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집 강아지 꽁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2006년부터 살았으니 햇수로 16년 넘게 함께한 셈이다. 처음 꽁지가 우리 집에 왔을 땐 반려견이라는 말도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꽁지를 애완견이라고 불렀었지만, 남들이 뭐라고 부르든 꽁지는 우리 가족이었다.
처음 꽁지가 우리 집에 왔을 때가 기억난다. 지인이 갑작스럽게 아이가 생기게 돼서 강아지를 키우지 못할 것 같다며, 입양된 지 얼마 안 된 꽁지를 우리 집에 보냈다. 쫓겨났다는 느낌 때문인지 기가 죽어있는 느낌이었다. 용변도 잘 가리던 아이라고 들었는데, 매번 실수를 했다. 그래도 화내지 않고 예뻐해 줬다. 반려견에겐 주인이 가족이자 친구이고 온 세상의 전부다. 내가 윽박지르면 기댈 곳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꽁지는 늘 기다리기만 했다. 학생일 때 내가 학교에 다녀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 내가 샤워할 때면 화장실 앞 매트에 누워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취를 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도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벨을 누르기도 전에 현관문 앞으로 달려왔다. 군복무를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도 똑같은 자리에서 나를 반겼다. 군대에 있으면 가족들이랑 쓰는 생활용품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달라서 몸에 밴 냄새도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어떻게 날 알아 봤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전역하고 집에 돌아오면 꽁지가 나를 못 알아볼 줄 알았다.
미니어처 슈나우저가 16년 가까이 살았으니 오래 살았다. 인터넷에서 강아지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해서 계산하는 공식을 찾았는데 꽁지는 이미 90세가 넘는 나이였다. 모든 생명은 나이가 들면 아름다움을 잃고 추해진다. 꽁지도 다르지 않았다. 이빨은 다 빠져서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했다. 소화도 제대로 못 하는지 음식을 먹자마자 용변을 보고 냄새도 지독했다. 시력, 청력도 약해졌다. 눈이 안 보이는지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다. 꽁지는 내가 부를 때마다 귀를 쫑긋거렸었는데, 더 이상 내가 바로 등 뒤에서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치매가 왔는지 밥을 방금 먹었음에도 끊임없이 다시 먹었다. 그리고 방금 먹은 음식을 토했다. 토하고 또 먹기를 반복했다. 나를 알아보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전역하고 집에 왔을 때 주인을 기다리던 그 마음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 눈앞에 누군가 있으니까 그저 쳐다보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슬픈 사실은 나도 그런 꽁지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거였다. 힘들게 퇴근하고 난 뒤에 안기면 내 품에다가 토를 하고, 기껏 용변을 치워놓으면 다시 방 한가운데다가 용변을 보곤 했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짜증이 나기도 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도 꽁지는 나만 봤다. 내가 싫은 티를 내도 나한테 와서 안겼다. 나는 연애도 하고, 가끔 친구랑 술도 먹으며 힘든 일 있으면 터놓고 이야기도 했지만, 꽁지한테는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프고 힘들어도 기댈 곳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나. 16년을 살았지만, 꽁지한테 세상 전부는 나였나 보다. 마지막으로 꽁지를 안았을 때 역한 냄새 때문에 숨을 억지로 참았던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먼 친척의 장례식에 갔을 때보다 한낱 동물인 꽁지의 죽음에 더 슬픔을 느꼈다. 나의 반려견과 함께한 기억에 상처는 한순간도 없었다.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짜증 낼 때나 계속 나만 바라봤으니 상처가 있을 리 없었다. 죽을 때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만 남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죽음을 앞두고 꽁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까. 늙고 병든 자신의 모습에 고개 돌리던 가족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동물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