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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Jan 16. 2022

진정한 방학

일드 '롱 베케이션'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하루도 지루하거나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문학, 예술을 너무도 좋아했던지라 적성에 아주 딱 맞았다. 보통 주위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적에 맞춰 대학이나 전공을 선택하고는 자기와 맞지 않는다며 고통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난 운이 좋았다. 그러다 교직이수를 하게 되면서 교육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이것 역시 내 흥미에 맞았다. 전공인 영문학이 지혜에 초점을 맞춘다면 교육학은 그야말로 과학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매우 중요하고 교육적 이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했다. 이건 이대로 그건 그대로 너무 재밌는 시간이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3학년이 끝날 무렵 엄마는 내게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교사가 되고 싶진 않았다. 영문학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하고자 했지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제일 큰 걸림돌이는 내가 영문학을 할 수 있을까였다. 영어로 교육학을 공부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아닌데 영어로 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문화, 상징, 역사 등 모든 것을 알아야 문학을 이해할 수 있다. 4년 동안 문학을 원서로 공부하면서도 머리를 쥐어뜯은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소질이 있다는 교수님들의 칭찬과 문학이 지닌 재미에 푹 빠져 어려운 길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유학을 보내달라 고집을 피웠다.


이미 언니가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던지라 K장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일단 차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부모님의 단호한 추천에 난 바로 입을 다물고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초지일관 해외에서 영문학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대학교 도서관, 친구의 대학교 도서관, 또 다른 친구의 대학교 도서관, 카페, 독서실을 전전하며 임용고시 공부를 했다. 될 듯 안될 듯, 희망고문이 이어졌고 나는 점점 피폐해졌다. 공부만 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인강, 독서실비, 책값 뭐든 다 돈이었다. 결국 재수부터는 과외를 해야 했고 한 해 두 해 시간이 갈수록 맘 편히 공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공부를 꽤 잘한다고 자신하던 편이라 나는 한 번에 붙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라는 것을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고시라는 게 정직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체력, 시대의 흐름, 운, 정보, 경제력, 시간, 노력, 주위의 지지 등 뭐하나 박자가 맞지 않으면 다 어긋나 버리는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었다. 1년은 안 갈 것처럼 길게 느껴지다가도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시험 3달 전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못했다면 빨리 접었을 것 같은데 도박처럼 꼭 다음번에 될 것 같은 기분에 결국 4수를 하게 되었다. 중등 영어 임용이 원래 5수에서 10수 이상은 해야 한다고 선배들이 얘기한 게 실감이 났다. 어떤 선배들은 재수만에 붙고 운이 좋았다는 걸 인정하며 합격자 강의를 하러 오기도 했지만 그런 선배들은 극소수였다. 


4수를 하던 중,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임용고시에 붙는다고 행복할까. 애초에 영문학을 더 공부하겠다는 꿈은 희미해졌고 금방 끝날 것 같던 임용고시는 올해로 4년째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자존심도 자존감도 이미 바닥을 쳤다. 파리하게 말라서 손에는 뼈가 튀어나오고 공부하다 실신해 독서실 바닥에 누워있을 때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듯 놀라지도 않고 일어나 찬 물 한잔 하고는 다시 앉아서 공부를 한다. 이만큼 고통받으며 얻고 싶은 게 맞는가.


그렇게  4수를 마지막으로 나는 공립 임용고시를 그만두게 되었고 교사가 되었다. 기간제 교사로 시작된 교직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다고 도전하는 직업인데 나도 열심히 해보자며 애를 썼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것보단 아니었지만 눈물바람이었던 적이 참 많았다. 나도 아이들도 서로 처음이라 낯설고 잘 맞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아이들만 욕했는데 지금은 참 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1년이 지나 겨울방학이 되었다.


겨울방학이라 해도 생기부 작성에 방과 후 수업을 하면 진짜 쉬는 날은 일주일도 채 안되었지만 그래도 방학이라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자며 드라마를 틀었다. 일본 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거의 다 봤었는데 이 드라마는 보지 못해서 일단 쉬는 날 아무거나 보자며 튼 것이 '롱 베케이션'이었다. 겨울방학이라는 시기에 딱 맞는 이름이 아닌가 하며.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일본식 전통 신부 복장을 한 여성이 신랑을 찾아 도시를 뛰어다닌다. 그녀의 이름은 '미나미'. 결혼식장에 있어야 할 신랑이 오지를 않자 직접 신랑을 찾아 그의 집으로 온 것이다. 신랑의 집에 이미 신랑은 떠나고 없고 그의 룸메이트 '세나'만 있었다. 

세나는 미나미의 예비신랑 '아사쿠라'와 집만 공유한 것이지 사실 남과 같았고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그러다 아사쿠라의 방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되고 결국 미나미가 버림받은 사실을 알게 된다. 세나는 미나미를 위로하지만 미나미는 충격이 컸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결혼이 파투 나며 돈을 아사쿠라에게 모두 맡겨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미나미가 아사쿠라의 집에서 살아야겠다며 세나가 살고 있는 맨션에 막무가내로 들어와 버린다. 돈을 모으면 바로 나가겠다는 미나미의 말에 세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특유의 배려심으로 참는다. 사실 세나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교수와 후배로부터 재능을 인정받던 유망한 학생이었지만 콩쿠르에서 연달아 떨어지고 피아노 학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그야말로 안 풀리는 시기의 피아니스트였다. 세나도 힘든 시기에 미나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서로 예민한 시기라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함께 살다 보니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게 된다. 


드라마에서 미나미는 남편이 결혼식 날 다른 여자와 도망가버린, 눈치 없고 늙은 엑스트라 모델로 묘사된다. 세나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연주에 감정이 없다며 교수에게 지적받고 콩쿠르에도 낙방만 한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피아노 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하며 살아간다. 이 사회의 루저들이라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나의 모습 같았다. 나는 임용고시 4수와 기간제 교사로서 1년, 5년 동안 자존감을 잃고 어두운 시간을 경험했다. 일이 이렇게 안 풀리나 싶었고 항상 우울하고 비관적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 한 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안 풀리고 뜻대로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세나와 미나미의 이야기는 그런 나와 같은 청년들을 보여주며 위로해주는 이야기였다. 미나미는 남편이 도망가도 눈치는 좀 없지만 항상 밝다. 세나는 콩쿠르에 낙방만 해도 따듯하고 배려심이 깊다. 나보다 더 암울한 상황인데 어떻게 그들의 모습은 나와 다를까. 그건 세나의 대사와 미나미의 반응에서 알 수 있었는데 '긍정적인 사고'였다.


나이가 들어서 그나마 있던 엑스트라 모델일도 다 사라진 미나미에게 세나가 말한다.

'일이 잘 안 풀릴 땐, 이렇게 생각해요. 긴 휴가라고.'

이미 잦은 실패로 상처받은 세나가 해줄 수 있는 깨달음의 위로 말이었다. 

그 말에 미나미도 감동받았지만 나도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내 길고 고통스러웠던 임용고시 기간과 그 후유증을 앓으며 시작된 첫 교직생활. 그 외에도 고통스러웠던 모든 시간이 휴가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미소가 지어졌다. 모든 순간이 휴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뒤로 나는 일거리가 없거나 뜻대로 되지 않아 멈춰야 할 때, 불안한 시기에 이렇게 말한다.

'롱 베케이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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