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토끼의 해 2023년이 되었다. 깡충 뛰는 토끼처럼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넘어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꿈틀거림일까. 올해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하루하루 설렌다. 그래도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볼 시간은 필요하다. 연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는 브런치 작업을 하느라 2022년 마무리 쎄레모니가 없어서 아쉬웠다. 오늘, 그 아쉬움을 위한 시간을 보내라고 실장님이 나를 일찍 놓아 주셨다. 꺄악~이런 날개 없는 천사 실장님이 계시다니.
각은 못 잡지만 슬쩍 2022년을 돌아본다. 10개의 어떤 일이 있었다. 사실 억지로 10개를 만들려고 끄적이다 보니 10개가 되었다. 좋은 일이니, 경사다~ 경사 났네, 10개의 경사~
오카리나에 대해 쓴 글을 정리하다가 2022년의 목표라는 글을 보았다. 그 목표에 '브런치 작가되기'가 있었다.
5월쯤에 브런치 작가는 되었지만, 명상과 달리기는 포기했다. 이룬 것도 있고 하지 못한 것도 있는 균형? 있는 2022년이다.
1월에서 4월까지 10주에 걸쳐 노션을 공부했다. 이 노션이라는 것은 혁명이다. 이건 써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내 인생에 3가지 큰 변화가 있는데 첫째는 시를 사랑하기 전, 후 둘째는 오카리나를 닮기 전 후, 셋째는 노션 잘 쓰기 전 후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열심히 공부한 모범생이라고 나의 노션스승인 이석현 작가님이 책에 내 사진도 실어 주셨다.
'도대체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이런 건 아예 모르고 사는 게 더 편했을 텐데'라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지면서 해온 철학 공부, 아직도 알쏭달쏭한 이 철학의 바다에 겨우 발가락 끝의 발톱만 담가보았다. 2023년에도 철학공부는 계속된다. 공부는 포천중앙도서과 인터넷 모임에서 했다. 사실 철학 공부가 좋았다기보다는, 철학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작업이 즐거웠다. 아니 거짓말이다. 좋지 않았다. 괴로웠다. 슬프고 힘들고 지쳤다. 그러나 철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진다. 원래 인생은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작은 행복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는 게 낙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꼭 물어본다.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대답하면 말하는 사람도 쑥스럽고 물어본 사람도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좋아하고, 사랑하는 작가가 생겼다. 하루키상, 하루키상가 스키다~이석현 작가님의 하루키 연대기 독서모임에서 하루키의 처녀작부터 최근까지의 12개 작품을 읽었다.
공자님 같은 공심님의 철탐모임에서 '우리 이제 철 좀 듭시다'라는 공동 매거진을 발행했다. 그리고 나도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노션의 공동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발행한다. 약속된 날짜가 있고 분량이 있다. 공동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것. 그것은 '약속하고, 결단을 훈련이라는 것' 임을 배웠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하고 글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philosp
지역 도서관 동아리에서 만난 그녀들. 그들은 나에게 글 열심히 쓰라고 연필과 지우개를 예쁜 봉투에 포장해서주고, 당 떨어지지 않게 초콜릿을 주고, 글 쓰다가 잠깐 기분 전환하라고 파티용 머리띠를 달아주고, 글 열심히 쓰다가 몸상하지 말라고 홍삼을 선물해 준다. 글 쓰다가 머리 좀 식히라고 3시간 동안 꼼짝 못 하게 영화표를 끊어주고, 팝콘과 음료를 쏘고, 컴퓨터만 보지 말고 별도 보자며, 휴양림 캠핑장에 데려가서 노래를 불러준다.
책 좋아하는 나를 위해 프랑스산 벨벳 소재의 2천1백2십4페이지에 65만 5천4백7십8개의 단어를 품은 레미제라블 양장본을 선물해 주고, 술 좋아하는 나를 위해 바오밥나무 숙성술을 선물하고, 나를 위해 대신 운전해 준다.
유럽 근처에도 못 가본 나를 위해 카프카의 변신을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주고, 르네상스 화풍과 바로코 화풍의 차이를 알려주고, 프랑스식 식당에 데려가서 뵈프 부르기뇽을 먹여준다.
그 감동의 물결 중에 가장 뜨거운 물결은 에티오피아에서 우정의 표시로 하는 커피 세레모니를 그 가느다란 손으로 정성 들여 보여준 것이다. 올해 그녀들을 만난 건 행운이다.
https://brunch.co.kr/@youyeons/24
2021년부터 쓴 감정일기는 흙먼지처럼 날아가지 않았다. 저 아름다운 별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감정일기 모임의 주인인 전문심리상담사 캘리선생님과 전기가 통해서 우리 두 여자의 공동매거진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11월 24일 생일 선물처럼 이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그때부터 선생님과 공동매거진을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행복하게 생산한 매거진의 첫 콘텐츠를 2023년 1월에 발행했다.
https://brunch.co.kr/magazine/counselingoffic
오카리나를 사랑한 지 6년, 드디어 철원 땅에서 오카리나의 숨결을 느끼는 사람들이 뭉쳤다. 우리들의 삶은 다르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코로나로 인해 백신을 맞아도 치유되지 않던 상처들이 오카리나 음악백신으로 치유되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철원두루미 오카리나 앙상블이 탄생한 것이다. 1년 동안 다양한 행사에서 공연을 했고, 소정의 공연 행사료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인정받아 2023년 1월에는 롯데콘서트홀의 신년음악회에 찬초출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https://cafe.daum.net/ocarinaensemble/JxzE/27
2022년 3월부터 가입한 지역 도서관의 인문학 동아리에서 인문학이란 건 아마도 이런 걸 거다라는 걸 살짝 알게 되었다. 인간이 어떤 무늬인가, 인간다움이란 뭔가, 인간은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알게 된 것이다. '인문학이 필요한 날'이란 모임인데, 이름처럼 나는 매일 나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날임을 느낀다. 우리 모임의 특징은 로테이션으로 발표를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이 발표가 두려웠으나, 이제는 즐긴다.
가을에 합스부르크 중에서 스페인을 발표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기타를 빌려주며, 기타 선생님도 소개해주었다. 기타를 배워보라고 했다. 언젠가 그리스로마신화의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들고, 사이렌의 노래를 물리쳤다던 이야기를 듣고 현악기에 대한 환상이 생겼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잡았다. 그러다가 기타를 돌려주게 되고, 기타 선생님도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되었다. 역시 운명은 내가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기타를 새로 사고, 새로운 기타 선생님을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코드를 잡고 스케일을 익히고 있다. 2023년에는 뭔가 한 곡조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취미가 생겼다. 역시 이것도 언젠가부터 책을 통해 동경한 것이다. 철학자 니체가 제대로 된 모든 고등 교육에는 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고 나서부터다.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춤을 추지 않고 지나간 하루는 그 하루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고, 웃음이 동반되지 않은 진리는 진짜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멋진 말에 어찌 춤을 배우지 않을 수 있나. 그런데 왜 한국무용이냐.
6.25 참전용사 위령제에서 위혼무를 보게 되었다. 혼을 위로하는 춤, 그 몸짓에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고 그 손짓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간다. 그 위혼무를 춘 그녀의 몸의 언어가 내 마음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렇게 시작된 몸짓에 대한 갈망을 해소할 을 알아보다가, 8월부터 기본 동작을 익히고 있다. 내년에는 꽃봉오리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안타깝지만 포기한 것들이 있다. 연극, 필사, 명상, 달리기이다. 마음에 고이 담았다가 나중에 한 번씩 펼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