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와 외교정책 #4
미국의 외교이념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제국주의와 양차 대전, 냉전기라는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탈냉전기의 도래로 말미암은 변화 역시 찾아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결이 격화되어 등장한 양극(bipolarity) 체제에 익숙해질 때쯤 정말 하루아침에 공산주의 진영이 붕괴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 체제가 공고해질 것이라며 박수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당황했고 또 두려워했다. 탈냉전이라는 폭풍우를 만난 미국이라는 배의 캡틴은 지금까지 다섯 명이 있었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바로 그들이다.
#1. 빌 클린턴 행정부(1993.01.-2001.01.)
빌 클린턴은 민주당 출신답게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펼쳤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 국제기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그 예이다. 공산주의 진영의 맹주였던 소련이 러시아로 간판을 바꿔달고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의 다양한 지원을 받기 시작한 만큼, 수월한 미국화(Americanization)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판이었다. 양극 체제는 긴장과 대립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첨예한 균형의 상징이기도 했다. 어떤 행위자도 양극 체제를 훼손하려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국제사회 곳곳에 산재한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작은 분쟁이 트리거(trigger)가 될까 두려워하며 문제들을 쉬쉬했다. 그러나 양극 체제가 허무하게 무너져 더 이상 눈치볼 필요가 없어지자 온갖 갈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은 평화와 폭력 사이에서 고민이 깊었으나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해결책인 폭력을 외면할 수 없었다. 1997년, 재선에 성공한 빌 클린턴이 이끄는 미국은 다자협력과 거리를 두고 마음이 통하는 동맹과의 국지적인 협력에 치중하는 일방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코소보와 신(新) 유고 연방 간에 벌어진 전쟁(Cosovo War)에 개입한 것은 미국의 외교 일방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구성하는 연방국이었던 신 유고 연방은 코소보 지역에서 세르비아인 경찰이 살해당하자 이를 빌미로 코소보를 침공해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자행했다. 그러자 미국은 NATO군을 활용해 무력을 행사하려 했고, 이를 승인해줄 것을 UN 안전보장이사회에 요구했다. 그러자 러시아와 중국은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NATO군을 움직여 세르비아 지역에 공습을 가했고 끝내 신 유고 연방을 격퇴했다. 그러나 미국은 박수를 받기는커녕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NATO군은 미국이 인권의 보호와 전쟁범죄의 종식을 개입의 목표로 내세운 것이 무색하게 군사시설은 물론 민간인 거주지와 피난소에도 공습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또 중국 대사관을 폭격하는 바람에 중국인 세 명과 수많은 난민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오폭이라고 해명하였으나 진상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NATO가 코소보 전쟁에 개입한 행위를 국제사회의 보호책임(Responsiblity to Protect, R2P)과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이 구현된 최초의 사례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신 유고 연방의 입장에서 NATO의 개입은 국제기구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적인 침략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신 유고 연방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신 유고 연방의 행위는 전쟁범죄인 반면 미국의 개입은 R2P와 인도주의적 개입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격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2. 조지 W. 부시 행정부(2001.01.-2009.01.)
미국 최초의 부자(父子) 대통령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는 조지 W. 부시는 공화당 출신답게 현실주의와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해 민주당과 차별화를 꾀했다. 국제적인 문제일지라도 미국의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 개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미국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면 반드시 개입하는 선별적 개입을 택했다.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해 다자협력보다 국지적인 협력을 중시했다. 물론 미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이고, 초강대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만큼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고립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합리적인 모습도 곧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미국인들은 테러리즘 단체에게 본토를 공격받았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통령을 향한 조롱과 멸시가 난무했다. 그러자 부시는 강경한 신보수주의자(neocon)들을 잔뜩 등용해 백악관을 가득 채웠다. 신보수주의는 대화와 협력, 교류를 강조하는 민주당의 외교이념과 모든 유형의 전쟁에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에 환멸을 느낀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념이다. 쉽게 말해 민주당이 해오던 것과 반대로만 하자는 것이다. 부시의 신보수주의 행정부는 곧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적성국가, 불량국가 및 테러리즘 단체를 핵무기로 위협했으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독단적이며 외국의 주권을 경시하는 미국의 태도에 국제사회는 분노했다. 미국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위협을 남발하는 악수를 두자 서유럽의 동맹국들마저 미국과 거리를 두었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부시는 가장 먼저 신보수주의를 멀리하고 실용적 보수주의(pragmatism) 노선을 채택했다. 공화당의 정체성인 보수주의 색채는 가져가면서도 민주당의 이념과 정책도 일부 수용하여 중도를 걷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침공을 통한 독재 정권의 축출, 북핵문제에 제재와 위협으로 일관하는 태도, 중국에 대한 봉쇄전략과 미사일 방어체계(MD)로 대표되는 무리한 군축으로 말미암은 온갖 사회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고립주의와 선별적 개입의 원칙을 부활시켰다. 노력 덕분인지 부시 행정부 2기는 확실히 1기보다 나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3. 버락 오바마 행정부(2009.01.-2017.01.)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 출신으로, 취임 초기부터 부시 지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국 사회를 좀먹는 많은 문제와 이로 인한 위상의 실추가 모두 전임자인 부시의 실책 때문이라고 평가한 뒤 리더십의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겠다는 것으로, 미국이 가진 악당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초강대국의 위치에 어울리는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고 경성권력뿐 아니라 연성권력의 확보에도 노력을 기울여 스마트 파워를 확보하려 했다.
