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없이 한 첫 출산
“여보, 나 팀장님이 중국 해외연수 추천해주시겠다는데 어떻게 할까?”
“해외연수? 그럼 나랑 아기는 어떻게 하고?”
“….”
“가고 싶어?”
고개를 들어 천정을 향한 남편 시선은 바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당신이 가라고 하면 가고 아니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긴 한데.”
“가요. 해외연수.”
첫 임신을 확인한 지 채 열흘 정도는 지났을까? 임신에 대한 기쁨은 잠시, 혼란스러움이 더 클 때였다. 결혼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남편이 근무하는 소도시로 이사 왔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이곳에서 나는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 출산과 육아가 물론 힘들겠지만 남편과 함께 일거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해외연수라니! 아무렇지 않은 듯 다녀오라고는 했지만, 마음에 큰 파도가 일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어렵게 대학원 시험을 봐서 겨우 남편 따라왔는데 가족도, 이웃도 없는 이곳에 혼자 남겨진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출산도 남편 없이 해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육아도 혼자 해야 한다. 마음에 큰 돌덩어리를 하나 얹은 채 닥치지도 않은 일에 고민하며 나도 모르게 ‘어떡하지’ 혼잣말만 내뱉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 잡았다.
“당신이 정말 가고 싶다면 가요.”
“정말 고마워.”
남편은 혼자 남겨질 나와 아기를 걱정하면서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국으로 가는 걸 택했다.
혼자 남았다.
결심하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워야했다. 아직 두 학기 반이 남은 대학원을 다녀야 했기에 출산하면 어머님께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하지만 갑자기 가족에게 힘든 상황이 생겼다. 아버님께서 혈액암 진단을 받으셨다. 온 가족은 투병 생활에 매달렸다.
남편이 연수를 떠난 생활에 적응해갈 때쯤 출산은 현실로 다가왔다. 중국에 있는 남편은 출산 휴가를 얻어 비행기 탑승 전까지 연신 전화를 해댔다.
“나 공항이야. 조금만 기다려. 힘내! 할 수 있어!”
남편 대신해서 와 계신 친정엄마에게 내가 진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죄송했다. ‘이대로 진통을 견디지 못하고 애도 못 낳고 나는 그냥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아기가 태어났다. 가족 분만실에서 휴식 후 병실로 올라왔을 때 남편이 뒤늦게 나타났다. 숟가락을 들 힘도 없는 와중에 남편이 먹여주는 미역국을 한 숟가락 입에 넣는 순간 끝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은 출산 때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만회하려는 듯 5일 동안 최선을 다해 몸조리를 도왔다. 시간은 냉정했다. 내가 수개월을 기다린 것도 혼자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봐주지 않았다. 5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중국으로 떠나는 날, 남편을 붙잡고 턱밑까지 차오르던 말 한마디를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안 가면 안 돼?”
남편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엘리베이터는 정확한 속도로 우리를 1층에 데려다주었다. 야속한 엘리베이터는 문을 활짝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반쯤 나갈 때 남편은 어정쩡하게 내 손에서 벗어났다.
“늦겠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가야 해.”
잘 지내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남편을 보내고 조리원으로 돌아오니 텅 빈 방에 이젠 나 혼자였다. 이를 악물고 버텼던 눈물이 터졌다. 첫 출산, 이제부터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 아기와 단둘이 둘이 남겨진 것이 두렵고 서러웠다. 앞으로 어떻게 혼자 길러야 할지도 막막했다. 한참을 울다가 ‘엄마의 마음이 슬프면 모유의 질도 달라진다.’라는 말이 떠올라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이제 정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남편도 없는 나의 독립군 육아가 시작되었다.
마음은 무너졌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아이를 기를 용기가 필요했다. 기댈 것은 내 자신 뿐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막막한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 한걸음 차분히 내딛을 자존감이 필요했다.
초보 엄마의 서툰 육아
“신생아실에 아기 보러 가고 싶어서 아침이 기다려지더라.”
한 달 먼저 출산한 친구는 아기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그만큼의 모성애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남편 없이 혼자 육아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 탓인지 아이에 대한 사랑보다 엄마로서의 의무가 더 크게 다가왔다.
조리원을 나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응가를 했다.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초보 엄마와 조카의 응가를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한 처녀 이모의 조합. 결국,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모든 것이 서툰 초보 엄마였기에 아이의 울음 없이는 지나가는 일이 많지 않았다. 젖을 먹을 때는 사출되는 젖 때문에 울고, 졸릴 때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울었다. 아이의 울음을 조절할 수 없으니 애가 탔다.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냥 아이의 울음에 의무방어전을 펼칠 뿐이었다.
“무슨 신생아가 이렇게 잠이 없어. 신생아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야지 쑥쑥 크지. 쬐금만 소리만 났다 하면 깨네.”
산후도우미분의 뼈 있는 말씀에 내 아이만 유별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하나 더 얹는다.
서툰 육아, 회복도 덜 된 몸으로 24시간을 아이와 함께해야 한다는 긴장감,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이 랜덤으로 우는 아이에 대응하고 달래야 해서였을까?
‘모성애는 본능이 아닌가? 나에게는 모성애가 없나?’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오늘 밤도 ‘제발 잠 좀 자라. 잠 좀 자.’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영혼 없이 밤잠을 재우고 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친정엄마가 나의 마음을 읽으셨나 보다.
“이렇게 예쁜 게 어디서 왔을꼬? 우리한테 와주어서 고마워.”
친정엄마는 아이를 안으며 천사 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 한 마디에 재우느라 지친 나의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이도 그 한 마디가 편안했는지 할머니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친정엄마의 한 마디로 나의 모성애는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의무방어전만 치르던 초보 엄마가 모성애가 무엇인지 얼핏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다시 아이를 돌아보니 정말 예쁜 아이가 나에게 와 있었다. 혼자인 나의 육아에 긍정적 바람을 넣어줄 큰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