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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명동밥집

남해 바닷속 향기

명동밥집(조랭이 미역국)

by 소채

"미역국을 드시고, 저 멀리 남해 바닷속 향기를 느껴보세요."라는 말에 봉사자는 약간 미덥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바로 화답했다. "정말 그렇게 미역국이 맛있어요? 그럼 한 그릇 먹어 봐야겠네요."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그 맛이 정말 바다를 느끼게 할 정도였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여하튼 내 입맛에는 맞았다.


보통은 국을 끓이면 여러 가지 야채와 주재료가 섞여서 제3의 맛이 생겨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냥 주재료인 미역만을 펄펄 끓이고 간을 맞췄다.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마늘을 넣을지 말지를 고민하지만, 오늘 미역국은 마늘도 넣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짭조름한 미역,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남해 바닷속 향기를
느껴보세요.



미끈미끈한 미역국이 소년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매년 생일이 되면 어김없이 상에 오른다. 어린 시절 미역은 피가 맑아지는 음식이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먹다 보니 자라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음식이 되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다 보니 이제는 가끔씩 미역국이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거기다가 이젠 미역국을 먹고 나면 진짜로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가스라이팅 효과'인지, 아님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먹고 나면 온몸에 피가 잘 돌아 활력이 생긴다. 사실 미역국은 대한민국 여성이 출산을 하면 산후조리를 위해 먹는 음식이다 보니 생일 당사자가 먹기보다는 아이를 낳은 엄마가 먹은 것이 맞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생일날, 당사자가 미역국을 먹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온 국민이 먹는 대표음식이 되었다.


온 국민이 먹는 대표음식이 되었다.




며칠 전에 미역을 커다란 바트(용기)에 담아 불리고 가위로 잘라서 대형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보관해 둔 불린 미역은 3개의 대형 국통에 바로 직행하기 위해 세 군데로 나누어 담아 화구가 있는 야외천막 식당으로 옮긴다. 물을 펄펄 끓이고, 국통에 미역을 통째로 쏟아붓고 육수 가루를 섞고 다시 한참을 끓인다.


오늘 미역국 주재료는 소고기, 홍합도 아니고 조랭이떡이다. 조랭이 떡은 개성지방의 전통 떡이며 맵쌀을 재료로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든 떡으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조롱박 같다고 하여 붇여졌다고 한다. 아침에 시범 삼아 떡을 끓여보니 쌀떡이다 보니 금방 진득진득해진다.


하루 종일 국속에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별도로 조리실에서 끓여 중간중간 배식대로 날라 주기로 했다. 펄펄 끓는 미역국에 국간장, 까나리액,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을 뿌려준다. 맛을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계속 남해를 떠올려 본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남해를 떠올려 본다.
[사진] 오늘의 메뉴(소고기 덮밥, 해물파전, 조랭이 미역국,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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