부시 행정부 2기에서 중도 노선을 강조한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도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밑바탕에 깔고 현실주의를 첨가하는 방식의 중도 노선을 채택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미국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에 집중하되 힘을 보여줄 때는 단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11 테러 이후 모든 미국인의 공공의 적이 되어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1957-2011)을 특수부대를 투입해 사살한 것과 이란과의 비핵화 협상을 마무리해 북한에 미국이 주도하는 비핵화 모델의 위력을 선보인 것 등에서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미국이 가졌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다.
#4. 도널트 트럼프 행정부(2017.01.-2021.01.)
기업가 출신 대통령, 정계 입문과 동시에 당선된 대통령, 억만장자 대통령, 그리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퇴임 이후 기소된 대통령까지. 모두 도널드 트럼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어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와 격돌한 끝에 당선된 그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웠다. 해밀턴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초점을 맞춰 (미국의 입장에서) 불공정한 무역 상황을 바로잡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미국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거나 무역에서 미국보다 더 많은 이익을 보고 있다고 판단되면 공격했으며,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러시아나 북한과 같이 전통적인 적성국가와 협력하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또한 기후위기나 난민과 같은 범지구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파리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했고 녹색기후기금에 대한 공여금 지급을 중단했으며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난민을 박해했다. 이는 200여 년에 걸쳐 미국이 쌓아올린 금자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과 같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가 가진 불안함과 독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무책임하게 탈퇴한 것이다. TPP는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보조를 맞춰 출범할 예정이었던 대규모 경제협정으로, 전략적 요충지인 태평양에서 미국이 가지는 영향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돌연 TPP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그렇게 TPP와 관련한 논의가 표류하게 되자 일본이 미국의 역할을 이어받았고,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를 발효했다. (CPTPP를 TPP로 전환하는 조건으로 미국의 재가입을 제시했다.)
#4. 조 바이든 행정부(2021.01.-현재)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화려한 정치 경력을 자랑한다. 의원 경력이 매우 긴 것은 물론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으로 재직하며 행정부의 핵심 관료로 활약한 적도 있다. 그는 민주당 출신으로 과거 오바마가 부시의 흔적을 지웠듯 트럼프의 흔적을 지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가장 먼저 파리협약과 WHO에서 탈퇴한다는 결정을 번복했고, 당장 가입한 것은 아니지만 CPTPP와 TPP 구상에 어느 정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많은 실책과 코로나19의 확산 과정에서 미국이 보인 아쉬운 모습들로 인해 실추된 미국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범지구적인 문제에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인권이나 개인정보 보호와 같이 민감하지만 국제사회에 합의된 규범이 부재한 분야에서 먼저 규범을 제정해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또 우주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 본격적인 우주 경쟁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도 어느 정도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제정해 미국 기업을 보호하고 해외에 본사 또는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기업의 리쇼어링(reshoring)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외국 기업의 경우 미국 내에 생산공장을 둔 곳과 두지 않은 곳에 지급하는 보조금과 책정하는 상품 가격에 차등을 두어 사실상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제시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이는 쿼드(Quad)나 칩4 동맹 등으로 구현되어 국제정치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