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
겨우 서른이 넘었다. 사회 초년생이라기엔 어중간하고 그렇다고 베테랑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애매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 안의 동심이 줄어든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떨치기 위해 난 여러 가지 애를 쓰는데 보통 마음 맞는 사람과 여행을 가곤 한다. 그래서 친한 샘과 영덕에서 차박하고 커피를 마셨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자리는 아늑하고 바닐라라떼는 너무 맛있었다. 고개만 돌리면 바로 옆에 바다가 있었는데 겨울바다가 이리도 좋은지 몰랐다. 그렇게 힐링하고 친구를 만나러 문경에 들렀다. 친구 집에 누워만 있어도 웃음이 났고 우리는 걱정 근심도 잊고 다시 소녀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예전에 비해 긍정적인 마음이 준 것 같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보자 내가 느낀 감정을 친구도 똑같이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현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수록 현실을 경험하고 현실적으로 되어간다. 그게 소위 어른이 되는 건가 싶은데, 그럴수록 장점보단 단점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또 되는 것보단 안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게 현실적인 거니까. 우리의 동심은 이런 식으로 닳아 없어지나 보다. 그래도 나는 동심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긍정 에너지를 잃는 건 너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이 슬픈 어른이 되는 건 싫다. 모두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무한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친구에게 내가 옆에서 더 유치하게 놀아주겠다며 우습게 말했다. 그런 내 친구와 나 자신, 그리고 모든 어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만화가 있다. 바로 '이웃집 토토로'다.
토토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이 만화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다. 이웃집 토토로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주인공 ‘사츠키’와 ‘메이’의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있고, 이 두 자매와 아버지는 시골로 이사를 온다. 이사 온 시골에서 자매는 신기한 생명체 토토로를 만난다. 그리고 이 자매는 토토로를 만난 이후로 고양이 버스를 타는 것과 같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병원으로부터 어머니의 퇴원이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는다. 어머니의 병세가 걱정된 사츠키와 메이는 슬픔에 빠진다. 상심한 메이가 혼자 울며 돌아다니다 행방불명되고 언니인 사츠키는 토토로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토토로의 도움으로 사츠키는 메이를 찾고 어머니도 건강한 것을 확인하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글을 쓰다 중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이웃집 토토로를 다시 틀었다. 특이하게 캐릭터는 다 기억이 나는데 왜 스토리는 어렴풋이 기억 날까. 그만큼 이 만화가 내용보단 분위기와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웃집 토토로를 본 사람이 아니라도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는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토토로 토토로'. 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동심에 젖어드는데, 역시나 털이 복숭 복숭 한 것이 토토로는 너무나 귀여웠다. 그러다 서정적인 장면이 이어지자 이상한 궁금증이 일었다.
'아니 근데 토토로는 뭐지?'
처음엔 딱 봐도 다람쥐같이 생긴 게 거대한 다람쥐 신쯤으로 생각했었다. 만화에서도 도토리를 꺼내고 나무 숲에서 살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득 저게 다람쥐가 아니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람쥐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누구도 토토로가 다람쥐라고 한 적 없고 초식동물이라고 한 적도 없다.
'저게 육식동물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잔혹동화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토토로가 육식동물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애들 다 잡아먹는 거 아니야? 저렇게 착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배고파지면 사츠키와 메이를 저 큰 이빨로.. 하는 생각에 이르자 동심을 되찾기는커녕 동심에 페인트칠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만화를 잠깐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토토로는 뭘까.
그러다 토토로가 육식동물이든 초식동물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애초에 토토로 같은 생명체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애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신비한 생명체이자 친구다. 토토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냥 토토로는 토토로다. 포근하고 신비롭고 도움을 주는 그런 친구.
그래서 또다시 깨달았다. 아이들은 따지지 않는다. 여기저기 꼼꼼히 뜯어보고 토를 달고 논리성에 어긋나면 폐기시키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내 친구야. 얘가 무엇이든 상관없어. 한마디면 끝난다. 그래서 동심이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음.’인 것 같다. 토토로 하나도 따져가며 볼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토토로 좋아.’하고 봐야 즐겁지!
토토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