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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 Oct 01. 2023

겨울 동해(4)~

설경


   브런치를 쓴 지도 오래되었다. 지난해 9월에 브런치 작가로 당선되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거의 2년 넘었다. 에너지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쓰고 MBTI N 성향을 가진 소유자로서 나만의 공간 속에서 잠시 괴롭거나 고민스럽거나 우울한 감정이 있었던 일들을 글로 표현하는 게 충전이 많이 된다. 잠시잠깐 휴식처를 찾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20%는 다 채워주지 못할 때에도 있다. 그럴 때에는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이 대신 채워주었다.

강원도 동해지역은 바로 그런 지역이었다. 고요함과 활기참이 반반씩 희석해 주는 공간이랄까,, 재작년 여름에 다녀온 동해보다 겨울에 갔던 동해의 마을이 멋져 보였다.

인천으로 이사 오고 나서 마음에 안정이 필요해서 떠났다. 겨울이다 보니 눈이 바닷물로 희석되어 얼음물처럼

투명하였다. 철석철석,  차가움과 뜨거움이랄까, 미온수의 온도처럼 따뜻함을 더 맞이하면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동해 KTX 기차는 마치 설국열차와 비슷하다. 창가에는  나뭇가지 위 눈송이가 붙어져 있는 장관이 떠오른다. 인천에서 정말 잘 지낼 수 있을까, 또 우울한 일들보다는 즐거운 일들이 더 많아야 될 텐데 등등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고민들이 많았다. 다행히 면접에 합격하고 첫 출근 이틀 후 간 여행지 었기에 여유로움은 있다.

1박 2일의 여행길에는 무거운 가방과 부담적인 마음은 없었다. 그저 내일과 모레의 기상예보만 걱정스러웠다.

특설이 내려서 부모님은 다음에 올라가 보라고 하였지만, 동해의 여행은 낭만이라고 외친 후 아무렇지 않게 집 밖에 나왔다.

동해역에 도착하자마자 막국수 집을 찾아갔다. 음식사진 파일이 망가져서 업로드는 안되지만 동해를 가면 꼭 먹어야 할 음식이라고 하였다. 혼자 시선 없이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뚜벅이 신세이었지만 눈보라를 맞으면서 음식점을 뚫고 갔다.  추워서 택시를 기다리면서 식당 안에 있었다. 

동해 도심 주변에 있는 서호 책방, 뜨거운 커피와 잠시 독서할 수 있는 공간에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확행이었다. 집에서 책을 읽으면 가끔 엄마의 잔심부름을 듣는다. 인터넷 쇼핑결제 로그인이 안되는데 해줄 수 있니,  간장 뚜껑 좀 열어줘, 등등.. 이런 잔소리와 심부름을 듣지 않고 오로지 책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휴식이었나 싶다. 돈 고민거리 없이 생활할 수 있음에 여유로움을 느끼며 여행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꿀 휴가 이 아닌가 싶다. 


요즘엔 긴 추석  연휴가 아니면 길게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다. 반차정도 낼 수는 있지만 일고 민 없이  먹고 멍 때린 다니 참 그야말로, 곰돌이 푸가 꿀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때로 돌아가고 싶다. 반차를 내어도 카카오톡 업무 방글 확인 없이는 편히 쉬지 못한다.  지금도 추석연휴 시작 전 해결되지 않는 미완성업무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실수한 업무도 여전히 커피 향처럼 진하게 생각하고 이러다 소진되어서 근무를 잘 못하면

어쩌지, 나의 실수가 엄청나게 큰 실수이고 나에게 큰 위험인 건가?


"인지편향"이라는 단어처럼 이런 고민 없이 살았던 때에는 언제인가 돌아보면 바로 이 사진 속 시간이었다.


나무 위의 설경은 너무 따스하게 보였다. 이제 겨우 큰 산을 넘은 것은 아니다. 이제 큰 산에 올라갈 때이다.

35살이 된 조급함, 이제 겨우 중반이 되어서야 사회복지사의 초호봉기, 인천시민이 된 지 일주일째,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완성은 아니지만 진행 중이어야지 안정된 길을 겪을 수 있구나 싶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도 이른 시기에 구독수에 집착하거나 수상에 대한 욕심도 없다. 


다문화사례관리사로 일하는 초행길에 10개월을 걸으니 비자와 외국인 국적문제, 사례회의와 실적관리 등등 알아가는 시점이다. 아직도 실수는 여전하고 신입은 아니지만 중고 신입도 아닌 어중간한 신입딱지

선임도 아니지만 부서에서는 많이 알았던 직원. 

남자친구는  무언가 승진이나 호봉에 쌓인 큰 급여를 받는 사회복지사보다 마음 편하게 다문화가정 사람들과 일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남자친구야 말로 동해의 설경처럼 여운이 느껴졌고  또 그 한마디에 또 울컥해 버렸다.


내년에는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수익을 벌어야 하는 게 맞지만 결국 또 지쳐 소진되어 버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여전히 동해기차를 타고 내리면 날씨는 악천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은 기차 탑승시간이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집에 돌아가는 날 눈이 폭풍처럼 쏟아 저서 집에 못 가면 어쩌나 하며 발을 동동 굴렀을 때, 역무원께서 나를 애처롭게 보시더니, 위의 시간 때 표를 끊어주었다. 정말 감사하고도 신이 준 기회가 아닌가 싶다.

다시 동해 여행지에 간다면 그때의 역무원 서비스를 받고 싶다.  



내년에는 따뜻한 봄의 동해바다를 보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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