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든 길에서도 우린 행복을 찾을 수 있다.
2019년 가을, 꿈만 같았던 결혼식을 마치고 남산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전 날, 큰일을 치렀고 둘이 축하한답시고 부어라 마셔라 해서 피곤할 법도 한데 유럽 신혼여행을 앞두고 우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있었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손님, 붙어 있는 좌석이 없습니다."
네? 뭐라고요??? 어제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파리까지 따로 앉아 가야 한다니..? 자그마치 13시간이었다. 알고 보니 그 전 날, 남편에게 모바일 체크인 알림이 왔었는데 결혼식 때문에 정신이 없어 체크인을 못했던 것. 우리의 여행이 신혼여행임을 알고는 내 또래로 보이는 항공사 직원도 매우 안타까워하며 이리저리 대안이 없는지 알아봐 주었다. 유일한 방법은 인당 17만 원을 더 내고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면 그나마 옆, 옆 자리(그것마저도 복도를 사이에 둔)인데 그 가운데 분께 바꿔달라고 부탁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그분이 바꿔주지 않으시면 달리 방법은 없다고. 솔직히 짜증이 살짝 올라왔다. 순간 또 '아, 오빠.. 왜 안 했어...'를 할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이건 무려 우리의 단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니까! 괜한 의미 없는 말로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미안해하는 오빠의 모습에 짜증은 금세 누그러졌다. 그렇다면 확실하지 않은 것에 무려 34만 원을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할 것인가, 고민하던 우리는 '그래! 신혼여행이니 투자하자!'하고 업그레이드를 하였다.
'제발.. 제발..' 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해 우리의 가운데에 앉으신 분께 여쭤 보았지만 그분은 자리 바꾸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그렇게 우리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옆, 옆 좌석에 떨어져 앉아 13시간을 따로 또 함께 저 먼 나라로 날아가야 했다. '하나, 둘, 셋' 하고 동시에 같은 영화를 틀어서 보고 입모양으로 ‘밥 뭐 먹을 거야? 한식? 양식?’ 묻고 맥주를 시켜 허공에 대고 건배를 해가며 13시간을 보낸 뒤, 드디어 파리 도착했다. 얼마나 애틋하고 반갑던지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었다. 눈물이 찔끔 나왔을 정도. 세상에 유럽으로 가는 신혼여행을 따로 가는 부부가 또 있을까? 남편과 내게는 노부부가 되어서도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유니크한 신혼여행의 추억으로 남았다.
과연 이런 일이 현재 일어난다면 어떨까? 내가 저 때처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할 수 있을까? 아, 자신이 없다. 나는 "오빠 때문에 이게 뭐야!"라는 말을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이 상황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건 알지만 화가 날 것이다. 누구의 탓을 해도 소용없는 상황 앞에서 말이다. 결혼 생활에는 이런 예상치 못한 문제나 난관이 생기는 순간들이 많다. 그 사실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는 여기서 온다. '너 때문에'
탓해봤자 이미 벌어진 일은 어찌할 수가 없는데 굳이 상대를 까내리고 내겐 잘못이 없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 그 알량한 심리. 그런 심리를 표출하게 되면 결과는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못한 사람도 가뜩이나 속상한데 상대방이 저렇게 말하니 기분이 상한다. 말을 뱉은 사람은 기분이 좋을까?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질까? 전혀. 그러니 더욱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를 굳이 흠잡아 꼬집어 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 상대를 다독여주는 것이 진정한 대인배고 어른이겠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로 무르익지 못해 사실 노력한다. 신혼여행 때만큼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더라도 '당신 때문에'만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것만으로도 사소한 다툼이나 감정 낭비가 크게 줄어든다.
신혼여행 에피소드를 되돌아보면 13시간을 떨어져 가서, 34만원을 버려서 결국 우리는 불행해졌나? 우린 즐거운 에피소드를 얻었고 극강의 애틋함을 경험했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지만 우리가 문제임을 잊었더니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에피소드를 통해 내가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었지 않나! (물론 깨달음보다 실천이 10배는 더 어렵지만)
그렇다면 실전 적용해보도록 하자. 배우자와 같은 길을 나란히 가다가 두 갈래 길이 나왔을 때, 나는 오른쪽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상대는 왼쪽 길로 가자고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해 왼쪽 길로 가다 보니 틀린 길인 걸 알았을 때, 올바른 반응을 고르시오.
1)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오른쪽이라고 했지.
2) 왼쪽이 맞다며! 왼쪽이 맞다며!!
3) 괜찮아, 다시 돌아가 보자.
4) 아~주 똑똑하시네요.
정답에 이것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듯싶다.
"산책도 하고 좋지, 뭐."
잘못 든 길에서도 '네 탓'만 없다면 우린 행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