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석 Oct 02. 2022

1년 간의 공백

퇴사하기 전까지 내 삶을 표현하자면, 바로 앞 계단만 보며 오르는 등산객처럼 발끝만 바라보고 살았던 삶이었다. 내게 소속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안정적인 땅을 박차고 뛰어서 허공을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회사를 나와서 도전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는 내게 큰 경험이었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자 온실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였다.

배운 것이 많았던 만큼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었다. 뜬구름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일관성 없는 목표를 가지고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했던 기간은 마치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잡고 싶은 구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느 구름이 그렇듯 내 손아귀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땅을 딛고 발끝만 바라보며 걸어갈 때는, 걸어온 길을 따라 내 발자취가 그대로 남았다. 걸어왔던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걸어오며 남긴 하나하나의 족적이 모두 의미 없었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퇴사 결정에 관해 물으면 늘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때때로 공중에 붕 떠 있던 것 같은 내 상태가 진짜로 괜찮은지 의심했음을 알고 있다. 남과 비교하는 삶이 불행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누군가 내가 일했던 자리를 이어가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은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보이니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상적인 구름을 좇는 동안의 기간은 이력서의 커다란 공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이 기간이 내 삶 전체에 있어서는 분명 공백이 아니라 의미 있는 성장의 시간이었음을 믿는다. 조만간 구름 속을 헤엄치는 것을 멈추고 다시 땅을 딛고 한 발짝씩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나는 이제 다시 땅을 밟고 걸어가더라도, 발끝이 아니라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볼 줄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반려견을 떠나보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