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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un 17. 2023

25년 만에 결혼하길 잘했다고 느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고, 나는 남편을 얻고

매일아침, 나의 닫혀있는 방문을 삐집고 들어와 기어이 내 귓구녕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는 암막커튼 사이로 비치는 빛과 어우러져 밤새 안녕했냐는 메시지로 내가 살아있음을 알린다. 

여보, 일어나~ 


주말 아침이면 나를 깨우는 남편의 소리가 경쾌하다. 아침을 준비하는 주방의 부산스러운 소리 아우라 안에 남편의 뒷모습이 보이면, 그 경쾌함과는 별개로 여유로운 시간은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인지 무엇인지 모를 무언가 때문에 이 사람과 결혼한 거 같은데, 희미한 그 기억 저편의 그것을 나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런 거 생각하기 싫었다.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남편은 분명 나와 어떻게 결혼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의 그런 논리 때문에 괴로운 경험이 많았다.


‘이 사람은 나를 괴롭히려고 결혼했나’

‘이 사람은 내 기분을 망치려고 결혼했나’


이런 생각을 떨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대화를 길게 하지 않거나, 비타민과 루테인을 두 알씩 꺼내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25년을 잘 견뎌냈다. 곰이 사람이 되는 100일도 아닌, 강산이 변하는 10년도 아닌, 만두만 먹은 올드보이의 15년도 아닌,  25년이다. 


25년을 감내한 어느 날, 어떤 느낌이 들었다. 곰이 사람이 되는 느낌이며, 강산이 변하는 느낌이며, 올드보이가 풀려나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내가 오카리나를 만지면서 답답해하고 있을 때 던진 남편이 한마디로 왔다. 


지난 7년간 오카리나를 연주하면서 완벽하게 부르고 싶었던 곡이 있다. 한태주의 “물놀이”라는 경쾌하고 빠른 곡이다. 악보를 보지 않고도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일 정도로 많이 연습한 곡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연주한 적은 없다.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오카리나를 손에서 놓치지 않기 위한 손가락의 위치와 움직임이 문제였다.  


그건 과학이야.
손가락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더 빨라.
낙하운동할 때는 중력이 있잖아.
옆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위아래 움직임이 중력가속도로 빨리 내려갈 수 있는 거지.
왼쪽오른쪽 움직이는 것은 손가락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니까 힘들이지 않고 빨리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으려면 옆이 아닌 위로 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남편의 말에 빠져들었고, 내 눈동자는 바들바들 떨렸다.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내 모습이 신기했던지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힘 빼기의 기술이지, 운동이든, 악기든, 공부든지 간에 힘을 주고 하면 오래 못해.
 힘을 주면 정확하고 확실하게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지속하는 것이 어렵거든.
그러니 고수들은 힘을 빼면서도, 길고, 정확하게 하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거야.
손가락에 너무 힘을 주면 그 한음은 정확하겠지만, 그 곡이 끝날 때까지 힘을 주고 연주하기는 힘든 거지

이제 나는 눈동자뿐만 아니라 고개도 끄덕였다. 끄덕임의 박자에 힘을 얻어 남편은 갑자기 손등을 보여주며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근육을 보여주었다. 


이거 봐, 손가락을 들어 올리면 손등에 연결된 근육이 움직여.
잘 움직이지 않는 약지도 운동을 시켜주면 정확한 위치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을 거야.
떨어뜨리려면 일단 위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손가락이 위로 움직일 때 손등과 팔등의 근육이 움직이는 거 보이지? 한번 만져봐

그가 약지를 움직일 때 나는 그의 손등과 팔등을 만져 보았다. 남편의 팔등에서 까딱까딱 움직이는 이름 모를 그 근육을 느끼며 생각했다.


남편의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성격 때문에 괴로웠지만 오늘은 나의 흐트러진 생각을 정리해 주는구나. 오늘은 남편을 다시 보게 된 1일이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도해서  아들을 얻었다는데. 나는 25년을 견뎌 남편을 얻었다.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은 25년 전 아브라함이 아닐 테고, 남편을 얻은 나도 25년 전의 내가 아니다. 그렇게, 25년 만에 결혼하길 잘했다고 느꼈다.


지난 25년 동안 나를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가 늙어버린 걸까. 아니면, 남편은 그의 방식대로 그동안 계속 나를 공감해 주었던 걸까. 또다시 25년이 지나면 또 우리는 어떻게 바뀔까. 오래오래 살고 볼일이다. 이 남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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