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멘토를 찾고 싶었다. '저 사람처럼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나의 자기소개서 '존경하는 사람' 은 언제나 공란이었다. 그래서 동네 책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명인들이 쓴 책을 읽었다. 주변에 롤 모델이 없었으니 책에서 찾았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얻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최근엔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슈독>을 재미있게 읽었다. 책 한 권이면 나이키 창업자와 대화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학생일 때는 지독하게도 책을 안 읽었다. 공부를 위한 전공서적을 제외하고는 거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게 힘들었다. 처음엔 긴 글을 읽으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짧은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에세이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한 조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에세이는 책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한 문장마다 가슴에 울림을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책을 끝까지 다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책도 있다. 이런 느낌을 받는 건 특정 책이 나쁘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나의 상황에 따라 공감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전혀 공감가지 않는 에세이도 내 상황이 달라지면 또 다르게 읽힌다. 최근엔 김영하 작가가 쓴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봤다.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되었지만, 최근에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로 여행 에세이를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활자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장편소설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으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잠깐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요즘 VR이니, 메타버스니 하면서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사실 가상현실은 오래전부터 소설이라는 형태로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은 곧 가상현실 체험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을 꼽으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하루키 특유의 '상실'에 대한 절절한 묘사는 방황하고 있는 나를 하루키의 가상세계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책을 읽고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싫어서 블로그에 꾸준히 독후감을 썼다. 누가 읽든 말든 그냥 꾸준히 썼다. 아무런 성과가 없는데도 그저 자기만족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 건 오랜만이었다. 아니, 태어나서 처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쓰다 보니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됐다. 서점 <반디앤루니스>에서 내 글을 '오늘의 책' 소개 코너에 싣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그냥 혼자 재미로 한 일이었는데 누군가 재미있게 읽어주고 피드백을 준다는 게 인상 깊었다. 나는 내 글이 어딘가에 실릴 퀄리티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끄러웠다. 그래서 잠시 망설였지만 편집자님을 믿고 수락했다. 소정의 원고료도 받았다. 아주 적은 금액이었다. 이 악물고 버티며 일해서 월급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돈을 받는다는 게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의미가 컸다. 너무 아까워서 쓸 수가 없었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독후감 말고 다른 글도 써보고 싶어졌다. 일상에서 글로 남기고 싶은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에세이를 썼다. 그리고 어느샌가 글을 엮어서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지금 책을 만들고 있다. 나는 책을 읽다가 글이 좋아서 글을 쓰고, 다시 책으로 돌아와 책을 만들고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