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로서 연인과 세월이 자꾸 멀어져 가는 것을 안쓰러워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등산 후반부에 들어서자, 그 가사말이 생각나면서 바로 앞에 가던 회원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웬만하면 등산하는 중에 남들에게 뒤처지지를 않는데, 이상하게도 오른쪽 허벅지 근육에서 주기적으로 신호를 보내온다. "어이~ 김 선생, 조금만 쉬었다 가지요!"라고 말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럴 경우 둘 중에 하나다. 다른 회원들의 등력(등산능력)이 월등하거나, 아니면 내 능력이 바닥인 경우이다.
"어이~ 김 선생, 조금만 쉬었다 가지요!"
물론 두 가지 모두 사실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완등한 지 5년도 안 됐는데 체력이 이렇게 떨어진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백대명산 이후에 동네산이나 가볍게 가끔씩 다녔지, 10km 이상되는 등산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학창 시절에는 학기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사회생활 30년이 지나다 보니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점점 좁혀진다. 하지만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는 확실히 통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고 처음 가입한 동호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마냥 편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어찌 되었건 등산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니기 위해 네이버 밴드에서 등산 동호회를 검색했다. 다행히 서울인근을 주로 다니고, 회원수 800명에 3년 된 산악회가 눈에 띄었다.
바로 가입하고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공지가 있어서 내심 만족스러워하면서 첫 산행을 고민하던 중에 '사패산'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는 '불수사도북' 종주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못 가본 산이 바로 사패산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갖고 마주한 첫 만남...... 첫 산행을 편하게 해 주려는 배려 덕분인지 이미 알고 지낸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들머리인 '호암사'를 올랐다.
편안한 마음으로 들머리인 '호암사'를 올랐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가수 임영웅의 목소리가 비닐셀터 안을 울려 퍼진다. 원곡은 가수 김광석이 2006년에 발매한 곡으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다. 아직 육십 세를 찍지는 않았지만 거의 근접하다 보니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팍팍 박힌다.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군데군데 희끗희끗 보이는 눈이 보이는 초겨울의 도봉산 어느 능선 주위의 풍광은 노랫말을 더욱 맛깔나게 만든다. 간편식으로 준비한 점심식사가 등산 매트 위에 하나둘씩 놓인다. 다행히 양지바른 능선 꼭대기에 자리를 잡아 햇살은 내리쬐면서도 쉘터 밖은 찬겨울바람이 생생 불어온다.
엉성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포근한 비닐쉘터 안에 있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김밥에 손이 간다. 후식으로 빵, 과일에 커피까지 먹고 마지막 입가심으로 껌까지 짝짝 씹으면서 여유를 부려본다. 한숨 푹 자고 도봉산의 정기를 받고 싶기는 하지만 내려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아서 후다닥 쉘터를 걷고 '여성봉'을 향해서 발길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