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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r 07. 2024

이런, 내게 또 명함이 생기다니

교수생활 1주 차 (아우스빌둥 특별반)

밤잠을 설쳤다. 과연 학생들에게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물론 지난 몇 달 동안 한 학기 동안 가르쳐야 할 과목에 대해 교재도 만들고 강의안도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가슴이 설렌다. 삼십 년 동안 자동차 정비현장에서 고객을 상대로 회사생활을 했던 경험을 이제는 자동차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새 학기를 맞아 월요일부터 서울에서 차를 몰고 충남 보령에 위치한 자동차대학에 도착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가 삼월의 햇살을 무색하게 한다. 첫 부임이기도 하고 다른 교수들의 강의도 청강해 볼 겸 해서 며칠 일찍 학교로 내려와서 학교 뒤편에 있는 사설 원룸에 짐을 풀었다. 물론 강의가 있는 평일에만 묵을 숙소이지만 집을 떠나서 생활해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집을 떠나서 생활해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면 중년의 퇴직남이 느끼는 충격 중에 하나는 바로 명함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생활 할 때는  다니고 있는 회사가 크던, 작든 간에 모두가 회사 명함을 서로에게 건넨다. 회사의 사이즈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사람을 대변하곤 한다. 그만큼 명함의 힘이 큰 것처럼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퇴직 후에 어떤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무척 뻘쭘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명함을 건네지만 퇴직남은 전달할 명함이 없어 갑자기 소심해진다.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여하는 횟수도 자연히 줄어든다. 은퇴전문가의 책을 보면 이런 '명함의 힘' 때문에 스스로 명함을 만들어 다니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나도 퇴직 전에 회사명함 외에 지인이 경영하는 교육컨설팅 회사의 명함을 만들어 둔 것이 있어서 퇴직 후에 모임이 생기면 그 명함을 명함지갑 속에 넣고 모임에 참석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누군가에 그 명함을 줘 본 적은 없다. 대학 연구실에 도착하니 책상 위에  '초빙교수' 명함이 떡하니 놓여있다. 퇴직하고 1년 만에 생긴 명함이다.


퇴직하고 1년 만에 생긴 명함이다.




'내가 교수로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일이다'라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018, 신형철>에서 저자는 말한다.  그 뜻은 그만큼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더 많이 공부해서 정확하게,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를 거치면서 학생이었던 때를 떠올리면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열심히 듣고 메모하고 나중에 다시 공부했던 기억뿐이다.


내가 수업시간에 생각하고 말하고 발표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맡은 학생들은 독일상공회의소와 협업해서 운영하는 위탁반으로  교수법에서 '참여형 교육'을 특별히 강조한다.  설렘과 떨리는 마음으로 맞이한 첫 번째 수업시간에 준비해 간 시나리오대로 학생들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말할 수 있도록 했다. 다행히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어 너무 고마웠다.  


점심식사 후에 피곤하고 졸린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도 졸지 않고 활기차게 첫 수업을 마쳤다. 수업 후에 뻣뻣했던 몸이 조금은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강의 준비하는 동안 나름 열심히 했지만 수업을 하고 나니 더 부족한 부분이 느껴진다. 나도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성장을 하겠지만, 나도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도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사진]  (좌) 자동차 정비명세서 작성하고 발표하기  (우) 시간의 중요성을 학습하기 위한 시간 속담 게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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