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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이지 May 21. 2021

[암밍아웃]궁금한 걸 다 쏟아낸 날


4월 30일 최종 수술 예약 후 이전 글들에도 썼듯이 불안감이 굉장히 컸다. 매일 새벽에 깨면 잠을 못 이루는 일이 많았다. 혼자 눈물 흘리는 일도 많았고, 아무튼 나는 예전의 씩씩함을 잃고 살았다. 인터넷으로 접하던 수많은 정보들 때문에 두려움이 많아서 최근에는 갑상선 커뮤니티도 탈퇴했다. 계속 그것만 보고 걱정하기에는 이제는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주일 전 갑작스레 나는 수술 전 한 번의 진료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는 선생님이 혹시 잘못 보신 게 아닌지 다시 보니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망상 때문에 예약을 했지만, 진료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는 그동안 내가 궁금하다고 여겼던 것을 수술 전 한번 더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진료를 앞둔 그날 아침 초조함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가고, 불안함에 집중도 잘 안됐다. 최근에 어지러움증까지 생겨서 일을 하면서도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남편이 같이 가준다고 해서 우리는 진료실 앞에서 만났고, 나는 핸드폰에 궁금한 내용을 잔뜩 적어놓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호명되었고, 나는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뛰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남편이랑 기다리면서 나누었던 농담들 덕에 마음은 일부 진정되었다. (남편의 소중함 ㅎㅎ)


선생님에게 내가 오늘 찾아온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고, 선생님은 다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해줬다.


1) 측경부 전이가 심한지/ 목까지 임파선 제거를 해야 하는지/ 암세포 보이는 부분만 제거하면 안 되는 건지.

2)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기간이 흐른 건지/

3) 절개는 어디까지

4) 최근 어깨 라인 통증이 상관있는지

5) 요양병원 가서 도수치료나 뜸. 침 치료를 받아도 되는지 등

6) 폐 전이 뼈 전이 여부


나는 그간 인터넷을 보면서 가졌던 질문을 하나하나 쏟아냈다.

선생님은 긴장해서 얼어있는 나를 다독이면서 답을 해주셨다.


나는 소심하고 미약해서 너무 딱딱하고 사무적인 의사보다는 감정적인 교류가 되는 의사를 선호하는데,

강상욱 교수님은 내 기준에서는 감정적으로 의지가 되는 분이셨다.

아무리 명의라도 내게 안 맞는 의사가 있을 수 있을 테니, 나는 내가 선택한 이 교수님의 말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다.


나는 진료 전 최종 수술법으로 절개를 선택했는데, 선생님은 목부분에 12~14센티를 이야기하셨다. 

솔직히 절개를 선택하고 14센티는 잘 가리면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측경부 전이도 로봇수술 가능하고, 목 유착도 없고, 회복도 빠르다고 언급해주셨다.

암세포 제거 측면에서는 로봇이나 절개 모두 동일하며, 나 같은 경우는 회복 측면에서도 로봇이 더 좋을 거라 이야기해주셨는데, 여기서부터 다시 수술법에 대한 혼란이 시작됐다. 선생님은 주말까지 생각해 보라 하셨고, 수술 코디랑 다시 이야기 나눠 보라고 하셨다.


모든 질문을 다 쏟아내고, 또다시 수술법에 대한 퀘스천을 품고 나는 진료실을 나와야 했다. 

그 와중에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쓴 편지를 살짝 드리고 나왔다.

남편은 나중에 생각하면 이불 킥 감이라며 놀렸지만, (실제 드리고 나서 민망해서 황급히 나오긴 했다)

나는 내 생각을 선생님에게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민망함과 오그라듬을 감내하고 편지를 드렸다.

예쁜 여자가 목을 드러내고 바람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진 엽서였는데

선생님이 나 가는 길에 "직접 그리신 거예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아니요 샀어요 ㅎㅎ"라고 황급히 문을 나섰다.


그렇게 진료를 끝내고 나는 수술 코디님을 무작정 기다리고,

절개법에서 로봇수술로 다시 수술법을 바꿨다.

측경부는 겨드랑이에서 접근하기 용이하고 로봇으로의 암세포 제거도 쉽고

회복도 절개 14센티보다는 더 빠를 거라고 괜찮다고 해주었다.

로봇수술이 그들의 고과에 반영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로봇 쪽으로 더 마음이 기우는 것도 사실이다.


실은 내가 수술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가,

내 목에 그어진 14센티 이상의 수술 흉터를 보고 엄마가 마음 아파할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암세포를 모조리 없애버리는 것도 내게는 중요하지만, 내 상처로 인해 내 소중한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기도 했다.


아무튼 절개에서 로봇, 그리고 절개, 그리고 다시 로봇 

몇 번이나 고민했던 수술법을 결정하고 나니, 모든 게 홀가분해졌다.


남편과 병원을 나오는 길의 발걸음을 전보다 가벼워졌고, 나 스스로도 이제 내 몸속의 암세포를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잘 싸워서 저것들을 다 없애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피곤했지만 기분은 전보다 상쾌해졌고, 수술에 임하는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자 이제 수술 5일 전이다.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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