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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석 Jul 26. 2021

내 선택의 자취를 따라서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이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도 내 인생에 수많은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큰 선택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의 선택이다. 내가 진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먼저,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가 있었다. 나는 학교 공부를 꽤 잘했던 편이었기에 선생님이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특목고는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과학영재나 언어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딱히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특목고 준비반 같은 학원 선전문구를 보면 숨이 턱 막혔다. 내가 특목고를 가려면 저런 곳에 가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학원다운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었다. 그냥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특목고를 졸업한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됐는데, 이야기를 해보면 의외로 별 관심이 없는데 특목고에 간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과학이나 외국어에 특별한 뜻은 없었지만 그냥 부모님이 시키니까 준비했고, 특목고를 졸업하니 알게 모르게 삶에서 이득을 보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어쨌든, 나는 특목고 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두 번째는 특성화고등학교였다. 예전에는 실업계라고 부르던 고등학교다. 디자인고, 마이스터고 등 특정 분야를 집중해서 교육하는 고등학교였다. 나는 학교 공부 외에 별다르게 관심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특성화고에는 가고 싶은 학교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때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가령, 같은 반에 파티셰가 될 거라며 제과제빵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오는 김삼순이 멋있어 보여서 파티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원래 학업에 별 관심이 없던 친구였는데, 목표를 정한 뒤로는 진학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며 공부했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의 선택에 몰입하는 열정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 친구의 부모님은 별로 탐탁지 않아하셨다. 특성화고를 진학한다는 건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공부 잘하는 아이'에서 멀어진다는 걸 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님 세대가 가지고 있는 '실업계고' 이미지도 한 몫했을지 모른다. 또, 그 친구의 동기부여가 드라마로부터 왔다는 것도 안 좋아하셨다. 드라마에서 멋있게 포장된 직업의 모습에 속고 있는 거라며,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보라고 하셨다고 했다. 글쎄. 만약에 그 친구가 드라마 <하얀 거탑>에 빠져서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면, 그래도 친구의 부모님이 말렸을까 싶다.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 안나는 친구지만, 어디선가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흔히 인문계라고 부르는 일반고등학교다. 나는 일반고에 진학했다. 잘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기에 그냥 대부분의 학생이 가는 길을 따라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또 한 번의 선택이 필요했다. 이과와 문과의 갈림길이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다만, '내 인생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았다. 국영수로 대표되는 교과과목 중에 내가 잘하는 과목을 찾았다. 나는 국어, 수학 성적이 좋았고, 영어 성적은 안 좋았다. 특히, 국어는 따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늘 상위권 성적을 받았다. 남들이 국어 공부할 시간에 수학을 공부해서인지 수학 성적도 좋았다. 나는 문과와 이과를 진학했을 경우 (철저히 대학입시 관점에서) 내 성적의 위치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봤다. 보통, 이과 학생들이 문과 학생에 비해서 국어공부를 어려워하기에, 내가 이과에 진학했을 때 국어 성적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1차원적으로 고민한 것 같다. 국영수 과목이 아니라 내가 어떤 전공을 공부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인데, 눈앞에 닥친 현실만 바라봤다. 어쩌면 입시전쟁이 내 시야를 가둬두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선택을 했다.


수능을 보고, 다시 선택의 기로가 찾아왔다.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대학과 전공을 정해야 한단다. 입시를 하면 대학 배치표라는 걸 자주 보게 된다. 고3 우리반 교실 뒤편에는 이 배치표가 마치 대자보처럼 크게 붙어있었다. 그래서 보기 싫어도 매일 봤다. 배치표에는 가장 위에 서울대학교 의예과를 시작으로 점수별로 대학교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번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그 배치표에 퍼즐처럼 나의 점수를 끼워 맞췄다. 아마 나 말고 다른 학생들도 그랬을 것 같다. 매일 배치표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더 위로 올라가야겠다는 다짐만 했다. 아마 이때 누군가 나에게 '어디에 가고 싶어?'라고 물어봤다면, 나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더 위로!"


매일 배치표를 보다 보면 세상이 이상하게 보인다. 마치 배치표에 따라 인생이 서열화되고 배치표에서 더 위로 갈수록 더 행복한 인생을 살 것만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다. 전국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사람은 당연하게 배치표의 가장 위에 있는 서울대학교 의예과를 가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그 사람은 공부를 잘하니까 의사가 돼야 한다는 걸까? 아니면 의사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잘한 건가? 고등학생 땐 이런 물음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배치표 안 세상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성적에 퍼즐을 맞추듯 대학에 진학했다. 같은 성적 라인에 있는 수많은 전공 중에 컴퓨터 공학을 선택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는 전자제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컴퓨터공학을 배우면 뭘 배우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아이팟을 만지작거릴 때 즐거웠다. 나는 배치표에서 '더 위로'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나의 위치는 배치표에서 나름 내가 만족할 만큼 위에 있었고, 그거면 됐다 싶었다. 더 위에 있는 만큼 나는 더 행복할 테니까.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신기루를 찾아 헤맸다. 대학에서는 텅 빈 시간표를 주고 내가 배우고 싶은 과목을 찾아서 채우라고 했다. 그리고 수많은 동아리를 보여주면서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나는 앞으로 내가 뭘 할지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주위 사람들은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여태까지 잘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고 했다. 나는 내가 뭘 잘했다는 거고 앞으로 뭘 잘 해낼 거라는 건지 몰랐다. 주변에서 잘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냥 내 인생이 문제없이 잘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저 배치표가 나에게 약속한 행복을 가져다주길 바라고 있었다. 철없던 나는 신기루를 쫓으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잘 흘러갔다. 어느덧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배치표가 나에게 준 배신감 때문일까. 더 이상 공부는 하기 싫었다. 그래서 고시공부나 대학원 진학은 선택하지 않았다. 스타트업을 하기엔 나는 꿈도 열정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취업을 택했다. 취업을 하려고 보니 세상엔 정말 많은 회사가 있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 관성을 따른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배치표를 올려다보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다. 연봉, 구직자의 선호도를 기반으로 제일 위부터 기업들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배치표에 수능점수를 퍼즐처럼 끼워 넣었듯이, 내가 갈 수 있는 기업에 나를 끼워 맞췄다. 그렇게 나는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리고 입사한지 4년 만에 퇴사했다.


퇴사를 하고 나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나는 의사나 약사 같은 전문직종을 하면 어떨까 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에게 놀랐다. 세상에나. 나는 또 내 진로를 배치표 세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의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내가 의사를 해보겠다고 이야기나 했을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다시 배치표 세상에서 더 위로 올라가고자 했다. 문득 어디선가 본 문장이 생각났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가 살아온 대로 생각했다. 살아온 관성에 이끌려 늘 하던 대로 했다. 관성을 깨려고 노력 중이지만 여태껏 살아온 관성을 이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요즘은 세상을 위, 아래 수직으로 나뉜 세상이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나뉜 좌표평면으로 보고 있다. 내가 인생의 방향키를 잡고 내가 어디로 갈지 정하는 중이다. 내가 앞으로 갈 길엔 맞는 길도, 더 좋은 길도 없다. 그저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 의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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