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녀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으로 졸업한 일명 ‘천재’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말아톤>에서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이 나타나 사회적 편견에 주변 사람들까지 고통을 받았다. / 영화 <말아톤>

예전에도 '말아톤'이라는 영화와 '굿닥터'라는 드라마에서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주인공이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는 우영우 변호사가 고래를 좋아하는 것처럼 ‘얼룩말’에 꽂혀 삽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려 얻어맞기도 했지요.  그때 초원이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우영우 변호사는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는 말을 맥락과 상관 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습관이 있다. / 아이뉴스24

하지만 극중 우영우는 장애인, 혹은 장애인 출신 변호사가 아닌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이번 글을 통해 해외, 남한, 그리고 북한에서 우영우처럼 세상 속 편견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우영우’ 제작진이 참조한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Dr. Temple Grandin)

1947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템플 그랜딘 교수는 어린 시절 뇌에 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은 이후 장애인 보호 시설에 갈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과 가정교사의 도움 덕분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고 배움을 계속해 심리학 학사, 동물학 석박사까지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이해하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점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도축 시스템을 개발하게 됩니다. 그녀는 자폐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처했을 때 얼마나 불안해지는지 동물의 입장에서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도축되는 동물들이 고통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동물 복지적 차원의 도축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가령 소들에게 조명을 비추어 불안해하지 않도록 돕고, 편안함을 느끼며 도축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곡선형 도축로를 말이죠. 이 시스템은 미국 내 상당수 농장에 도입되면서 동물 복지를 고려한 축산 시스템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우영우 변호사의 모티브가 된 템플 그랜딘은 자신의 약점을 되려 강점으로 살려 획기적인 도축 시스템을 고안해냈으며 세계적인 연사이자 학자가 되었다. / TED

그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스스로 자신의 장애를 인정함과 동시에 그것이 더 이상 그녀의 삶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녀는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은 동물학 외에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관련한 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녀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가족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테슬라’부터 ‘스페이스X’까지, 기업 활동을 이어가는 일론 머스크(Elon Musk)

197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일론 머스크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동시에 화성으로 인간을 보낼 우주선을 개발하는 스페이스 X(SpaceX) 창업자입니다.

유명한 기업가 일론 머스크는 SNL이라는 미국 TV쇼에서 본인의 자폐 스펙트럼을 고백한 바 있다. / Forbes

명문대 출신, 세계적 기업의 CEO인 그는 2021년 출연한 미국 SNL(‘Saturday Night LIve’라는 풀네임을 가진 미국의 유명 TV 라이브 쇼 프로그램)에서 본인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그는 학창 시절 학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폭력에도 휘말려 2주 가량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커뮤니티에서는 일론 머스크처럼 큰 영향력이 있는 유명 인사의 이 같은 고백이 곧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과 인식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김예지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난 김예지는 어릴 적 갑작스런 실명 이후 맹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여러 악기를 다룬 경험이 있던 그녀는 음악에 점차 매진하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갖고 노력해 , 일반인 전형으로 숙명여대 피아노 과에 무려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졸업 이후 그녀는 비장애인 예술인과의 경쟁에서 좀 더 나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연주회와 강연, 방송 등의 왕성한 예술 활동을 이어갔고,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도 피아니스트로 활약했습니다.


<출처: 서울신문>


신체적 장애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온 그녀는 2020년 미래한국당의 영입 인재 1호로 들어와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보수 정당에 들어간 그녀를 만류하고 결정을 번복하라고도 했지만, 그녀는 차별과 약자를 위한 일에는 여야가 없다고 생각해 결정에 흔들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의 흥행, 그리고 다양하게 지속되는 약자를 위한 운동들 속에서 앞으로는 그녀는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요?


그렇다면, 북한에도 우영우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에서 우영우와 같이 당당히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살아가는 장애인의 사례를 찾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대신 북한 장애인 관련 활동을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활동을 하는 북한의 비영리단체 ‘북한장애자보호연맹’에 대해 살펴보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보고서 등의 각종 외부 문서를 통해 북한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 권리 관련 비정부단체 ‘조선장애자보호연맹’

90년대 후반 비정부단체로 발족한 조선장애자지원협회는 2003년 북한에서 장애자 보호법이 채택된 이후 2005년 조선장애자보호연맹으로 개편되었고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북한 장애인의 처우를 개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북한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마유철, 김정현 선수가 경기를 완주하는 모습. / 국민일보

지난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는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 산하 장애자체육협회 소속의 두 선수가 참가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북한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인 마유철, 김정현 선수는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의 와일드카드를 받아 패럴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으며, 경기 마지막까지 끝까지 완주한 후에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국제사회가 바라본 북한의 장애인 권리,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보고서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북한 장애인 권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2018년 발간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장애인 권리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문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사회에서는 '건강하고 강한 상태'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반면 '약한 상태'는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당시 북한의 장애인 권리를 조사 차 방북했던 특별보고관은 ‘북한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가족을 노출시키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북한 내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생산적이지 않은 이들로 간주되어 아무런 일자리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지 받았다고 합니다. 유엔 보고서가 아닌 다른 보고서에서 하와이대 김월순 교수는 몇몇 북한 사람들은 장애를 전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로 여기기 때문에 수치심이나 좌절감을 겪기도 한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 장애인은 생산적이지 않은 이들로 간주되어 일종의 차별을 받는다 / NK News

장애나 부상은 곧 훈장, 북한 영예군인

한편, 북한에서는 국가에 대한 공헌을 했던 전쟁 유공자들의 경우 장애가 있더라도 '영예군인'으로 지칭하며 사회적 대우나 인식이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7월 27일 북한의 전승절 행사에서 열린 노병대회에서는 휠체어를 탄 노병들이 행사 장소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앞서 언급된 유엔 보고서에서는 북한의 젊은 여성들이 자발적 희생을 감수하고 장애가 있는 참전용사들과 결혼하는 관행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몸이 불편한 전쟁 유공자를 만나 격려하는 모습. / KBS


우영우를 이상하게 보지 않으려면 동행하려는 태도가 필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도 장애인 권리에 대한 논의와 개선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TV 속 드라마에서도 말이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더이상 이상해 보이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제도적 권리보장 장치가 충분히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겪었을 신체적, 정신적 불편함과 마음속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들과 ‘동행’하려는 태도가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요. 드라마 속 우영우가 주변의 비장애인들과 일상생활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더이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마운 직업인이자 좋은 동료, 친구,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본 원고는 경제사회연구원의 '요것봐라'에 게제된 글을 재업로드한 것임을 밝힙니다.
*원문보기:  https://www.riesplant.com/shop_view/?idx=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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